“빠리빠리”- 내가 허겁지겁 서두를 때면 아이들이 나를 놀리듯 반복하는 말이다. 어렸을 땐 ‘빠~알리 빠~알리’ 하더니 성인이 되어서는 ‘빨리빨리’보다 더 실감나게 ‘빠리빠리’라고 해댄다. 어디서 들었는지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가장 빨리 배우는 말인데 자신들도 그랬었다며 앵무새들처럼 이 단어를 쫑알거리고 다니던 아이들이다.
12년만의 한국방문에서 새삼 눈에 띄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모두들 바쁜 걸음으로 여기저기 급하게 뛰어다니는 모습이었다.
한국에 머무를 때 빨리 빨리 서두르느라 매번 혼이 났었다는 아이들의 말이 떠오르며 그 상황들이 가히 짐작이 갔다. 잠시 급하게 나가는 일인데도 반드시 양말을 신어야 한다며 양말을 찾아 헤맸을 아들 녀석이나 샤워를 해야 나갈 수 있다며 욕실로 향했을 딸의 모습에 얼마나 모두들 황당하고 답답했을까. 아이들은 열심히 노력했다고 주장하지만 아이들의 뒤떨어진 눈치력으로 노력한 수준이란게 상대적으로 모든게 바쁘게만 돌아가는 한국 분위기 속에선 한없이 굼뜨고 답답했을 것이 뻔했다.
친구들로부터 그동안 훨씬 더 심각해진 자녀 교육 이야기를 들으며 이 ‘빨리빨리’가 자식들 교육에서는 ‘일찍 더 일찍’ ‘많이 더많이’로 나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이라도 더 일찍, 더 많이 가르치기 위해 이제는 세살박이 아이들도 영어회화며 요가 등 사교육 현장으로 보내지고 있었다. 점점 치열해지는 경쟁에서 조급해지는 부모들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가고, 뭐든 일찍부터 많이 그리고 재미있게 잘 가르치면 좋기는 하겠지 생각하면서도 아이들의 스트레스 성 원형탈모증 뉴스를 읽은 기억이 나면서 왠지 석연치가 않았다.
이렇게 자식을 일찍, 많이 그리고 최고로 가르치고 만들어야 하는 덕분에 명문학원, 스타강사들이 활개를 치고 있었다. 늦은 저녁 전철 에서 공부에 몰두하던 학생들이 특정역에서 우루루 내리는 것이 기이해서 물었더니 바로 그 역이 명문학원 동네라는 것이다.
집에 있어도 늦을 시간에 온 종일 학교에서 공부한 걸로도 모자라 또 명문학원을 전철을 타고 다니는 것이다. 잠시 전철을 타는 동안에 학원 숙제를 해가면서 말이다. 뿐만 아니었다. 한 친구와 자정가까이 통화를 하다가 늦었다 그만 자자 했더니 조금 있으면 어렵게 섭외한 명문 학원의 스타 강사께서 학원을 끝내고 개인 과외를 하러 온다는 것이었다. 물론 친구 딸아이도 학교뿐 아니라 이미 학원에도 다녀와 지금은 한밤중 과외를 준비하고 있는 상태이고 말이다. 많은 게 복잡할 청소년들이 공부가 삶의 전부이어야만 하는 상황을 어떻게 헤쳐가고들 있는지. 정말 굳세게 자라야 할 것 같았다.
과외얘기로 무거워진 마음을 시원하게 웃어 날릴수 있게 된 일이 생기기도했다. 명문학원 동네의 또 다른 명물이 명품 아파트들인데 이들 뒤를 이어 생겨난 짝퉁 아파트들 덕분이었다. 아파트들이 명품 브랜드화가 되면서 몇십채가 겹겹이 포개져 공중에 붕 떠있는 아파트 한 채당 값이 20억원이 넘는다고 했다.
한국에서의 짝퉁 열풍으로 미루어 볼때 이 명품을 표방한 짝퉁 아파트의 등장은 그다지 별스런 일이 아닐지 모르겠지만 짝퉁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는 아파트까지 짝퉁이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리고 로고뿐만이 아니라 한 획만 고친다던지, 글자의 순서를 뒤집어서 흉내낸 짝퉁 아파트의 이름들을 들으며 실컷 웃을 수가 있었다.
이 대단한 교육의 열기로 아니면 그 열기를 피해서든 교육 때문이라는 이유로 아직 어린나이에 가족과 헤어져 있거나 기러기 가족으로 살고 있는 조기 유학생이나 그 가족들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여러가지 이유로 다른 나라에서 정착해 살 수는 있겠지만 내 나라라는 곳이 내가 가장 마음 편하게 잘 살 수 있는 나라였으면 좋겠고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교육 때문에 가족이 헤어져 살아야 하는 상황이 만연해가는 나라 -이건 아니었으면 싶다. 지금까지 ‘빨리빨리’ 많은걸 이뤄낸 실력으로 모두들 떠나지 않고 자손 대대로 살고 싶은 나라를 ‘빠리빠리’ 만들었으면, 아니 반드시 만들어 내리라 믿는다.
<김선윤 USC 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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