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영(논설위원)
이민 생활의 연조가 깊어짐에 따라 가까운 지인들이 세상을 뜬다는 소식이 점점 많이 들린다. 그간 불의의 사고로 아깝게 간 한인들도 더러 있었으나 이제는 나이를 다 채워서 가는 이들이 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이민사회도 이제는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다는 의미다. 그러다 보
니 요즘 장례식에 가는 일이 예전보다 부쩍 많아지고 있다.
그동안 장례식에 수차 다녀오곤 했지만 돌아올 때는 늘 삶과 죽음의 차이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된다.
어떻게 보면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뒤집기와 같은 건데 어느 사람에게 있어서 삶은 지겹도록 길지만 또 어떤 사람한테는 삶이 안타깝도록 짧다. 이승의 삶이 지겹도록 길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생활에 억압이라든가, 가족간의 불행, 또 경제적인 핍박이라든가, 아니면 병마에 시달리는 경우가 될 것이다.
반대로 삶이 안타깝도록 짧게 생각이 되는 사람들은 건강해서 자기는 물론,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가족들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힘을 보태준 사람 또는 덕망과 더불어 재물까지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또 남에게 선을 베풀면서 공덕을 쌓는 사람, 이런 사람들
은 삶이 안타깝도록 짧다고 생각이 들 것이다.
시간의 길이로 따질 것 같으면 세상을 오래 산 사람이나 짧게 살다가 간 사람이나 별 차이가 아닌데 장례식장에 가보면 아, 이 사람은 세상의 삶이 짧다고 생각되는 사람이로구나, 아니면 어떤 사람은 삶이 지겹도록 길다고 생각하다 간 사람이로구나 하는 것을 쉽게 알 수가 있다.
죽음은 모든 것의 빚을 갚는 마지막 수단이다. 그래서 죽음 앞에는 모든 것이 용서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다가오는 죽음을 미리부터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죽음은 누구나 감당해야 할 마지막 시간이다. 이 죽음은 이 세상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가 없다. 문제는 내가 죽음을 맞았을 때 과연 나의 삶이 아름답게 장식되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죄를 짓는 것이나 공덕을 쌓는 것은 모두가 인위적이다. 인위적이라는 말은 우리 인간이 보통 죽음을 생각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생겨난다.
만약에 시시때때로 우리가 죽음을 생각하며 한 세상을 산다고 할 것 같으면 누구나가 다 죄보다는 공덕을 쌓으며 살아갈 것이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돈 몇 푼을 더 번다고 해서, 또 재산을 좀 더 불린다고 해서 그것은 공덕이 될 수 없다. 공덕이라 함은 남을 위해서 보살펴 주는 아량과 선심에서 우러나오며 그것을 행사하는 것이 배려다. 이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사람은 공덕을 쌓는 일이 아니다. 하나라도 이웃을 위해서, 남을 위해서 배려를 한다든가, 선심을 베푼다든가 하면 그것은 언젠가는 세상을 떠나야 할 자신을 위한 일이다.
하늘은 우리가 살면서 무슨 나쁜 짓을 한다고 땅에 대고 욕을 하지 않는다. 다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항상 하늘 무서운 줄 알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언젠가는 가야 할 하늘, 하늘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24시간 늘 우리들 머리 위에 가까이 있다. 죽음은 장례식 때 뿐 아니라 항상 우리가 옆구리에 끼고 있는 것이다.
삶과 죽음을 하루에 한번씩 만이라도 생각한다면 장례식에서 누구나 보여주는 엄숙한 광경처럼 선량한 모습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도 그렇게 변할 것이다. 삶은 죽은 사람만큼, 즉 죽음과 동일하게 엄숙한
것이다. 그러니까 경솔하게 살지 말고 교만하면 안 될 것이다. 삶은 지금도 계속 굴러가고 있다. 그러나 이 굴러가는 공은 풍선처럼 가벼운 것이 아니다. 알고 보면 죽음만큼 장엄하고 무거운 것이다.
그러므로 삶은 죽음과 동일하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결국 장례식의 광경처럼 엄숙하고 삶 자체가 선을 베풀기를 원할 것이다. 그러면 이 사회는 걱정을 안해도 좋은 길로 저절로 굴러가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장례식에 참석했던 그 모습 그대로 살아가야 한다.
예배당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듯이 하지 말고, 절에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고 하지 말고 장례식 때처럼 나와서도 똑같이 엄숙하게 주어진 삶을 맞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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