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 미소를 잃지 않는다. 악수를 나누며 함께 기자회견을 한다. 그리고는 헤어졌다. 많은 말을 쏟아냈다. 그 말이 그런데 그렇다.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다.
외교언어라는 게 원래 그렇다고 쳐도 너무 추상적이다. ‘포괄적 공동방안’이라느니 ‘동맹의 성숙함’ 등등. 언뜻 들어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풀이하면 이런 것 같다. 북한 핵문제를 보는 미국과 한국의 시각이 확연히 다르다. 그리고 전시 작전통제권은 한국 정부가 그리도 원하면 가져가라는 것이다.
그걸 새삼 확인한 것이다. 그 세리모니를 외교수사로 얼버무렸다. 6차 한미정상회담의 결과다. 이 한미정상회담은 그러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한 미국인 논객의 독백이다. ‘내재적 접근법’이라고 했나. 그런 식으로 노무현 정권의 외교를 이해하려 시도했다.
노무현 정권의 외교를 먼저 ‘두려움의 외교’로 풀이했다. 그 두려움의 대상은 북한이 아니다. 내심 가장 두려워하는 건 김정일 체제의 붕괴다. 그리고 그 경우 있을 수 있는 중국의 군사개입이다. 이런 점에서 두려움을 한국 외교의 본질로 파악한 것이다.
그 두려운 사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여기서 요구되는 게 뭔가 강력한 방파제다. 과거 한국의 역대정권은 한미동맹에서 찾았다.
한미동맹이 붕괴되면 중화 패권주의의 변덕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또 중국의 후광을 업은 북한 위협에 항상 떨게 되고. 때문에 한미동맹 강화가 이 안보논쟁의 자연스런 귀결이다.
노무현 정권은 그러나 반대로 보고 있다. 한미동맹의 강화가 아니다. 김정일 체제와의 돈독한 관계유지가 한반도, 더 나아가 동북아 안정의 요체라는 입장이다.
친한파로 분류될 수 있는 이 미국인 논객도 결국은 이 부문에서 두 손을 들었다. 어떻게 그런 뒤틀린 논리에 도달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한국은 어느 편인지 확실히 해야 한다.” 또 다른 학파의 주장이다. 이 논리는 한미동맹을 단순히 북한에 대한 전쟁억지력 차원에서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데서 출발한다. 전체 동북아시아 안정이란 차원에서 그 중요성이 더 강조된다는 거다.
동북아는 파워의 변환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변치 않는 게 있다. 한국은 결코 강대국 위치에 있을 수 없다. 그리고 한반도의 위치는 계속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어떤 형태든 허브(hub)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런 한국이 ‘힘의 균형자’ 역할을 하려 든다. 고래싸움에 말려든 새우가 되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어느 편인지 확실히 하는 것이 한국의 운명이라면 운명이라는 지적이다.
끊임없이 전해진 충고다. 경고이기도 하다. 그러나 귀를 막았다. ‘자주’ ‘자주’를 복창하면서다. ‘국방에도 자주, 외교에도 자주’하는 식으로. 여름밤에 개구리 울듯이 끊이지 않는 그 자주의 소리는 반미(反美)의 합창으로 이어지면서 정체불명의 소리로 변했다.
이 상황에서 이뤄진 한미정상회담이다. 이 정상회담을 그러면 어떻게 보아야 하나. ‘백조의 노래’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한미동 맹의 종막을 고하는. 일부의 시각이다.
정상회담은 때로 새로운 시대를 알린다. 부시 시니어와 고르바초프가 만났다. 1989년의 몰타회담이다. 이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냉전시대의 종막을 불러온 것이다. 루즈벨트, 처칠, 스탈린이 참석한 1945년의 얄타회담은 전후 세계질서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부시 주니어와 노무현의 만남은 이와 대조적으로 반세기 이상 지속되어 온 한미동맹의 황혼을 재촉하는 회담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미국의 조야에 만연한 ‘노무현 피로증세’에서 그 근거를 찾았다. 인기가 떨어진다. 그럴 때마다 들먹이는 게 반미구호다. 이런 노무현 정권에 불신이 쌓이고 또 쌓였다. 그 불신감이 이번 정상회담에도 그대로 반영돼 결국은 결별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말하자면 동맹으로서 예의는 지켰다. 사실에 있어 입장차이만 확인한 회담 결과를 온통 외교적 수사로 얼버무린 게 그 증거다. 불신의 시각은 그러나 숨길 수 없다. ‘전시작전권 문제를 정치 이슈화하지 말라’는 부시의 발언이 그것이다. 노무현 정권의 반미장사에 더 이상 놀아나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다.
‘한미동맹에 석양이 깃들었다’-. 맞는 진단일까. 그럴 수도 있다. 네오콘과 미문화원 방화사건을 주도했던 386이 대좌를 했다. 그 기이한 모양새가 상징하듯이….
틀릴 수도 있다. 노무현식 외교에 대한 ‘NO’ 소리가 한국에서 뒤늦게 진동하고 있어서다. 정상회담 이후 사태에 주목해야 할 것 같다.
sechok@koreatimes.com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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