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여행
노동절 연휴에 길을 나섰다 아주 혼이 나서 돌아왔다.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고 나니 노동절 바로 다음날 개학이라, 며칠씩 여행을 하기가 여의치 않아서 토요일 하루만 나들이하자고 한 것이 그리 되었다.
캘리포니아는 하루에 다녀올 곳이 많은 것도 같지만, 부지런히 다니는 사람들에겐 참으로 갈 데 없는 곳이기도 하다. 두세 시간 운전거리로는 우리 가족이 안 가본 데가 거의 없어서 하루 놀러갈 곳을 찾는 일이 쉽지 않았다.
레저가이드를 뒤적이던 중 그런 나의 눈에 들어온 곳이 있었으니, 말리부 해변을 끼고 산으로 올라가는 ‘말리부 크릭 주립공원’이 그곳이었다. 호수도 있다하고, 너무 어렵지 않은 트레일도 몇개 있다 하여 거길 한번 가보자고 결정하고 아침부터 이것저것 준비하였다. 남편과 아들은 농구공, 축구공, 프리스비, 돗자리, 이런 걸 챙겨 넣었고 나는 물과 얼음, 와인과 간식 등을 아이스박스에 준비하였다.
1번 하이웨이가 많이 붐비긴 했지만 공원까지는 어렵지 않게 도착하였다. 그러나 차에서 내려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왠지 잘못 왔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날은 너무 더웠고, 길은 너무 넓었다. 보통 산 속 트레일, 하면 숲이 우거지고 나무가 많은 오솔길을 연상하게 되는데 이건 그게 전혀 아니었다. 가도 가도 길은 황량한 대로였고, 먼지가 풀풀 날렸고, 나무 그늘은 없었다.
우리는 땡볕에 땀을 뻘뻘 흘리며 걸었다. 계속 걷다보면 무언가 좋은 풍경이 나올 것이라 기대하며 쉬지 않고 걸었다. 무식하면 끝까지 가게되는 법, 우리는 결국 그곳에 볼만한 것이나 놀만한 곳이 전혀 없음을 확인한 후 철수하였다. 공원을 나오면서 온도계를 보니 97도였다. 그러니까 100도 가까운 살인적인 태양이 내리쬐는 대낮에 우리는 아무런 방패막이도 없이 한시간반이나 산꼭대기를 헤매고 다녔던 것이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널브러진 아들은 나에게 “우리 가족에게 이보다 더 나쁜 여행이 있었는가”고 물었다. 나는 문득 생각하다가 ‘이사벨라 호수’ 여행을 이야기했고, 아들은 ‘앤젤리스 포리스트’ 나들이를 기억해냈다. 사람들은 우리 가족이 여행을 많이 다닌다고 부러워하지만, 그 모든 여행들이 다 좋았던 것은 아니다. 우리의 ‘워스트 트립’(worst trip), 그 두 번의 여행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둘다 정확한 년도는 생각나지 않는다. 레이크 이사벨라에 가게된 것은 순전히 우리 신문 오피니언 난에 한 독자가 그 호수가 너무 좋다고 칭찬한 글 때문이었다.
어느 연휴, 우리 가족은 2박3일 일정으로 이사벨라 호수로 떠났다. 하지만 도착 직후부터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그 호수는 이름처럼 예쁘지도 않았고 주변 경관이 수려하지도 않았으며 관광이나 하자고 온 사람들로서는 거의 할 일이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보트를 타거나 낚시를 하거나 래프팅을 하지 않는 한, 아무리 돌아다녀도 너무 황량하고 재미가 없어서 결국 하룻밤만 자고는 예약을 취소하고 집으로 돌아왔던 것을 기억한다.
앤젤리스 포리스트 소풍은 그보다 더 후유증이 길었던 나들이였다. 아들은 그 때가 메모리얼 연휴였다고 기억한다. 나도 아침부터 김밥을 싸느라 바삐 서둘렀던 일이 생각난다. 윌슨 마운튼 전망대를 목표로 2번 하이웨이를 타고 꼬불꼬불 산길을 운전하던 중, 길 한복판에 떨어져있는 돌 한 개를 무시한 것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였다.
운전하던 남편이 무심코 돌을 넘어 지나갔는데 그 놈이 엔진오일 통을 뚫은 것이었다. 오일이 다 쏟아져 나온 줄도 모르고 계속 운전하던 우리는 어느 순간 차에서 딸딸딸딸~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것을 알게된 후에야 차를 세웠고 일이 심상치 않게 확대되었음을 깨달았다.
산 중턱 외진 곳에 멈춰선 우리는 연휴라 무한정 늦게 오는 토잉카를 기다리면서 땡볕에 앉아 김밥을 먹었다. 지금 내가 거의 다 잊어버렸던 그 장면이 아들에게 생생히 기억나는 것은 아마도 그 황당한 환경에서 먹었던 김밥 탓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결과적으로 그 차는 새로 산지 석달만에 엔진을 완전히 교체해야 했으며, 다행히 수리비는 보험으로 청구되었으나 두달이나 걸린 수리기간 동안 엄청 고생해야했다. 그리고 그때의 호된 경험이후 우리 가족은 앤젤리스 포리스트에 절대 가지 않는 것을 불문율로 하고 있다.
즐거운 여행은 매번 즐거운 경험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만사, 인생의 모든 것이 그러하듯, 여행도 어렵고 고통스런 일들을 겪어야만 비로소 즐거운 경험을 더 즐겁게 즐길 수 있는거라고, 우리는 감히 말할 자격을 갖추었다고 본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