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대한민국을 아느냐. 모르겠다. 한국에서 전해지는 뉴스들을 대하면서 혼자 되뇌는 자문에 자답이다. 그 전해지는 뉴스란 게 그렇다. 도무지 모를 일 투성이어서다.
50대도 잘 안 보인다. 60대, 70대가 대부분이다. 80대도 간혹 섞여 있다. 이들이 시위를 한다. 나라의 장래가 걱정이 돼 무더운 여름 날 노인들이 거리에 나선 것이다.
정작 젊은이들은 무관심이다. 게다가, 일부겠지만 그 반응은 조소에 가깝다. 뭐라 그랬더라. “노인네들이 쪽팔리는 짓을 하고 있다”고 했던가.
노인들이 데모를 한다. 젊은이들은 무관심에, 냉소나 날리고. 이게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마치 초현실파의 추상화 같다.
그 그림이 어느 날 홀연히 바뀐다. 온통 바다이야기다. 그 뒤로 전시 작전통제권 문제는 가라앉았다. 땡볕 더위에 거리로 나온 노인들의 모습도 흔적 없이 사라지고. 그리고 들려오는 게 ‘대한민국은 도박 공화국이다’라는 외침이다. 마치 소리 없이 몰아치는 해일처럼.
그 흔한 이발소, 목욕탕, 미장원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다고 한다. 줄잡아 2만여개로, 성인 오락실로 불리는 곳에 사람들이 떼로 몰려 돈을 날리며 패가망신을 하고 있다는 거다.
생각만 해도 어지럽다. 핏발이 선 눈을 부릅뜨고 밤새 도박기계에 매달린 수십, 수맥만의 군상. 지옥도가 따로 없어 보인다. 그 그림이 어느 날 갑자기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이 대한민국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불현듯 떠오르는 단어가 ‘국가자폐증’이다. 파리가 불타고 있었다. 지난해의 일이다. 그 원인을 프랑스의 지성 기 소르망은 국가자폐증에서 찾았다.
게릴라전을 방불케 하는 청소년들의 난동. 그 사태를 프랑스 사회의 총체적 소통단절의 결과로 보았고 그 소통단절은 계속 심화돼 국가자폐증이란 장애에 이른 것으로 진단했던 것이다.
그 진단은 대한민국에도 통용되는 게 아닐까. 도무지 알 수 없는 일만 벌어지고 있는 대한민국. 그 대한민국을 멀리서 볼 때 국가자폐증 환자에 틀림없어 보여 하는 말이다.
아파트 문화는 자폐증의 문화다. 한 건축인의 선언이다. 외부 공간, 공용 공간의 풍요로움이란 찾아볼 수 없다. 내향적 호사 공간만 극대화됐다. 이게 한국의 아파트로, 사회에 만연한 우울증·자폐증을 주거 공간에서부터 찾으려는 시도다.
그래서인가. 자폐증이란 말은 이제 한국에서 세태를 읽어내는 키워드라도 된 것 같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다름 아닌 자폐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자폐증은 자기만의 내면적 공간에 스스로 갇혀 사는 사람의 정신적 질환이다. 자신만의 일상적 삶의 공간 속에 자신을 밀폐시키고 외부에 대해서는 완강한 방어벽을 쌓아가고 있다. 이 땅의 문인들의 삶이 바로 이런 삶이 아닌가.”
문학계 일각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말하자면 ‘우리끼리만의 자폐증’에 갇혀 있다는 자성의 소리다. ‘우리끼리만…’의 그 현상이 도처에서 목격된다. ‘FTA 결사반대’ ‘민족 공조만이 살길이다’ 등등의 슬로건과 함께.
대한민국이 앓고 있는 이 국가 자폐증은 아무래도 인터넷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인터넷은 무한한 정보의 원천이다. 그 인터넷이 동시에 개인간, 계층간 고립을 심화시킨다. 때문에 하는 말이다.
정보의 원천이 다양해졌다. 인터넷 시대의 일반화된 현상이다. 문제는 자신이 획득한 정보만 진리인 양 착각하는 것이다. 때문에 같은 사물인데도 해석이 계층간에 전혀 다르다. 그게 심화되면서 사용하는 언어마저 달라지는 것이다. 그 결과는 총체적 소통장애다.
그 소통장애의 가장 심각한 증세를 보이는 곳이 정치권인 것 같다. 대통령만 보아도 그렇다. 뭐라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대다수의 국민들이 알아듣지 못한다. 국민과의 소통에 엄청난 장애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번 바다이야기와 관련해 내세운 논리도 그렇다. 가정이 절단난 사람이 하나 둘이 아니다. 그 후유증이 엄청나다. 그런데도 정책상의 실패일 뿐 결코 게이트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문제없다는 식이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다. 그 무한대의 공간에서 ‘국가자폐증’과 ‘도덕적 해이’라는 두 병 증세가 겹쳐질 때 괴물이 탄생한다. 그 괴물 이야기가 바로 수많은 한국의 서민들을 도박중독에, 가정파탄으로 몰고 간 바다이야기다.
바다이야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옥 세 철
논설위원
secho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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