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이 아닌 질병 인식 전문가 도움받아야
도박의 늪에서 빠져나오기는 정말 힘들다. 도박중독 관련 치료나 상담을 받고 ‘이제 끊었다’ 생각해도 언제 다시 도박에 빠질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한번 빠지면 본인은 물론 가정까지 피폐해지고 나아가 도박 자금을 구하기 위해 사기나 부도수표, 절도, 심지어 살인같은 중범죄까지도 저지를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무섭다.
시카고에서도 도박 때문에 패가망신하는 한인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카고 단도박 모임에 따르면 한 달에 30건 정도 꾸준히 문의가 들어온다는 것. 대부분 인생의 막다른 길에 몰려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때 찾아온다는 점에서 실제 도박중독자들은 그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단도박 모임의 B모 회장은 모임을 찾을 때는 이미 돈과 시간, 가족, 주위 신망을 모두 잃은 채로 아무 것도 없는 상태라며 보통 자신이 도박을 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싫어하고 가족이 상담을 받으라 해도 외면하기 때문에 이곳을 찾는 사람은 도박꾼 중에서도 극소수일 뿐이라고 전했다.
문의 중에서는 배우자들의 상담 요청도 상당수다. 이혼하기 전 마지막으로 상담을 받아보기 위해서다. 단도박 모임의 한 회원은 나 역시 남편의 도박벽 때문에 20년 가까이 속을 썩였다. 돈을 가져오기는 커녕 있는 것도 다 빼서 쓰니까 렌트비는 고사하고 먹을 것 살 돈도 없는 지경, 안 당해 보면 모른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이혼만이 해결책은 아니라고 조언한다며 일단 병원에도 가보고 단도박 모임에 가입하는 등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라고 당부한다고 전했다.
최근엔 10대 청소년들도 도박에 빠져드는 경우가 크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야후 등을 통해 인터넷 도박에 중독된 뒤 나중엔 부모의 크레딧 카드까지 마구 사용하고 있다. 이유는 처음 도박을 접할 때 어떠한 죄책감이나 경계심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한인 남학생은 부모 손에 이끌려 단도박 모임을 찾아와서 예전부터 술이나 마약은 하지 말라 얘기 들었어도 도박은 주의받지 못했다, 한번 두번 하다보니 도저히 끊을 수 없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는 전언이다. 도박이 정말 무서운 이유는 끊었다고 생각이 들어도 언제 다시 재발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로렌스나 링컨길에는 도박으로 패가망신했음에도 불구, 카지노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한인들이 있다.
이와 관련, 시카고한인교회 서창권 목사는 도박은 한번 빠지면 중독돼서 헤어나기 힘들다. 주변의 한 교인은 매일 카지노에 가서 살다시피 하다가 집이 거덜나고 빚까지 얻어서 완전히 파산했다. 주위 많은 분들이 기도를 해줘서 은혜 받고 한때 완전히 끊은 줄 알았는데 7년쯤 지나서 갑자기 다시 도박에 빠졌다. 나이들어 자동차도 없이 궁핍하게 지내면서 아직도 끊지 못해 저런다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주변의 도움으로 도박중독에서 벗어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의학용어로는 병적도박(pathological gambling disorder)인 도박중독은 충동조절장애의 일종으로서 술이나 마약과 마찬가지로 한 번 중독에 빠지면 스스로 헤어나기가 대단히 어려운 심각한 정신질환 중 하나인 것으로 알려졌다. 알링턴 하이츠에서 심리치료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는 최선주 박사는 진짜 도박중독이라면 멀쩡하게 앉아있다가도 순식간에 카지노로 뛰쳐나가거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돈이 없어도 도박을 하러 가는 등 충동조절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약물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며 이런 경우 주위에서 아무리 만류해봤자 소용이 없으므로 빨리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만약 몸이 아파 누워있는 사람에게 ‘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나라’고 요구하면 병이 저절로 낫느냐며 도박중독은 정신적으로 매우 아픈 병이므로 전문의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편 도박중독 증상을 보임에도 불구, 실제로는 의학적인 ‘병적도박’으로 진단되지 않는 경우도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스트레스나 우울증, 무료함 등이 도박에 몰두하는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 박사는 얼마 전 가족들의 권유로 도박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온 한인분이 있었다며 가족들은 ‘도박을 끊지 못하는 것을 보니 중독임에 틀림없다’고 확신했지만 상담 결과는 의외로 우울증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여성 우울증 환자 중에서는 도박에 관심을 보이는 경우가 드물지만 남성들은 종종 도박으로 해결하려 한다며 물론 원인이 해결되지 않으면 언제든 다시 도박을 시작하기 때문에 ‘중독’으로 보일 수는 있지만 사안별로 그에 맞는 적절한 치료가 있으면 금방 정상 생활을 회복할 수 있으니 주위의 도움에 의존하기보다는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봉윤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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