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낼 수 있는 소리는 얼마나 될까. 언어학자들에 따르면 160개 정도라고 한다. 세계의 언어를 모두 분류한 결과 집계된 음소(音素)의 총량이 그렇다는 것이다.
영어는 상당히 복잡한 언어다. 그렇지만 지닌 음소는 55개다. 반면 칼라하리의 한 원시부족은 145개의 각기 다른 소리를 낼 수 있다.
이 가장 다양한 소리를 내는 원시부족을 처음 만났을 때 백인들은 그 언어의 멸절을 꾀했다고 한다. 입의 곡예사라고 할까. 인간은 도저히 낼 수 없다고 생각되는, 그러므로 때로는 야비하게까지 들리는 소리를 낸다.
그런 원시부족에게 경멸감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급기야 적대감마저 들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언어밖에 없었다. 이 한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들이 자신들의 힘을 과신했다. 하늘에 닿기 위해 탑을 쌓기 시작한 것이다. 마침내 신의 노염을 샀다. 신은 탑을 무너뜨리고 그 언어를 혼잡케 해 소통을 불가능케 하는 벌을 내렸다.
기원전 바빌론의 신관 베로수스가 쓴 역사의 기록이다. 성경 창세기에도 비슷한 스토리가 나온다. 바벨탑 사건이다. 인간의 언어가 왜 혼잡한가에 대한 최초의 설명이다.
말이라는 게 그렇다. 상당히 어렵다. 게다가 복잡하기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때문에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같 은 한국말이라도 다 같은 게 아니다.
10대가 쓰는 말이 있다. 남성의 언어가 있는가 하면 여성의 언어가 있다. 게다가 사적인 공간에서와 공적인 공간에서의 말이 다르다. 그러니 때와 장소를 혼동하고 상대를 오인할 때 같은 말을 해도 의사소통이 안 된다.
상당히 저명한 여성학자가 장관에 지명됐다.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그 과정에서 점차 한 공감대가 형성됐다. 장관으로는 곤란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얼룩진 과거도 없다. 그런데 왜. 장관지명자가 자신만의 언어를 줄곧 사용했기 때문이다.
장관에게 요구되는 언어는 전체 사회에 통용되는 공용어다. 이 여성학자는 그 언어 습득이 제대로 안 됐다. 여성의 언어만 사용한 것이다. 그 대가를 치렀다. 낙마한 것이다.
대통령이 말을 한다. 그러면 보좌관들이 진땀을 뺀다. 해명하기가 바빠서다. 대통령으로서 뭔가 반드시 말을 할 타이밍에는 오히려 침묵이다. 그러다가 말문을 연다. 그 때마다 호된 대가를 치루기 일쑤다.
언어의 비용이 너무 비싸다. 미국과의 관계뿐이 아니다. 국내에서 벌어지는 소모전이 대부분 대통령의 말에서 비롯됐다. 때문에 현 노무현 정권을 두고 하 는 말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고 있나.
대통령의 언어라는 게 따로 있다. 대통령은 국정의 최고 책임자다. 그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언어는 투명한 언어다. 예측 가능한 말이다. 대통령은 그 말 자체가 방향이 되고 사회에 역동성을 주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누군가의 표현대로 천금 같은 말을 쏟아낼 자리에서 한 푼의 가치도 없는 말만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대통령의 말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한다. 화법이 달라지고 간단명료하게 말하던 것이 복잡해졌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이 아니다. 3년여 전 , 그러니까 참여정부 초기 ‘대통령의 사람’들로 분류되던 사람들의 얘기 다. 그 평가는 이런 식으로 이어진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보통의 상식적인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된다. 그 말의 뒤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머리를 굴러야 한다. 복선이 깔려 있지 않은지, 노린 수는 없는지 생각해야 한다.”
그 달라진 말 때문에 또 사단이 났다. 마치 벌집 쑤신 듯하다.
일찍이 이런 일이 없었다. 한국군의 원로들이다. 말 그대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초석들이다. 그들이 하나가 돼 국군통수권자와 정면으로 대치하고 있다. 전시 작전 통제권 회수와 관련해 성명을 발표하고 현재의 계획이 절대불가하다는 입장을 천명한 것이다.
계속 말을 쏟는다. 대통령이. 누가 그랬나. 마치 구렁이가 거품을 토하는 것 같다고. 그 말을 국민들은 알아듣지 못한다. 다수의 대한민국 국민의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그러면 무엇일까.
“대한민국은 심정적으로 내전에 돌입했다.” 일찍이 한 국내 논객이 던진 예언이다. 그 예언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건 아닐까.
sechok@koreatimes.com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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