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지 중에 맞선보고 일주일만에 결혼한 50대 주부가 있다. 70년대 한국에서는 소위 ‘재미 청년 사업가’들과 초고속 결혼을 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신랑감들은 오로지 결혼을 목적으로 한국에 오는 것이어서 선보고 괜찮다 싶으면 그대로 약혼하고, 며칠 후 결혼하는 일이 보통이었다.
“한두번 만난 사람을 뭘 믿고 결혼했느냐?”고 누가 물으면 그의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는 데 친척 아주머니가 말하더군요. ‘지상의 천국’이라는 미국에 가서 한번 살아보라고- ”
10일 미국 행 항공기 폭파음모 뉴스를 하루종일 지켜보면서 격세지감이 들었다. 몇십년 전만 해도‘지상의 천국’으로 선망 받던 미국이 어쩌다 이런 지독한 증오의 대상이 되었을까. 자신이 죽어서라도 미국인들을 죽이고 싶다니 그 보다 더 큰 미움은 상상하기 어렵다. 아랍권에서 미국은 ‘악의 화신’이 된지 오래이다.
5년 전 9.11 테러이후 우리는 ‘테러’ 에 익숙해진 측면이 있다. 그동안 여러 번의 테러 음모가 사전 적발되었고, 무엇보다 부시 행정부가 틈만 나면 ‘테러’위험을 강조해서 오히려 둔감해지는 면도 있었다. 공항에서 신발 벗고, 자켓 벗고, 몸수색 당하는 일도 이제는 익숙해져서 처음의 굴욕감과 분노를 잊어버리는 분위기이다.
그런데 10일 적발된 테러 음모는 다르다. 쇼크의 파장이 예사롭지 않다. 런던 발 미국행 항공기 10대를 동시 다발로 공중 폭파하려 했다는 테러 규모도 충격적이고, 범행에 사용하려던 액체 폭발물의 성분이 너무 일상적인 것도 충격이다. 매니큐어 지우는 아세톤과 소독약인 과산화수소수 고농축액을 섞으면 간단하게 액체 폭탄이 된다고 한다. 이런 평범한 물질들이 폭탄으로 바뀔 수 있다면,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든 테러가 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덕분에 로션, 향수, 립스틱, 치약, 각종 음료수, 샴프 등 개인용품을 소지하고 비행기를 타는 일은 이제 ‘과거의 사치’가 되게 되었다. 이들 액체나 젤 타입 물건은 보안 검색대에서 폭발물질과 구분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9.11 테러 직후 손톱 깎기, 가위, 칼, 라이터 등이 반입 금지 품목이 되어서 한동안 공항 쓰레기통을 메우더니 10일에는 아까운 화장품, 음료수들이 모두 쓰레기통으로 버려졌다.
무고한 시민들에게서 로션 소지할 자유를 박탈한다고 테러 위험은 덜어질까. A를 막으면 테러리스트들은 B를 생각해 낼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완전히 발가벗어야 비행기를 타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닐까 - LA 타임스의 11일 만평, ‘궁극적 비행기 안전’이 바로 그런 내용을 그렸다. 여행객들이 벌거벗은 채 티켓 한 장 달랑 들고 탑승하는 광경이다.
로션 반입을 금지한다고 테러를 막을 수는 없다. 그보다는 강력한 정보능력으로 테러를 감행하는 주체를 색출해내는 일이 보다 효과적이다. 하지만 아무리 색출해도 ‘성전’에 앞장서겠다는 젊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계속 배출된다면 이 또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그들은 왜 젊은 나이에 자기 목숨 버리면서 자살테러에 뛰어드는 것일까 - 그 원인을 직시해야 하겠다.
중동 문제 전문가인 한 저널리스트가 팔레스타인에서 장례식에 참석하고 쓴 글을 읽었다. 웨스트 뱅크에서 이스라엘 군인에게 염산을 뿌렸다가 총에 맞아 죽은 하마스 추종 청년의 장례식이었다. 장례식 천막에 들어가니 모두 캔디를 돌리며 축하 잔치를 하고 있더라고 했다. 순교자의 천국 승천을 축하하는 잔치였다. 그 옆에서 동네 아이들은 저마다 “나도 자라면 저렇게 명예롭게 죽어야지!”하고 다짐을 하더라고 했다.
아랍계 젊은이들이 일자리 없고, 희망 없이 절망감과 박탈감으로 분노만 가득한 것은 팔레스타인만의 일이 아니다. 아랍계가 많은 영국, 프랑스의 현실이기도 하다. 쏟아낼 데 없는 그들의 증오를 재료로 미국을 겨냥한 인간폭탄을 만들어 내는 것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다.
힘있는 자의 오만과 힘없는 자의 비뚤어진 정의감이 공존하는 한 테러는 멈추지 않는다. 미국은 테러의 근본 원인을 생각해야 하겠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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