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영(논설위원)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보면 1세가 하던 비즈니스를 2세가 같이 하거나, 아니면 물려받아 하는 경우를 가끔 보게 된다. 그런데 한인들의 경우 자식들이 부모가 하는 비즈니스에 합류하거나 대물림을 하는 것을 좀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대물림을, 즉 가정에서 하던 비즈니스를 자식들에게 전수해 운영하는 것을 굉장한 자랑으로 생각한다. ‘삿뽀로 라면’만 보아도 일본인들이 얼마나 이 대물림을 특별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삿뽀로는 일본의 북해도에 있는 추운지방 도시이다. 그 곳에서는 삿뽀로 우동을 잘해먹는데 이 음식을 먹어본 사람들은 모두 “맛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이걸 파는 주인에게 “무슨 우동이냐”고 물어 “삿뽀로 우동”이라 답했는데 이것이 바로 지금의 그 유명한 삿뽀로 우동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얼떨결에 ‘삿뽀로 우동’이라 말한 것이 적중해 일본 전역에 이 우동이 유명해 지면서 그 집에서는 지금도 그 장사를 아들들이 물려받아 성업 중에 계속하고 있다. 그 집의 아들들은 다 명문대학 출신인데도 부모가 하던 이 우동장사를 자랑스레 하고 있다는 것이다.또 중국에는 한약, 고약 같은 특이한 약이 집안 대대로 전수된다고 한다. 여기에는 그 집만이 아는 비법이 특별하게 있는 것이다. 그 비약을 남모르게 이어오고 있다. 대물림은 살기가 매우 힘들었던 일본 사람들이 집안에서 가내수공업을 개발, 광주리장사 비슷한 규모를 열심히 확장시켜 커지면 집안의 자식이 아버지 대를 이어 운영했다. 이것이 일본인들의 대물림의 시초였다.
그 것이 자꾸 소문이 나다보니 그 집안만의 독특한 가내 비결이 몇 대를 내려오면서 이제는 일본의 명문대학을 나온 사람도 대물림을 하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그래서 일본 사람들의 의식이 지금은 명문대를 나왔건, 어디를 나왔건 그것은 그 사람의 인격 도야에 필요한 것이고 가정 경제와는 별개의 문제로 치고 있다. 대물림도 산업화 된 큰 규모가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가내영업으로 소규모로 대를 이어 내려오는 것도 있다. 가내수공업에서 크게 된 것 중에는 우리가 잘 아는 제품으로 기꼬망 간장이 있다. 일본의 한 가정에서 간장 만드는 법을 배워 간장을 만들어 소규모로 동네에서 팔기 시작, 그것이 대물림, 대물림 해가면서 크게 된 것이 오늘날의 기꼬망 간장이다.
작은 규모의 가내영업은 영업대로, 산업화된 것은 된 것대로 그 가내에서 해오던 특별한 비법이 그 안에 있기 때문에 아무리 다른 회사에서 흉내를 낼래야 낼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이러한 비법을 가진 사람들이 참 많았다. 이조자기, 고려자기 등 이런 것들을 만드는 사람들은 고도의 장인인데 이런 비법을 갖고 있어도 다음 대에 전수를 안해 주었다.
장인들은 신분이 낮아 이런 일을 하게 되면 천대받고 산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심지어는 제자들에게도 만드는 법을 물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비법이 끊긴 것이다.
우리도 이런 비법을 전수해서 맥을 이어가야 할 텐데 한국보다는 다행히 미국사회에서 갈수록 대물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인들이 차츰 하고 있는 것 같아 매우 고무적이다. 무슨 가내 영업이든 대물림은 작든, 크든 간에 절대 부끄러움이 아니라 집안의 자랑이다. 이것을 깊이 연구하고 개발해야 남이 모르고, 미국인도 모르고, 전 세계인이 모르는 나만의 비법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이런 것은 우리가 하는 비즈니스에서 얼마든지 있을진대 이제 서서히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가.
한국 사람은 보통 큰 것만 좋아하는데 조그만 것이라도 남모르는 비법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하나의 금이요, 보물이다. 전문식당을 한다든가, 한복집을 한다든가, 양복점을 한다든가, 화장품 생산을 한다든가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지금은 남의 것을 사다 팔더라도 얼마든지 비법을 개발
하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하다못해 김치 하나라도 독특한 맛을 내어 만들면 그 것도 비법이다.
얼마 전 발뒤꿈치를 매끄럽게 만드는 상품도 한국인이 개발, 날개 돋치듯 팔리고 있다. 이것을
만든 사람은 이 비법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계속 연구개발해 이 제품에선 누구도 흉내낼 수 없
는 상품으로 만들어 가가 손손 대물림하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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