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에 따르면, 집에서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이 밖에 나가서 소속감을 찾다가 탈선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크랙 코케인을 피울 때 사용되는 마약 도구들. ‘락’이라고도 불리는 크랙 코케인은 중독성이 매우 강하며 폭력적인 편집성 행동을 일으킨다.
가족들 사랑이 ‘최고의 보약’
여름방학은 중고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에게는 불안한 시기이기도 하다. 우리 아이는 긴 하루동안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불량해 보이는 그 친구와 어디로 돌아다니고 있을지 걱정이다. 그러나 한인 학부모들이 마약에 대해서는 경각심이 부족하다고 ‘젊음의 집’(대표 김기웅 목사)에서 상담 카운슬러로 일하는 제프리 전씨는 말한다. 마약 문제가 꼭 남의 일처럼 들릴지 몰라도 통계를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질병통제예방국이 2년마다 9∼1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전국청소년위험행동조사(NYRBS)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청소년들의 20.2%가 지난 1개월 사이에 마리화나를 피운 적이 있으며 7.6%는 생전에 코케인을 해 본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약중독을 극복한 LA 한인 젊은이들의 생생한 체험담을 통해 청소년 탈선과 예방책에 대해 알아본다.
UC버클리 출신
제임스 리씨
8학년때 대마초로 시작, 크랙까지
중독증 형보고 충격, 수련회서 단절
“부모님들은 이제까지 제가 마약을 하는 줄 몰랐어요.”
올해 UC버클리를 졸업한 제임스 리(가명)씨는 서툰 한국말로 마음속을 털어놨다. 그는 중학교 때 리버사이드에 있는 더 좋은 동네로 이사 오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학교에는 아시안 학생도 없었고 할 일이 없어 외로웠다는 제임스는 7학년 때 밴드활동을 하면서 고등학교 형들과 어울려 다녔다. 담배를 배워 피우기 시작했고 8학년이 되어서는 대마초를 피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대학생 형들과 어울렸는데 당시 제임스의 부모는 명문대에 다니는 형들이 제임스를 잘 돌봐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달랐다. UC버클리에서 화공학을 전공하는 한 형은 돈을 벌려고 집에서 마약을 만들기까지 했다. 친구라서 마약을 공짜로 받았다는 제임스는 그 때부터 ‘acid’라는 환각제(LSD)를 처음 해봤는데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땅바닥이 물처럼 둥둥 떠서 빠질 것 같은 신기한 기분이었어요. 화장실에 가는데 30분 동안 찾지 못하고 헤맬 정도였어요.” 무서우면서도 재미있었다는 제임스는 11∼12학년 때 acid를 즐겼는데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형들은 돈을 버는 재미에 더 비싼 마약을 만들어 팔기 시작, 2년 동안 크랙(코케인의 일종)을 사용했다. 몸이 180파운드에서 135파운드로 말라비틀어질 정도였다. 그 때 사진을 보면 자신이 정말 징그럽다는 제임스는 그래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제까지 자기가 마약을 하는지 전혀 몰랐다고 한다. 최근 교회에서 아이들에게 교훈이 되라는 뜻에서 경험을 얘기했었는데 그 때 부모가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당시 제임스는 성적이 나빠지면 친구들과 놀지 못하게 될 테니 공부가 싫었어도 학교에서 숙제를 충실히 했다. 그래서 부모가 걱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제임스는 같이 어울리던 한 형이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면서 정신을 잃는 과정을 보면서 그때서야 충격을 받고 깨어났다. 문제는 마약을 끊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 그 형은 마약을 한번 잘못해서 지금도 정신병원에 있는데 제임스는 당시 병문안하고 나면 우울해져 자살하고 싶은 생각도 떠올랐다. 제임스는 그 무렵 수련회에 갔는데 거기서 마침내 마약을 끊기로 결심, 그 이후로 코케인, LSD 등에 손대지 않았다고 한다.
제임스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제일 강조하고 싶은 것은 부모의 사랑이 최고의 마약예방책이라는 것이다. 제임스는 마약으로 방황할 때 부모가 자신을 믿어주고 사랑한다고 느낀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특히 어렸을 때 부모가 사랑을 표현해 주는 것이 그 때에는 별로 느끼지 못했어도 철이 들면서 기억나는 것이었다. 그는 자기가 자는 척할 때 매일 부모가 자기 전에 그를 기도해 준 것, 부엌에서 어머니와 요리를 같이 한 기억, 12살 때 아버지와 낚시를 한 기억 등이 “마약과의 싸움에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제임스는 “I love you”라는 세 단어가 너무 힘든 말이지만 그런 사랑의 표현이 나중에 자녀들에게 인상 깊게 남는다고 지적했다.
제임스는 현재 마약예방 프로그램 등을 위해 봉사하고 있고 앞으로 의대에 진학해서 계속 봉사할 계획이다.
UCLA 졸업
에밀리 박씨
바쁜 아버지 집 자주 비워 자유생활
마약팔다 걸린 언니 때문에 끊기로
에밀리 박(가명)씨도 제임스처럼 우등생이었다. 지난해 UCLA를 졸업한 에밀리는 어렸을 때 아버지와 이민 온 후 처음 다이아몬드바에서 살았다.
한인 학생들이 별로 없어 백인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는데 6학년 때 LA로 이사 가면서 아주 다른 환경에 던져졌다. 더구나 아버지가 비즈니스 때문에 한국에 가시는 바람에 에밀리는 나이가 세살 더 많은 언니와 단둘이 아파트에서 살았다. 할머니가 근처에 살았지만 학교에 가라는 사람도 없는 자유의 생활을 만끽했다.
학교에 가지 않으니까 성적도 나빠지기 시작했고 맨날 친구들이 집에 놀러왔다. 처음에는 담배로 시작했는데 마리화나, 크랙 등 점점 심한 마약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나이가 어려도 마약을 구입하기가 무척 쉬웠다. 그러다 에밀리의 아버지는 자매의 전화요금이 1,000달러에 이르는 등 자녀들이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는 것을 깨닫고 한국에서 하던 모든 것을 팽개치고 귀국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아버지와 할머니는 에밀리가 태권도를 해서 마르는 줄 알았지 마약을 하는지 상상도 못했다고 한다.
에밀리는 ‘엑스터시’라는 마약을 많이 했는데 하루는 친구와 같이 마약을 한 후 토했는데 음식이나 마약이 아니라 단지 거품을 토했다. 에밀리는 과량복용으로 죽는 사람들이 입에 거품을 토한다는 것을 알고 무서워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에밀리가 마약을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전환점은 언니가 학교에서 메탐페타민을 팔다가 걸리면서였다. 에밀리는 영어도 못하는 할머니가 법원에 불려 다니는 것이 너무나 부끄럽고 미안해서 더 마약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에밀리도 결국 마약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의 사랑 때문이었다고 강조한다. 아버지가 매일 이불을 덮어주며 사랑한다고 말해주던 기억, 특히 할머니가 불교 신자인데도 울면서 기도를 하는 모습 등이 마약을 끊어야겠다는 결심에 힘이 됐다.
에밀리는 또 아버지가 여행을 좋아하셨는데 결국에는 여행과 같은 건전한 생활이 정상적인 삶을 찾는데 도움이 됐다며 나중에는 할 일이 많으니까 마약을 생각할 시간도 없게 됐다고 말했다.
에밀리도 지금은 제임스처럼 커뮤니티 단체들을 통해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선도하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에밀리는 한인 부모들의 가장 큰 오해 중 하나가 자녀가 좋은 대학에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생각이라며 고등학교에서는 주로 나쁜 학생들이 마약을 한다면 대학에서는 누구나 마약을 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에밀리는 한 남가주 UC 캠퍼스에 갔을 때 마약 퇴치를 강조하는 기숙사(drug-free dorm)에 들렀는데 오히려 마약을 파는 학생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며 좋은 환경에서 자란 학생들도 주변에서 마약을 도는 것을 보고 호기심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우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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