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은 항상 이럴까?’싶게 해맑은 웃음이 얼굴에서 떠나지를 않는 여성이 얼마 전 나를 찾아왔었다. 신문사에 볼일이 있어 왔다가 내 사무실에 들렀다는데, 50대 초반의 그는 춤을 선전하고 싶어했다. 중년 여성들의 행복에 춤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지를 선전하는 그는 ‘춤 전도사’이다.
“춤은 우선 즐거움을 주지요. 동작 하나 하나할 때마다, 근육과 세포들이 움직일 때마다 쾌감이 솟아요. 춤은 또 운동이니까 건강하고 날씬해지지요. 한마디 춤을 추면 젊어져요”
그의 ‘춤 예찬론’을 듣고 있다보니 요즘 내 주위에 춤추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는 사실이 깨달아졌다. 같은 교회에 다니는 여성들과 매주 강사를 초빙해 살사를 배운 선배가 있는 가하면, 동네 커뮤니티 센터의 댄스 클래스에 나가는 친구가 있고, 이혼 후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던 40대 여성이 춤으로 삶의 의욕을 되찾고 이제는 댄스 경연대회에 나갈 만큼 전문가가 된 케이스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중년 여성들이라는 점, 춤이라는 몸놀림에 자신을 맡기면서 뭔가 해방감 같은 것을 만끽하고 있다는 점이다. 80년대, 90년대 한인사회에서 부부들이 볼룸 댄스 배우는 게 한동안 유행이었고, 지금도 커플들을 위한 사교댄스 교습이 있기는 하지만 그와는 좀 다른 춤 배우기 추세가 주부들 사이에 일고 있다.
LA 한인타운의 서울 국제공원 체육관에서 3년째 계속되고 있는 에어로빅 라인댄스도 그 한 예. 50대, 60대 주부들이 신나는 음악에 맞춰 한마음으로 춤을 추면서 땀으로, 웃음으로, 활기로 범벅이 된다. ‘춤 -’하면 따라다니던 음습한 이미지, 혹은 정반대의 로맨틱한 이미지와 전혀 상관없는, 경쾌하고 밝은, 운동 같은 춤에 여성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중년 여성들이 춤에 흥미를 갖는 것은 우연일까. ‘중년’이라는 나이까지 살아오며 살림살이 늘듯 꾸역꾸역 늘어난 심신의 짐을 어느 순간 훌훌 벗어버리고 홀가분해지고 싶은 충동 - 그것은 우연이라고 할 수 없다. 그 돌파구로 춤이 선택된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연일 것이다. 하지만 우연히 시작한 춤이 평생의 여가활동이 된다면 그것은 또 우연이 아닐 것이다. 춤은 묘한 마력을 가지고 있다고 경험자들은 말한다.
내가 ‘춤 전도사’라고 이름 붙인 연춘옥씨의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뭘 해도 가슴 한구석에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있었는데 춤을 추고 나서부터 ‘이렇게 기쁘게 살수도 있구나’싶은 게 하루하루 생활이 그저‘하염없이 즐겁다’고 했다.
그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한국춤을 공부한 무용 전공자라는 사실만 빼면 한인가정의 대부분 주부들과 붕어빵 같은 삶을 살아왔다. 밥 먹여주지 않는 전공은 잊어버리고 남편과 자영업 하면서 생활기반을 잡고, 두 아이 키우는 데 온갖 정성 쏟아 붓고, 칭찬 받는 맛에 시집 일이건 친정 일이건 나서서 챙기고, 힘든 일 닥칠 때마다 신앙으로 묵묵히 넘기며 살아온 삶이었다.
이어 아이들이 성장해 집 떠난 후 시간적 정신적 공백과 함께 갱년기 우울증이 겹치면서 ‘그 동안 내 생활이 너무 없었다’는 회의에 빠지는 것도 대부분 주부들과 공통적 경험이다.
“주부들이 이 시기의 우울증을 넘기는 유형은 보통 두가지인 것 같아요. 교회나 성당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형 아니면 사치로 푸는 형”
그의 선택은 잃어버린 젊은 시절의 꿈, 춤이었다. 2년반 전 춤을 다시 시작한 후 그는 얻은 것이 많다고 했다. 몸을 움직이자 마음이 따라 열리면서 찾아든 웃음, 기쁨, 행복감, 그래서 더 좋아진 부부사이, 날씬한 몸매… 이제 그는 그 기쁨을 혼자만 간직하기 아까워서 주부들 대상으로 한국춤 강습을 하고 있다.
경제적 안정, 원만한 부부사이, 잘 자란 아이들 … 그만하면 다 갖췄다 싶은 데도 심신이 납덩이처럼 가라앉은 주부들이 많이 있다. 영양식으로 배불리 먹어도 비타민이 부족하면 몸에 이상이 오듯 삶에서도 비타민이 필요하다. ‘즐거움’이라는 비타민이다. 몰입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번져있는 어떤 놀이 - 춤은 좋은 후보가 된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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