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일이 낀 지난주에는 가족들이 오랜만에 함께 모인 집이 많았다. 자녀들이 성장해 대학 따라, 직장 따라 떠나고 나면 식구들이 모두 모이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7월초는 대학생들이 여름 방학중이고, 직장인들은 공휴일 끼고 휴가를 얻음으로써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이 단합대회를 갖기 좋은 주간이다.
그런데 이렇게 모처럼 한 지붕 밑에 모인 가족 분위기가 항상 화기애애한 것만은 아니다. 이야기 소리, 웃음소리로 활기 넘치던 집안이 한순간에 얼어붙는 ‘사고’가 이따금 발생한다.
남가주의 한 주부가 가슴 철렁했던 경험. 대학 졸업해 취직한 맏딸과 밑으로 대학생인 남매가 있는 주부이다. 몇 달만에 만난 3남매는 몹시 반가워하며 희희낙락 같이 지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거실에서 갑자기 벼락치는 소리가 나는 거예요. 아들이 불같이 화를 내더니 차를 몰고 나가버리더군요. 뒤에 남은 딸들은 사태를 파악 못해 어리둥절해 있었어요”
딸들의 말로는 늘 그래왔듯이 장난 삼아 남동생을 조금 놀렸는데 아이가 필요 이상으로 과민반응을 보였다는 것이었다. 30분쯤 지나 돌아온 아들을 붙들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바로‘장난 삼아 늘 그래왔던 것’이 문제였다. 여자는 둘, 남자는 혼자인 3남매 사이에서 아들은 성장기 내내 외톨이 기분이었다고 했다. 항상 죽이 맞는 딸들은 별 생각 없이 남동생을 놀리곤 했지만 혼자서 둘에 맞설 수 없던 아이에게는 그것이 상처로 남았던 것 같았다.
남매가 중부와 북가주로 흩어진 LA의 한 주부도 지난주 심기가 편치 않았다. 대학생인 아들이 모처럼 만난 누나에게 너무 퉁명스럽게 굴기 때문이었다.
“누나는 동생에게 용돈도 주며 잘해 주려고 애를 쓰는데 아들 녀석은 괜히 심통을 부리며 틱틱 거리는 거예요. 둘뿐인 남매가 사이좋게 지내야할텐데 은근히 걱정이 돼요”
아이의 어깃장을 우리는 질투심으로 이해했다. 맏이가 워낙 뛰어난 수재라서 부모의 자랑이 되어온 가정이다 보면 동생의 심사가 편했을 리가 없다. 누나만큼 못하는 데 대한 열등감, 부모의 사랑이 누나에게로만 쏠리는 것 같은 소외감, 그로 인한 분노 … 자신도 모르는 복잡한 감정들이 아마도 오래도록 쌓여왔을 것이다.
어렸을 때는 힘이 약해 속으로만 눌러두던 이런 감정들이 어느 한순간 터져 나오는 데 그 시기가 대개 성인이 되어 다시 모였을 때이다. 대학생이 되어 어른이 된 것 같고 자신을 드러낼 자신감이 생기면서 화산 터지듯 터져 나오는 사건, 그것이 오랜만의 가족모임에서 불쑥 터져 나오는 ‘불상사’이다. 그리고 그것은 긍정적 측면이 있다.
가슴 속 응어리는 언제든 터지게 되어있고, 그렇게 한번 터지고 나면 형제들 사이가 더욱 돈독해질 수 있다는 것이 경험 있는 주부들의 관찰이다. 나를 들여다보고 상대방을 보면서 자녀들이 모두 한 단계씩 성숙해지는 계기가 된다.
내가 어떤 자극에 대해 유난히 민감한 반응을 보일 때, 그 원인은 무엇일까. 나는 왜 남자들/여자들 앞에만 서면 기가 죽을까 … 나는 어떻게 지금의 나로 형성되었을까. 유전자, 부모, 경제적·사회적 배경 … 그 동안 여러 요인들이 연구 대상이 되어왔다. 그런데 그 어느 것도 형제자매만큼 강한 영향력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 최신 학설이다. 이번 주 타임은 관련 연구들을 열거하며 형제자매가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지를 특집으로 다루었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자명한 사실이 왜 이제까지 간과되었는지 의아하다. 성장기 중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가장 가까이에서 같이 보내는 것이 형제자매이다. 놀이동무로, 싸움대상으로, 경쟁상대로, 역할모델로 자고 깨면 같이 지내는 것이 오빠, 언니, 혹은 동생들이다. 한 학자는 “가정을 병원으로 보면 부모는 의사, 형제자매는 간호사”라고 했는데 적합한 표현이다.
형제자매, 특히 자매들은 나이 들수록 정이 돈독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외로운 노년에 그만한 자산이 없다. 성인이 되어서 만나는 배우자, 살다가 헤어질 수도 있는 배우자, 일찍 세상을 떠나는 부모와 달리 가장 오랜 세월을 공유하는 데서 생기는 끈끈함이다.
자녀들이 충돌하고 반목한다고 너무 걱정할 일은 아니다. 같이 지낸 시간이 터닦아놓은 유대감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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