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화제
늙은 수탁? 모르면 용감하다. “프랑스가 축구를? 그것도 월드컵을?” 프랑스를 그저 예술과 패션의 나라쯤으로 배우고 외워온 이들은 프랑스의 98월드컵 개최를 자체를 의아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물론 세계축구 흐름에 둔감했던 사람들 얘기다. 이들에겐 프랑스의 우승도 이변이지 정상이 아니었다. 그럴 만도 했다. 프랑스가 90이탈리아월드컵과 94미국월드컵에서 내리 지역예선 장벽을 넘지 못했으니.
그러나 이는 축구대륙 유럽에 속한 불행(?) 때문에 생긴 일. 프랑스축구의 내공은
대단했다. 미셀 플라티니가 그라운드를 휘어잡던 80년대 프랑스는 2연속 월드컵
4강(82년, 86년)에 올랐고, 작은 월드컵으로 불리는 유럽선수권대회에서 늘 우승권이었다. 지네딘 지단에 앞서 90년대를 풍미한 스타들도 많았다. 에릭 칸토나, 장 파블로 파팽 등등. 한참 거슬러, 58스웨덴월드컵에선 쥐스트 퐁텐느가 무려 13골을 몰아치며 프랑스의 3위입상을 견인했다. 본선진출국이 16개팀(4강진출국의 경기수는 6게임)에 불과했던 시절 수립한 이 기록은 32개국으로 늘어난 지금도 감히 넘보지 못하는 대기록이다.
보다 중요한 건 국제축구연맹(FIFA)과 월드컵 탄생에 프랑스인들이 결정적 산파역을 했다는 사실이다. 특히 로베르 게렝은 1904년 FIFA 창설을 도맡다시피한 뒤 초대 회장을 역임했고, 후배회장 줄 리메는 1930년 이 땅에 월드컵이 태어나게 한 일등공신이다. 70멕시코월드컵에서 브라질이 3회우승을 차지하면서 영구보존하게 된 우승트로피의 이름은 그의 이름을 따 줄리메컵이라 불린다. 축구사가들은 축구를 발명한 것은 잉글랜드인들이지만 세계최고 인기스포츠로 발전시킨 주역은 프랑스인들이라고 말한다.
한편 프랑스가 대회 초반 부진을 거듭하자 하필 늙은 수탉이라는 놀림을 받게 된 이유는 프랑스가 우승했던 98월드컵 공식매스코트가 수탉(이름 ‘푸티’)이었기 때문이다. 수탉은 중세이래 프랑스인들에게 남성적 힘과 새벽을 상징하는 동물로 귀한 대접을 받아왔다.
카테나치오? 알수록 징그럽다. “쟤네들이 무슨 축구선수냐, 배우지. 다들 조각상같이 생겼구만.” 축구물정 모르는 사람들은 이탈리아 선수들의 용모만 보고 그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미의 상징인 고전적 조각상들이 대개들 그리스 로마에서 비롯됐고 당연히 이들이 모델이 됐으며 따라서 부지불식간에 이들의 용모가 미의 표준처럼 굳어진 때문이기에. 그렇다고 다 틀린 말은 아니다. 어느 비평가의 독설대로 그들은 축구선수가 아니라 축구배우 같을 때가 많다. 감쪽같은 엄살연기로 곧잘 심판을 속여 공짜로 프리킥이나 페널티킥을 주워담기 일쑤다. 준수한 용모와는 영 안어울리게 전혀 고의가 아닌 듯한 천연덕스런 동작으로 상대선수의 코뼈를 부러뜨려놓는 등 얌체반칙도 다반사다.
챔피언은 수비로 먹는 것(Defense wins championship). 골을 먹지 않으면 적어도 지지는 않는다(You don’t concede a goal, you don’t lose the game).
제3자 구경꾼들에게 별 인기없는 이탈리아축구가 단골 월드파워로 어슬렁거려온 바탕은 이것이다. 빗장수비로 번역되는 카테나치오(Catenaccio)를 고집하는 이탈리아식 축구철학이다. 볼거리가 없다는 아우성에도 그들은 “아름답게 지는 것보다 볼품없이 이기는 것(혹은 지지 않는 것)이 낫다”는 논리로 안전제일 축구를 구사한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6게임동안 1골(그나마 자책골)밖에 허용하지 않았다.
수비중시의 원류를 고대 로마인들의 전통에서 찾는 이들도 있다. 로마인들이 변덕 심하고 약삭 빠른 것 같지만 출정 때면 한밤중에 도착해 동트기 무섭게 떠날 야영지에서도, 어차피 밤새워 일해봤자 다 쌓아올릴 수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교대로 성벽쌓기 철야작업을 하다 떠나는 등 고지식한 안전제일 철학을 간직해왔다는 것이다. 작가이자 역사가인 일본계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등 로마사에 감초처럼 등장하는 대목이다.
이탈리아축구가 ‘꽁꽁 숨어라 축구’만은 아니다. 예리한 역습능력이 갖췄기에 세계적 강호로 군림할 수 있었다. 게다가 90년대 들어 서서히 공격농도 또한, 적어도 전보다는 짙어졌다. 특히 86멕시코월드컵 16강전 탈락, 90이탈리아월드컵 결승진출 좌절 등을 겪고 아리고 사키 감독이 지휘봉을 잡으면서부터다. 파올로 로시(82스페인월드컵 득점왕)처럼 도무지 어디서 뭘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가 득점순간에 혜성같이 나타나 기습골침을 놓는 게 예전 이탈리아골잡이들의 전형적 득점스타일이었다면, 90년대 이탈리아축구의 대표적 골사냥꾼 로베르토 바조는 미드필드부터 차근차근 작품을 만들어가며 정석대로 골을 엮어내는 정통파에 가까웠다. 지금의 아주리군단은 수비는 의구하되 공격은 로시풍과 바조풍이 적당히 섞였다고 할까. <정태수 기자>
부속/
아주리군단(청군) 대 뢰블레(청군)?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결승전은 그 옛날 한국의 운동회식 편가르기로 말하자면 청군 대 청군의 승부다. 이탈리아팀의 별명인 아주리군단(군단은 한국언론이 덧붙인 것)에서 아주리(azzurris)는 이탈리아어로 하늘색, 즉 이탈리아식 파란색을 뜻한다(같은 뜻의 영어 azzure는 여기에서 연유). 프랑스팀을 상징하는 뢰 블레 역시 프랑스어로 파란(색 옷을 입은) 사람들, 의역하면 청군쯤 된다(영어의 blue와 어원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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