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지난 유행인가. 아니면 이제 시작에 불과한 것인가. 또 반미(反美)가 주제다. 그런 논평을 대할 때마다 불쑥 되뇌어지는 말이다. 사실 이제는 식상할 정도다. 그런데도 계속해 나온다. ‘오발’(Friendly Fire)이란 책도 그렇다.
워싱턴포스트가 서평을 실었다. ‘20세기가 미국의 세기라면 21세기는 반미의 세기가 될 것인가’-. 서평의 서두다. 한국의 언론이 이 책을 소개했다. 한국에서의 반미감정의 이모조모를 다뤘기 때문인 모양이다.
서평으로 보아서는 사실 새로울 게 없다. 단지 반미(反美)니, 숭미(崇美)니, 혐미(嫌美)니 하는 한국의 대미관계와 관련된 용어 8가지를 소개했다는 정도가 관심을 끈다고 할까.
어쨌거나 반미는 이제 필수 교양과목이 된 것 같다. 반미를 논하지 않고는 행세할 수 없는 세상이다. 한국만이 아니다. 유럽에서도,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그리고 물론 중동지역에서도 통하는 이야기다. 반미의 세계화 현상이라고 할까.
‘왜 반미인가’-. 새삼 던져보는 질문이다. 그 근본 원인을 셸비 스틸은 이런 시각으로 풀이했다.
처음에는 ‘백인의 책무’가 있었다. 그게 백인우월주의로 바뀌면서 제국주의가 대두된다. 그 백인우월주의는 2차대전 후 붕괴되기 시작한다.
미국에서 백인우월주의의 붕괴는 민권운동으로 표출된다, 연방정부가 과거의 인종차별의 죄과를 시인하기에 이른 것이다. 여기서 나타난 게 ‘백인의 죄책감’이다.
‘백인의 죄책감’은 이제 미국의 정치, 사회, 문화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요소다. 해외정책에서도 마찬가지로, 그 부산물이 반미주의다.
미국은 오늘날 세계에서 과거 백인들이 지녔던 그런 우월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 우월적 위치라는 게 그런데 그렇다. 여전히 백인중심에, 제국주의의 이미지를 주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도 과거 제국주의가 저지른 죄악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바로 이 부문을 꼬집고 나선 게 미국의, 또 세계의 좌파다. 60년대, 7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수정주의자’로 불린 학파다.
미국의 해외정책은 이후 엉거주춤한 자세를 보여 왔다. 미국은 과거의 제국주의 세력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면서 개입정책을 펴야 한다. 여기에 미국의 딜레마가 있는 것이다.
이라크전쟁과 관련해 그래서 이런 말이 나온다. 미국은 두 가지 전쟁을 동시에 치르고 있다. 하나는 군사적 전쟁이다. 또 다른 하나는 ‘백인의 죄책감’과의 전쟁이다. 다시 말하면 반미주의와의 전쟁이다. 이 죄책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게 그가 편 주장의 포인트다.
‘백인의 죄책감’이란 프리즘을 통해 볼 때 서구에서 일고 있는 반미와 회교 아랍권에서의 반미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예컨대 독일에서의 반미는 일종의 패드(fad),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일과성의 유행이다. 뿌리가 같은 사촌끼리의 시샘 격이다.
회교 아랍권의 반미는 미국적 가치의 전면부정에서 시작된다. 다시 말해 서구문명 그 자체에 대한 거부가 이슬람권의 반미주의다.
한국에서의 반미는 그러면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을까. “엄격한 의미에서 반미라고 볼 수는 없다. 한국적 애국심, 자긍심의 발로로 보아야 할 것이다.” 미국의 한 관측통이 일찍이, 그러니까 3년 전쯤에 내린 정의다.
큰 그림으로 볼 때 올바른 진단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뿐일까.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다. 한국인의 자긍심, 다른 말로 해 민족주의 표출의 결과로 발생한 반미감정 이면에서 교묘한 덫이 발견되어서다.
민족의 자존을 내세운다. 그러면서 시장경제를 배척한다. 민족공조를 외친다. 그러면서 세계화를 배격한다. 독도문제를 애써 부각시키면서 NNL(북방한계선) 양보설을 슬슬 흘린다. 겉 모습은 민족주의다. 그 화장을 벗길 때 드러나는 얼굴은 친북 좌파의 얼굴이다.
이제는 아예 맨얼굴이다. 그리고 온갖 쟁점을 한 줄기로 이끌고 가고 있다. 좌파 친북 중심의 논리로. 그 결과 경제가 안 된다. 동맹이 무너질 위기다. 한국사회가 근본에서 흔들리고 있다.
정리하면 이런 게 아닐까. 한국의 반미는 이중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 실체를 3년간의 좌파실험이란 프리즘을 통해 분명히 알게 됐다. 그 결과는 ‘노 모어 선 샤인’(햇볕은 이제 그만)이다. 탄핵에 가까운 5.31 선거 결과가 분명한 그 신호다.
반미는 한국의 경우 이제 철지난 유행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sechok@koreatimes.com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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