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기독교인들은 남반구에 7층으로 된 산이 있는 작은 섬이 있다고 믿었다. 죄를 지었지만 죽기 전 참회한 사람들의 영혼은 이곳으로 가 살며 저지른 죄 값을 치른 후 천국으로 올라간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소위 ‘연옥’(Purgatory)이 거기다.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죄는 크게 일곱 가지로 분류된다. 무거운 죄 순으로 교만, 질투, 분노, 게으름, 탐욕, 탐닉, 욕정이 그것이다. 연옥에서는 그에 상응하는 벌이 주어진다. 교만은 무거운 바위를 지고 걷고 질투는 철사로 눈이 꿰매지며 분노는 매운 연기를 쐬고 게으름은 쉴새 없이 달려야 한다. 탐욕은 땅에 엎드려 바닥만 바라봐야 하고 탐닉은 굶주리며 욕정은 불 속에서 죄를 단련 받는다.
이들 여러 죄 중 가장 죄질이 나쁜 것은 질투다. 게으름과 탐욕, 탐닉, 욕정은 물질에 대한 지나친 애착이 원인으로 어느 정도 동정의 여지가 있다. 교만과 분노는 무거운 죄이기는 하나 자부심과 정의감의 잘못된 표현으로 봐 줄 수 있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불만과 이웃에 대한 증오의 복합체인 질투에는 일말의 좋은 점도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면서도 질투는 이웃을 해치고 사회의 존립 기반을 무너뜨릴 만큼 강력한 힘이 있는 감정이다.
창세기에는 형제가 형제를 죽였거나 죽이려는 케이스가 세 번 나온다. 세 번 다 질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를 받고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자 가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고 성경은 적고 있다. 어머니 리브가의 사랑을 독차지한 야곱이 아버지의 축복마저 빼앗자 에서는 야곱을 죽이려 나선다. 부모의 편애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몸소 체험했음에도 야곱은 요셉만을 사랑, 색동옷을 입혀준다. 고자질쟁이 요셉은 꿈속에서 “형들의 볏단이 내 볏단에 절을 했다”는 등 이쁜 소리만 골라 해 결국은 죽기 직전 노예로 팔려간다. 자녀를 둔 부모, 그리고 형제끼리 어떻게 처신하면 안 되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질투의 폭발력을 100% 활용한 정치 사상이 공산주의다. 겉으로는 번드르르한 이론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 속을 뒤집어 보면 “나는 배가 고픈데 남이 잘 사는 꼴을 보지 못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더더구나 그렇게 된 원인이 사회적 불의에 있을 때 “이런 세상 뒤집어엎지 않고 뭐 하나” 하는 구호는 설득력을 갖게 된다. 지금은 서울과 평양, 아바나 등 일부 지역에서만 추종자가 남아 있지만 한 때는 공산주의가 지구 표면의 1/3을 덮었던 까닭이 여기 있다.
공산주의가 ‘미래의 이념’으로 맹위를 떨치던 시절에도 드물게 발을 붙이지 못한 나라가 있다. 바로 미국이다. 혹자는 그 이유를 수퍼마켓과 푸드 스탬프에서 찾는다. 아무리 가난해도 먹고 살 것은 보장되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굳이 목숨을 걸고 혁명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의 하나가 무엇인지를 지난 주말 워렌 버핏이 보여줬다. 전설적인 투자가이자 미 제2의 부자인 그는 전 재산 440억 달러 중 85%인 370억 달러를 자선 단체에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수십 년 째 ‘초라한’ 중산층 주택에서 중고차를 직접 몰고다니는 그는 “자식들에 큰 재산을 물려주면 사람을 버리게 된다”며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할 뜻을 비쳐왔는데 이제 그 약속을 지킨 것이다. 버핏은 이번 결단으로 ‘위대한 투자가’에서 ‘위대한 인간’의 반열로 올라섰다.
남의 성공을 시기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잠재적인 질투심에 불이 당기느냐 마느냐는 가진 사람이 하기 나름이다. 한국의 제1재벌이 “부의 대물림은 자식을 망치는 길이므로 대부분 재산을 헌납하고 기업도 자식이 아닌 능력 있는 경영자에게 맡기겠다”고 발표한다면 한국은 월드컵 우승보다 더한 환호에 휩싸이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여론 조사를 해 보면 미국민의 과반수는 상속세 폐지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온다. 평생 세금을 내고 모은 돈을 개인의 의사에 반해 정부가 다시 가져가는 것은 잘못이라는 생각이다. 반면 버핏과 같은 갑부들은 그 존속을 주장한다. 서로 자기 것을 챙기겠다는 탐욕도, 남이 이룬 부에 대한 질투도 찾아보기 힘들다. 상대방이 이룬 업적을 인정하고 번만큼 스스로 남에게 베푸는 마음이 입으로는 반미를 외치는 어느 나라 교수와 언론인도 자식만은 이곳으로 보내는 위대한 미국을 가능케 한 것이 아닐까.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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