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좀 발칙한 제목의 어린이 책이 있다. 영국계 작가 닐 게이먼이 쓴 ‘금붕어 두 마리와 아빠를 바꾼 날(The Day I Swapped My Dad for Two Goldfish)’이란 그림책이다. 게이먼은 원래 사이언스 픽션이나 팬터지 소설을 쓰는 작가인데 어린이 독자들에도 관심을 보였다.
“아빠를 금붕어와 바꾸다니…”- 발상만으로도 아버지들은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역지사지(易地思之), 잠깐 아이의 천진한 눈을 빌려보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주인공 어린이는 친구가 놀러오며 가지고 온 금붕어가 몹시 탐이 난다. 뭔가를 내주고 그 금붕어 두 마리를 꼭 갖고 싶은데 친구가 영 말을 듣지 않는다. 그때 생각난 것이 늘 신문만 들여다보고 있는 아빠. 같이 놀아주지도 않고, 그렇다고 금붕어처럼 귀엽지도 않은, 집안에 있어 봤자 별로 쓸모가 없는 존재이다. 그래서 아이는 아빠를 내주고 금붕어를 얻어 신나있는데 엄마가 외출에서 돌아온 후 난리가 났다. 당장 아빠를 찾아오라는 엄마의 호통에 아이는 아빠를 되찾으러 나서지만 아빠는 이미 여러 아이를 거치며 다른 물건들과 바뀐 상태이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덮어버릴 수도 있고, 아버지날을 맞아 ‘나는 내 아이들에게 어떤 효용가치가 있을까’아버지들은 생각을 해볼 수도 있다. 돈을 벌어서 의식주를 해결해주는 ‘추상적’가치 외에 같이 뒹굴고 같이 책 읽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들이 피부로 느끼는‘실질적’가치는 얼마나 될까. 아이들이 심심하면 찾고, 어려움이 있으면 찾는 유용한 존재일까, 아니면 집에 있으나 없으나 아이들 생활에 별로 차이가 없는 그런 존재일까. 아버지 본인들은 어찌 생각하든 자녀들, 특히 청소년기 자녀들은 후자로 느끼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한국 여성가족부는 지난해말 ‘가족 실태보고서’를 발표하면서 한국 아버지들은 자녀들에게 ‘너무 먼 당신’이라고 결론지었다. 누구나 가슴 답답한 일이 있으면 가장 편하고 신뢰하는 사람을 찾아 고민을 털어놓기 마련인데 청소년들에게 아버지의 순서는 끄트머리였다.
15살∼24살 연령층을 대상으로 ‘고민을 누구와 상담하는가’를 물었더니 1위는 친구(37%), 2위는 어머니(32%)였다. 12%는 혼자 해결하고, 8%는 형제·자매에게 털어놓는다고 했다. 아버지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는 대답은 불과 4%.
관련 조사에서 아버지들은 단골로 한자리 숫자의 반응을 얻었다. 예를 들어 지난 한달 동안 자녀와 영화감상 등 문화활동을 해본 적이 있는 아빠는 6%, 자녀와 산책이나 운동을 해본 아빠는 8% … 하는 식이다.
이곳 한인사회에도 “아이 데리고 영화간 게 언제였을까, 같이 산책한 게 언제였을까?”- 잘 생각이 나지 않는 아버지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월드컵 시즌이 되면서 거스 히딩크 감독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2002년 무명의 한국팀을 4강에까지 끌어올리더니 이번에는 호주팀의 사령탑으로 또 신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호주가 일본과의 경기에서 마지막 몇분을 남겨놓고 역전승을 거둘 때는 ‘역시 히딩크!’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성공하는 감독·코치들을 보면 그들은 아버지 같다. 선수들이 그들을 아버지같이 따른다. 지난 3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회에서 한국팀을 승리로 이끈 김인식 감독의 경우는 선수들이 실제로 ‘아버지’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의 야구는‘믿음의 야구’라고 불릴 정도로 그는 철저하게 선수들을 믿어주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믿기 위해서는 먼저 선수 개개인의 특성과 기량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면 실력을 발휘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주니 선수들로서는 얼마나 신뢰가 가겠는가.
선수를 믿어주기는 히딩크 감독도 마찬가지이다. 선수들의 강점을 찾아내고 자신감을 심어주며 끝까지 믿어주는 것이 히딩크 식 리더십이다. 아버지들이 아이들의 인생에서 해야할 역할이 바로 그런 것이다. 자녀의 특성과 장점을 찾아내 신뢰로 이끌어 주고, 격려해주는 역할. 그런데 그 시작은 아이가 어려서부터 같이 뒹굴고 노는 것이다. 일단은 금붕어보다 나은 대접을 받아야 할테니까.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