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태(시인)
나는 문학의 의의와 글쓰기의 가치를 사람에게, 사람을 중심으로, 사람을 위한다는 작업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도 가장 멀리 버려두고 있는 자연과 잃어버리기 아주 쉬운 나를 내가 찾아서 만난다는 행위에 두고 있다. 자연은 불변의 자연법칙에 의해서 운영되면서 돌고 도는
내력이 천만년 변함이 없고, 나고 죽는 것들의 처음과 끝의 과정이 또한 변함이 없어 그 위대함을 알고 하늘 아래 엎드릴 뿐이다.
내가 무엇인가? 녹음기가 아니면 내가 내 목소리의 음색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내가 나의 목소리를 내 귀로 들을 수 없고, 거울이 아니면 내 밝은 두 눈으로 나의 형체를 볼 수 없다. 내가 내 코로 내 몸의 냄새를 맡을 수 없고, 내가 누구이고 내가 무엇인가, 그리고 나는 무엇을
위하여 무엇 때문에 사는가에 대하여 의문을 품고 나를 찾아나서는 사람이 그리 많지가 않다. 인생의 비극이다.은 사람들이 바쁘고 지치고 허기지는 삶을 살면서도 주일이 되면 교회와 절을 찾아가서 찬송하며 기도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고 부처님을 만나 간절히 얻어내고 싶은 안식과 평화 때문이지만, 문학과 글 쓰기란 사람을 만나고, 자연을 만나고, 내가 나를 만나려는 노력과 인생의 가치관을 찾아내려는 행위인 것이다.
인생살이는 관념이 아닌 구체적인 흔적인데 그걸 꾸려 가면서도 정작 내가 나를 모른다. 길을 가다 만나는 사람, 일을 하며 만나는 사람, 식당에서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가족들, 친구들,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만나는 사람마다 상대의 얼굴은 잘 알아보고, 상대의 얼굴
표정 따라 상대의 생각과 마음을 인식하려 들면서도 정작 내가 나의 얼굴은 어떤 얼굴인지 알지 못하고 내가 어떤 마음의 얼굴을 하고 사는지 인식하지 못한다.
상대의 생각과 상대의 마음은 헤아려보려고 애를 쓰지만 내가 나의 본질이 무엇인가는 알려고 하지 않고, 내가 누구이고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무런 관심을 품지 않고 무심히 살아간다. 살다가 가고 나면 그만일까?인생과 문학은 산업화가 되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인생이나 문학을 밑천으로 해서는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 인생이나 문학을 담보로 해서도 돈이 생겨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인생을 아픈 삶으로 이어가고 문학을 번민으로 이어가는 것은 삶의 모듬은 인생이고, 문학은 삶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그걸 조금이나마 알기에 이정표도 없는 이 두 길을 시력 없는 눈으로 더듬으면서 그냥 간다. 찾기 위해서다.
시나 수필에 그려넣은 나의 흔적을 거울삼아 내가 나를 들여다 보며 내가 나를 찾아본다면 고장난 부분이 더러 있거나 수리가 불가능하도록 심하게 상한 부분도 더러 있을 것이다. 가다 보면 새 차도 고장이 나는 법이다. 어떤 차는 아예 거리에 나오자마자 고장이 난다. 불량품이다.
사람도 살다보면 고장이 나 상대를 불편하게 한다. 자기 스스로가 고장난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지금 나는 어느 부위가 얼마만큼 고장이 나 있을까? 내과의사는 내장을 들여다 보고 고장난 내장을 수리하고 외과의사는 환부를 들여다 보고 고장난 외관을 수리한다. 치과의사는 치아를 들
여다 보고 고장난 이빨을 수리하고, 안과의사는 눈을 들여다 보고 고장난 눈을 수리한다. 문학은 나의 인생을 들여다 보고 고장난 인생의 부위를 수리하는 데에 그 가치가 있다.
종교가 언젠가는 가야 할 하늘을 바라보고 고장난 영혼을 수리한다면 문학은 살아야 할 인생을 바라보며 고장난 인성을 수리하는 것이다. 거기에서 주인공인 내가 나를 모르고, 앉아있어야 할 의자에 내가 없다면 수리할 대상이 없는 것 아니겠는가!
그것이 인생과 문학의 상호관계에서 오는 비극이다. 인생과 문학이 화음인 것처럼 우주의 자연은 화음이다. 우주와 자연은 화음을 위하여 고장난 부분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자가 치유능력을 가지고 있다. 고장이 났어도 수리를 하거나, 수리할 줄 아는 사람은 화음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다. 내가 단선이라면 주위는 복선이다. 단선의 아름다움 옆에는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복선의 아름다움이 있다. 그것이 가정이고 가족이고 사회이고 친구들이며 동료들인 것이다. 단선의 음은 작을수록 상대에게 아련한 아름다움으로 귀를 기울이게 해주고 화음의 음은 주음보다
크지 않아야 화음이란 이름으로 더욱 아름다운 소리가 된다. 화음의 음이 주음보다 크면 아름다워지기 전에 시끄럽기 때문이다.
보라! 고층건물 유리창이나 물 고인 웅덩이마다 조금씩 떨구어 놓은 조용한 노을조각들! 황혼은 그냥 가지 않는다. 문학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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