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내게 아주 특별한 달이다. 주위 사람들이 내가 태어난 날을 상기하게 될 수밖에 없는 달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5월은 가정의 달’이 끝나면 그 기운을 이어받아 ‘6월은 김선윤의 생일 달’이라 외치기 시작했다.
6월에 접어들자마자 바로 생일 달, 생일 주간, 그러다가 생일날로 좁혀지다가 생일이 지나면 6월말까지 다시 생일 달이라고 재차 의미를 부여한다. 부모님께 감사하게도 날짜 또한 잊기 어려운 날이라 효과는 상당하다. 지나가는 말로 생일을 물어온 이들은 대부분 후회스러운 얼굴이다. 잊어버린 척 하기에는 조금 힘든 날이기 때문이다.
물론 웃자고 시작한 일이고 아이들에게 생일을 핑계로 한 달 동안 협박 아닌 협박으로 좀 편해 보고자 하는 다소 치졸한 목적이 있었지만 아이들이 독립해 떠난 후에도 계속 하는데는 다른 이유가 있어서라는 걸 알게 되었다.
철이 나면서부터, 특히 미국으로 떠나온 후로는 생일이 되면 가장 많이 생각나는 사람이 엄마였다. 더군다나 내가 엄마가 되고 아이들이 자랄수록 엄마 생각은 더욱 간절한데 마음과는 반대로 점점 소홀해져만 갔다. 전엔 없는 살림에 중요한 날들을 잘도 챙기더니 나아진 살림에도 불구하고 선물에서 카드로 이제는 전화도 제 날에 하는 적이 거의 없는 정도가 되었다. 여러가지 이유로 엄마 계신 고향을 찾은 지는 10년이 넘어가고 말이다.
아마 내가 매년 내 생일달을 외치는 것은 이 달만이라도 엄마 생각을 하면서 죄송하고 불편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어 보고자 하는 보상심리 때문일 것이다. 내가 생일을 빌어서라도 사람들과 즐겁게 지내듯이 엄마도 누군가와 행복한 시간을 나누시길 바라면서 말이다. 내가 여기서 사람들과 즐거움을 나누기 위해 노력한다면 멀리 있는 엄마의 곁에 있는 누군가가 나 대신 노력하게 할 거라는 믿음과 바램인 것 같다.
얼마 전 천부적이라 할만큼 뛰어난 기지로 어느 자리에서나 사람들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선사하던 친구가 먼저 좋은 곳으로 갔다. 아마 하느님도 지치셔서 즐거움을 주는 그 친구의 재주가 필요했나보다. 가는 곳마다 웃음꽃을 활짝 피워 내던 친구였다. 작은 식당에 가면 손님 전체가 배꼽을 쥐게 되고, 자동차 안에서 이 친구 덕분에 웃고 떠드는 아줌마들을 보고 오죽했으면 옆차에서는 수화를 하는 것으로 착각했을까.
미국 유학 길에 오를 때 그 친구에게서 학자금 보조 명목으로 받았던 기발한 선물은 두고두고 나를 즐겁게 해준다. 떠나는 날 공항에 나타난 그는 “얘 학자금이라도 좀 보태 줘야 할텐데, 어쩌니 돈은 없고. 생각나는 게 이것밖에는 없어서. 가서 이걸로 실력 발휘해서 학비 많이 벌었으면 한다” 며 화투 두 벌을 선물로 내미는 것이었다. 짝이 없어져 ‘작업’에 지장이 올 경우를 대비해 특별히 인심써서 두 벌을 마련했단다.
떠나가는 나를 비롯해 막내를 혼자 멀리 보내는 가족들, 친구들의 못내 서운하고 왠지 서글픈 분위기가 순식간에 웃 바다로 변하고 모두들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날 보내준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러던 친구가 아이들을 뒤로하고 떠나가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남의 일 같지 않아 마음이 저리다가도 살면서 뿌린 수많은 즐거움의 씨앗이 아이들에게 열매 맺어 돌아가리라는 걸, 그리고 힘찬 엄마를 보고 자란 아이들도 세상과 웃음을 주고받으며 잘 살아내리라 믿으며 부디 편히 떠났길 바란다.
이 친구를 보내기가 힘들었던 한 친구가 지난주 한국에서 찾아왔다. 애통하게 시작한 얘기가 어느새 수많은 에피소드로 변해 얼마나 웃어댔는지 모른다. 영안실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민망스럽기도 했었다고 한다. 우리는 너무도 아쉽게 남아 있지만 그동안 친구가 보여주고 간 솜씨를 흉내 내며 세상이 환해지는걸 느낄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래 수시로 생겨나는 고약한 마음을 접어 밝은 마음으로 만들다보면 엄마, 아이들에게도 그 마음이 전해지리라.
‘생일 달’을 광고하며 못 다한 자식 노릇, 엄마 노릇이 주위와 함께 행복해 보려는 노력으로 조금이나마 땜질이 되기를 바라며, 6월에 태어난 모든 분들 생일 축하합니다!
김선윤 USC 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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