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15일 공예갤러리 ‘나눔’의 ‘한국 공예 명품전’이 열렸던 비전아트홀 갤러리. ‘나눔’ 대표 이묘숙씨 혼자 작품을 돌아보고 있다. <진천규 기자>
갤러리와는 담 쌓고 사는 한인들
전시회는 많은데 전시회를 찾는 사람은 가뭄에 콩 나듯 드문 현상-. 바로 LA 한인 문화계의 현주소다. 이번 달만 해도 LA 한인타운과 타운 인근의 한인 갤러리에서는 10개의 전시회가 거의 동시에 열렸다. 하지만 리셉션을 제외하면 전시회를 찾은 일반 미술애호가들은 갤러리에 따라서는 손에 꼽을 정도인 곳도 있다. 리셉션 저녁에 반짝 모이면 그걸로 끝이다. 화랑이 입장료를 내라는 것도 아니고, 점심 시간에 잠깐 들르면‘우아한 분위기’속에서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 굳이 그걸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갤러리도 정기 휴관일도 아닌데 문을 굳게 걸어 잠가 모처럼 찾은 방문객을 실망시키기도 한다. 전시회를 하자는 건지 뭔지 혼란스럽기조차 하다.
타운인근서 한인관련 전시
10여개씩 열려도
리셉션만 반짝 ‘개점휴업’
점심식사후 들러 우아하게
휴일 자녀들과 여유 즐기며
지친 삶 달래보면 어떨까
5월 둘째 주 월요일 점심시간, ‘한국공예전’이 열렸던 비전아트홀 갤러리를 찾았다. 서울서 온 공예갤러리‘나눔’의 이묘숙 대표가 갤러리 입구에 다과상을 준비해 놓고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20분 가량 지났을까. 아이를 안은 젊은 주부 두 사람이 갤러리에 들어섰지만, 입구 쪽에서 서성대다 그냥 눈으로 휙 둘러보고 나가버렸다. 이어 지난 토요일 오전에 찾아왔다가 갤러리 문이 닫혀있어 그냥 돌아갔다는 중년 여성이 들어왔다.
이묘숙씨는 “아무리 대관 전시지만 갤러리 자체가 확보하고 있는 고객 리스트가 너무 적다. 한국의 경우 다도문화에 심취해 있는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갤러리를 즐겨 찾고, 평일 오전은 주부, 주말에는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LA 한인사회 갤러리 풍경은 아트 컬렉터, 미술의 대중화가 일고 있는 한국과는 다른 것 같다”고 말한다. 지난 토요일 개막 리셉션에도 한국서 보낸 초청장을 받고 찾아온 지인이 대부분이었고, 일요일 관람객 수 역시 기대 이하였다.
다음은 오후 1시께 들러 본 LA 한국문화원의‘아름다운 한글서예 미국전’. 널찍한 전시실을 혼자 둘러보는 게 민망할 정도로 적막강산이다. 문화원 전시 담당자에 따르면 “리셉션이 아니면 일부러 전시회를 찾아오는 한인 관람객은 드물다”면서 “그나마 문화원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어반 수강자들이 관람해 주니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다음날(화요일) 정오, 이번에는 타운에서 조금 떨어진 화랑가를 찾았다. 첫 목적지는 샌타모니카 버가못 스테이션 내 ‘새라 리 아트웍스’. 원로서예가 한영애씨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었다. 점심시간 조금 지나 도착하니 백인남성 한 사람이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주차공간을 찾지 못할 정도로 붐볐던 토요일 리셉션과는 대조적인 풍경. “30개의 갤러리가 모여있어 관람객들의 향방을 종잡을 순 없지만, 대체로 주초에는 관람객이 없다”고 새라 리 관장은 설명했다.
같은 날 오후 2시. 미 최초의 현대미술관 ‘무명사회’(Societe Anonyme Inc.)를 재현하고 있는 UCLA 해머 뮤지엄에 들어섰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백인 노부부와 함께 3층 전시실에 도착하니, 미술학도로 보이는 젊은이들과 현장학습을 나온 학생들이 전시를 둘러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다녀본 한인 갤러리와는 관람객 수에서 우선 큰 차가 난다.
이어 오후 3시. ‘사비나 리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김인태 사진전’에 도착했다. 사진작가 김인태씨와 사비나 리씨가 갤러리가 초대한 한인여성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금요일 정오 무렵 찾아간 ‘앤드류 샤이어 갤러리’와 ‘돈 오멜버니 갤러리’도 갤러리 관장과 직원 한 명이 전시장을 지키고 있었다.
앤드류 샤이어의 메이 정 관장은 “전시회가 시작되기 전 800장 내외의 초청장을 발송하고, 갤러리와 뮤지엄 관계자 100명을 개별 연락한다”며 “주로 목요일에 마련되는 리셉션에 100∼150명이 오고 이후 하루 10명 꼴로 들르는데 한인들은 토요일을 선호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돈 오멜버니에서 개인전을 갖고 있는 화가 유혜숙씨는 “오랜 연륜을 지닌 갤러리는 자체 고객명단이 있어서 전시가 바뀔 때마다 오는 고정 관람객이 많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대부분이 작가가 초청한 지인이나 컬렉터들이어서 갤러리에 오면 작품을 구입해야한다는 부담감을 갖는 것 같다”고 한다. 하지만 갤러리에 간다고 작품을 사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일반인들이 전시회장을 찾아 준다면 갤러리는 물론 자신의 세계를 한껏 열어 보이고 있는 화가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겠느냐고 이들은 입을 모은다.
김소문 화백은 “전시회는 컬렉터나 미술애호가가 주 관람객이다. 한인들의 경우 이중섭, 샤갈, 고호, 세잔 등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아는 화가들의 전시는 그래도 관심을 갖는 편이지만, 현대미술에 대해선 문외한이다.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아니겠지만 우선 현대미술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전시회를 찾았을 때 작품이해가 힘들면 미국인들처럼 작가에게 물어보면서 소통을 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은선 기자>eunseonha@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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