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어머니는 노래를 불러주신다. 오늘은 목이 쉬어서 잘 될지 모르겠네, 한번 뜸을 들인 다음, 아직도 소녀 같은 목소리로 당신이 좋아하시는 흘러간 옛 가락을 뽑으신다. 간혹 조용필의 노래도 부르신다. 요즈음 신곡을 하나 배우고 있는데 하시며, 아주 생소한 곡을 소개하실 때도 있다. 혼자 사시는 어머니는 책을 많이 읽으신다. 그러나 집안 청소를 하실 때나 정원을 산책하실 때는 꼭 노래를 부르신 단다. 그래서 당신의 일상생활 중에서 나에게 전화로 소개할 수 있는 것이 노래뿐이기 때문에 그러신다고 언젠가 고백하셨다.
나의 유년시절에 어머니가 내게 노래를 불러주신 기억이 없다. 그런데 반세기도 뒤늦게 연로하신 어머니는 노래를 불러주시고, 연로해 가고 있는 딸은 수화기를 귀에 바짝 대고 좋아하고 있다. 말상대가 귀한 어머니는 스스로를 가장 가까운 친구로 만들어 무료하다거나 쓸쓸한 날이 없으시단다. 심심하면 책 읽고, 노래도 부르고, 앞산에 만발한 진달래도 바라보고, 정원에 핀 갖가지 꽃도 들여다보고, ‘나도 매일 바쁘다, 내 걱정은 전혀 하지 말고 전화나 한번씩 해 다오’, 어머니는 전화 상에서 씩씩하게 말하신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어머니의 나날이 그렇게 평화스러운 그림이 아니라는 것을.
어머니는 수년동안 무릎 통증 때문에 거동이 불편하시고, 고통 때문에 밤에도 몇번씩 깨어 나셔야 한다. 지난해에는 다섯 시간에 걸쳐 대장암 수술까지 받으셨다. 집도의사가 아주 묘한 말을 했다고 동생이 전했다. 원체 노령이시라, 수술에서 깨어나실까 보장 못한다, 그러나 일단 깨어나시면 천수를 누리실 것이다 라고 하더란다.
어머니는 그 긴 수술에서 잘 깨어나셨고 그때 마침 도착한 외딸을 보고 좋아하셨다. 너를 보기 전에는 내가 죽을 수 없었지, 어머니는 애써 웃어 보였다. 오로지 자식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것이 어머니의 소망인 것처럼 행동하셨다. 퇴원 후에 두어 달 동안은 서울에서 휴양하면서 정기검진 받으라는 의사의 말을 무시하고 두 주일 후 시골 당신 집으로 내려가신 이유가 참신했다.
며느리가 외출을 못하는 것이 보기에 너무 딱하더라고 하셨다. 그 애가 골프장에도 못 가고 매일 나 때문에 부엌에서 지내는 것이 너무 측은하더라고 하시며 며느리한테 미안해 하셨다. 외국에서 문병 온 딸은 괜스레 죄송한 마음에 한마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 제가 은퇴를 했더라면 어머니 곁에서 좀 오래 지낼 수 있는데, 그만 은퇴할까요? 나는 설탕 발린 목소리로 어머니께 아첨했다.
어머니는 한동안 조용하시더니 아주 근엄한 음성으로 꾸짖듯이 말하셨다. 네가 왜 나 때문에 은퇴를 해? 너는 컴퓨터와 열 손가락, 두뇌와 입으로 일하니까 몸이 고된 것도 아니면서? 은퇴하고 나면 너랑 나랑 다를 것이 무엇이고?. 똑같은 할망구일 뿐이지. 어머니 말씀이 우습기도 하고 약간은 사실이기도 해서 나는 하하 박장대소했다.
평생 바깥일을 하신 적이 없는 어머니는 전문직 일을 하는 여자들을 부러워해 오셨다.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면 공부도 아주 많이 하고 외국 유학도 해서 사회생활을 하시는 것이 꿈이라고 자주 말하셨다. 나는 그런 어머니께 약간의 대리 만족감을 드린다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나의 가족, 나의 직장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사시는 고향 마을은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남아있는 마지막 오지이다. 어느 사화 때 유배당해 온 선조께서 정착하셨다는 그 마을 입구에는 현수막이 자랑스럽게 걸려 있다. “대한민국 마지막 오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십 수년전 미국에 오셨을 때 어머니는 한동안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시더니 어느 날 손들고 선언하셨다. 이 나라에서 영어 못하면 대접 못 받고 너의 짐만 될 터이니, 나는 그만 둘란다. 남들은 얻고 싶어하는 영주권을 미련 없이 버리고 어머니는 고향 땅으로 돌아가셨다. 밤나무 숲이 있는 뒷산, 감 과수원, 적지 않은 농토를 지키시며 어머니는 혼자 사신다. 생각마다 그리운 어머니의 모습.
송정원 베벌리힐스 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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