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인 5월에는 성년의 날도 들어있다. 한국에서는 매년 5월 세 번째 월요일을 성년의 날로 정하고 만 20세 되는 젊은이들을 위해 축하 행사를 연다. 학교나 정부기관들이 기념행사를 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친구나 선후배, 연인들 사이에서 이날 축하 선물을 주고받으며 특별한 날로 챙기는 것이 한 풍속이 되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따로 날을 잡아 성년 축하를 하지는 않지만, 투표권을 갖는 18세, 혹은 음주 허용 연령인 21세가 되면 성년으로 인정을 한다. 그래서 20살, 21살이면 세계 어디를 가나 법적 성년인데 그렇다고 이들이 다 ‘어른’인가 하면 그건 또 그렇지 않다.
며칠 전 신문에서 어미 캥거루와 새끼 캥거루가 마주 보고 있는 사진을 보았다. 엄마 배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기엔 너무 커버린 새끼가 물끄러미 어미를 바라보는 모습이 마치 엄마 뱃속으로 되돌아가고 싶어하는 듯 보였다. 따뜻하고, 편안하고, 먹이 걱정 없고, 안전한 그 곳이 왜 그립지 않겠는가.
하지만 나이 차면 밖으로 나와 혼자 힘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캥거루의 운명이고,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성년의 날이란 바로 이 ‘어미 주머니’에서 나오는 날인데, 나이만 성년일 뿐 주머니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젊은 인구가 많아지고 있다. 몸은 어른인데 부모에게 얹혀 사는 이들 ‘캥거루 족’이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늘어나는 추세이다.
신문사 여직원이 어느날 점심식사 중 한국의 오빠 이야기를 꺼냈다. 외아들로 늘 떠받듦을 받으며 자란 오빠가 나이 쉰을 넘어서도 엉뚱한 일을 벌여서 그때마다 어머니가 뒷치닥거리를 해준다는 것이었다.
“사람은 착한데 현실감각이 없어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엄마가 해결을 해주곤 해서 그런 가봐요”
나이를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니라고 우리는 입을 모았다. 나이 값 못하는 ‘어른 아이’가 많기 때문이다.
지금 중년 세대를 보면 사람은 좋은데 경제적으로 무능하거나, 너무 무책임한 가장, 혹은 너무 자기 몸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가장들이 있는데 대개 맏아들, 외아들들이다. 전 세대 어머니들이 다른 자녀들은 제쳐두고 아들만 싸고돈 맹목적 과보호가 종종 철부지 어른들을 만들어냈다. 물 한번 제 손으로 떠 마시지 않고, 양말 하나 제 손으로 찾아 신지 않고 자란 남성들이 우리 세대에는 흔했다. 그런 남편 때문에 고생한 주부들이 내 주변에도 여럿 있다.
그런데 요즘은 자녀가 기껏해야 한둘이다 보니 모두가 ‘외아들’인 것이 문제이다. 딸아들 구별 없이 제일 좋은 것으로, 주고 또 주고 싶은 부모들 때문에 아이들이 ‘어른’이 되지를 못한다.
이번주 뉴스위크는 베이비 붐 세대의 자녀 과잉보호를 특집으로 다뤘다. 자녀가 독립적 성인으로 자라려면 부모가 품에서 내보내야 하는데 지금 부모들이 그걸 못한다는 것이다. 자녀가 18살이면 일반적으로 집을 떠나 대학으로 간다. 물리적으로는 부모의 품을 떠난다. 하지만 학비며 용돈을 대주는 것은 물론, 셀폰, 이메일로 사사건건 코치하며 정신적으로 품에서 놓지를 못하는 것이 요즘 부모들이다.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가 무섭게 쏜살같이 도움을 주는 이들 부모를 ‘헬리콥터 부모’라고 부른다.
부모와 자녀 사이가 이러하다 보니 대학 졸업하고도 부모 집으로 돌아와 얹혀 사는 걸 부모도 아이도 개의치 않는 분위기이다. 2000년 센서스를 보면 18세-24세 독신남녀 중 절반, 34세까지 나이를 높이면 25%가 부모 집에서 살고 있다.
‘어른’의 기본 조건은 책임감이다. 자기가 스스로를 책임지는 능력과 의지이다. 아이가 성년이 되면 부모는 해주고 싶어도 참는 연습이 필요하다. 자녀가 떡을 달라는 데 돌을 주는 부모가 문제가 아니라 떡을 한없이 주는 부모가 문제이다.
같은 길이라도 남이 운전한 길은 몇 번을 가도 모른다. 자신이 직접 운전을 해야 길을 익힌다. 부모가 자녀 인생 길의 영원한 운전기사가 될 수는 없다면 운전대를 제때 넘겨야 할 것이다. 그래야 아이가 어른이 된다.
권정희 논설위원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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