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만(전 미한국상공회의소 회장)
한국경제의 자존심이라 할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가격담합에 관련되어 미국의 반 트러스트 법을 위반한 혐의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항공업계에까지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미국의 반트러스트 법이 무엇이기에 외국기업의 활동에 이렇게 가혹한 제제를 가하고 있나.
미국의 산업화는 동서 연결철도가 완성되고 남북전쟁이 끝나면서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산업발전에 따라 많은 대기업이 등장하게 되었고, 이들의 독점과 횡포가 만연하면서 이를 제재할 수 있는 구조적 장치를 마련하게 되었다. 당시의 대기업형태는 기업의 연합형으로 “Trust”라고
불렀으며, 오늘날 볼 수 있는 모회사와 계열사의 관계로 보면 될 것이다. 19세기말과 20세기 초의 미국의 주요산업은 오일, 철도, 철강 , 농산물가공, 화학 기계 등으로 “Trust”형태의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었고, 이를 소비자 보호 입장에서 제제하고자 셔만법이 제정되었다. 이후에 제정된 비슷한 법들이 많이 있는대, 이들을 반 트러스트 법이라 부르고 있다. 반 독과점 법(anti-monopoly laws), 경쟁법(competetion laws), 공정거래법(fair trade laws) 등은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
이 법의 주요내용은 경쟁을 저해하는 불합리한 계약, 담합, 공모 등을 위한 공동 행위와 더불어 시장 독점을 위한 모든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위반 시에는 벌금형과 함께 금고형까지 가능하게 되어 있다. 벌금의 경우 취득한 이익의 두 배 혹은 손해액의 두 배까지 징수하고 금고의 경우 3년까지 가능하게 되는등 강도 높은 징벌을 가하고 있다. 이에 더 나가 반 경쟁적인 행위를 사전에 방지할 것을 목적으로 크레이튼 법이 제정되었고 동시에 연방 공정거래위원회법도 제정하여 독립된 기관으로 연방공정거래위원회가 발족하였다.
공정위법은 다른 법보다 적용범위가 넓어서 반 경쟁적, 불공정행위뿐만 아니라 소비자보호분야를 다루고 있다. 이외에도 몇 가지 법을 추가로 제정 보강하여, 공정거래와 소비자 보호의 관점에서 기업의 인수와 합병 등도 규제 하고 있다.
미국의 경쟁 법이 외국기업에 대해서는 어떠한 기준에서 규제를 하고 있는가. 연방경쟁법에는 국제 사건에 대한 적용을 가리는 지침이 있다. 외국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미국의 수입, 수출이나 기타 경제 활동에 영향을 미칠 때는 미국 경쟁 법이 적용된다는 내용이다. 더 나가서 실제
로 미국에 현지법인, 지사 또는 사무소가 있는 경우에는 미국법이 적용된다. 한국기업의 미국 현지법인은 국적이 한국이 아니고 미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기업들은 어떻게 대응하여야 할 것인가. 먼저 우리 정부와 기업들은 미국 경쟁 법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데 노력 하여야 한다. 19세기말과 20세기 초 미국 부의 상징이었던 스탠다드 오일을 미 법원은 반 독점법의 정신에 따라 여러 회사로 분사시키는 과감한 결정을 내
려 시행했다. 통신산업의 효시로 보아야 할 AT &T(현재의 AT&T와는 다른 회사로 일명`Bell’을 말함)를 분사시킨 결정은 전 세계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또 침체기의 미국 경제에 활력을 넣었을 뿐 아니라 미국 IT산업을 절대적 우위에 올려 놓은 핵심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MS)도 사업의 독점성 때문에 항상 분사의 위험을 벗어나기 위해서 피나는 투쟁을 하고 있고 언제 어떠한 결정이 나올지 긴장하는 현실이다.
아무리 기업의 미국 내 입지가 절대적일 지라도 소비자 보호라는 명제 앞에서 정부의 강력한 제재를 받을 수 밖에 없다. 이는 경쟁제한은 미국이 추구하는 시장경제 체제에 훼손을 야기시키고 장기적으로 경제에 악 영향을 준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결국 미국식 시장 경제를 기축
으로한 자본주의의 지속적인 발전에 저해가 되는 요소를 사전에 차단한다는 매우 현실적인 문제 제기인 것이다. 연방 공정위를 행정부 소속이 아닌 의회에 직접 보고하는 독립기관으로 만든 것도 그 이유다. 미국 기업, 외국기업을 가리지 않고 가장 엄격한 법 적용을 집행할 수 있도
록 한 것이다.
미국의 대기업들은 정기적으로 경쟁 법에 관련된 사항을 교육이나 쎄미나를 통해서 임직원에게 철저히 알리고 있다. 이러한 조치를 취한다 하여도 실제 업무 수행시 실무자의 조그만 실수로 기업차원에 엄청난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경쟁 법 적용이 있으리라 생각되는
사업에 대해서는 계획 작성시 또는 시장 분석시에 처음부터 전문 변호사의 자문과 조언을 받도록 하여야 한다. 사소한 용어를 잘 못 사용해서 큰 일을 당한 예가 적지 않다.
우리나라에는 업종별로 각종 단체나 협회가 많이 있다. 빠른 성장과 효율적인 경영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정보교환이나 조사활동 등과 업계의 친목도모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그러나 동종의 경쟁 업체끼리 한자리에 모이게 되면 대화 중에 사업의 어려움을 토로하게 되고 가격이나 시장 상황을 이야기하다 뜻하지 않게 경쟁법을 어겼다고 해석될 가능성이 있는 논의를 할 위험이 있다. 예를 들어 이런 일을 가정해보자. 동종업계 기업관계자들이 모여 이런저런 주제를 가지고 회의를 하는 과정에서 “특정제품의 가격은 어느 선 이하로는 취급하지 말자”는 의견교환을 했다고 하자. 당사자들은 손해보고 물건을 팔 수 없으니 당연히 할말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것이 회의록에 남는 경우다. 별 문제없을 것 같은 기록이 결정적인 상황에서는 매우 불리한 증거가 되고 자칫 최근 한국기업들이 당하는 것과 같은 일파만파를 초래하는 빌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협회 등에서 모임이 있을 때에는 토의안건에 대하여 사전에 전문 변호
사의 의견을 듣거나 변호사를 회의에 직접 참석하게 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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