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내다
그동안 쓴 주방일기들이 모아져 책이 한 권 나왔다. ‘방방 뜨는 여기자 생생 미국일기’라고, 제목이 몹시 튄다. 게다가 표지엔 내 얼굴사진이 대문짝 만하게 실려있으니 얼마나 민망하고 쑥스러운지 몸둘 바를 모르겠다.
맹세코 말하건대, 내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니고 책을 출판한 ‘문학나무’에서 자기네가 원하는 대로 원고와 사진을 고르고 편집하여 만들어낸 것이다. 책 날개에 들어갈 작가사진이라 하여 대충 찍은건데 그걸 표지에 쓸 줄 알았더라면 나는 정말 며칠을 굶었더라도 더 다이어트를 하고, 화장도 더 예쁘게 하고, 머리도 더 예쁘게 하고, 옷도 더 예쁜 것을 골라 입고 찍었을 것이다.
또한 사진을 찍어준 이재훈씨의 이름도 꼭 넣어달라고 부탁했을 것이다. 이재훈씨는 우리 푸드 섹션 이은영 객원기자의 남편인데, 아마추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전문적인 수준으로 사진을 찍는 재주꾼이라 이 사진도 내가 수다떠는 모습을 멀리서 망원렌즈로 자연스럽게 잡은 것이다.
주방일기를 써온 지난 3년반 동안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책을 내라고 격려해주셨다. 특별히 타주에서 일부러 전화를 걸어 왜 책을 안 내느냐고 독촉하신 분들이 많았고, 안 믿어지겠지만 여자보다 남자독자들이 더 많은 관심을 보이며 전화를 주셨다.
작년까지만 해도 그런 권유를 받을 때마다 나는 한사코 손사래를 치며 사양했다. 이유는 주방일기의 글들이 천방지축이어서 요리칼럼이라 할 수도 없고, 생활수필이라 할 수도 없고, 그저 매주 마감이 닥치면 아무거나 생각나는 대로 마구 써댔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한 권의 책으로 묶는다는 것이 우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생각이 바뀌었는지 내가 책머리에 쓴 글의 일부를 옮겨본다.
“…이 글들은 미주 한국일보 푸드 섹션에 ‘정숙희 기자의 주방일기’란 제목으로 실렸던 칼럼들을 추린 것이다. 어떤 사람이 ‘이런 글을 한국에 있는 사람들도 좀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내 글을 통해 재미교포의 삶을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국서 태어나 자라고, 미국으로 이민 와 결혼하고 아이 키우며 살아가는 평범한 이민자 가정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이 책은 미주 한국일보 독자들의 것이다. 매주 마감 돌아올 때마다 쓰기 싫다고, 쓸 것이 없다고, 이제 그만 쓰겠노라고, 우는소리 하면서 허둥지둥 쓴 글들이 묶여 한 권의 책이 되었다. 항상 재미있게 읽고 있노라고 격려해주신 독자들의 사랑과 성원이 없었던들 주방일기와 이 책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 친구의 추천으로 나의 원고를 검토한 문학나무에서 책을 출판하자고 결정한 것이 작년 말, 3월부터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 5월8일자로 출간되었다. 출판사와의 모든 연락은 이메일로 주고받았고 한번도 한국에 나가지도 않은 상태에서 책이 나온 것이 정말 신기하다. 게다가 내가 내 책을 받아보기도 전인 어제 아침에 벌써 한국의 한 독자로부터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는 이메일을 받았으니 세상이 너무 좁다고 해야하나, 빠르다고 해야하나.
방금 택배로 도착한 10권의 따끈따끈한 책을 손에 받아든 나는 지금 너무 가슴이 뛰고 흥분되어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남들이 책을 낼 때 비웃었던 것도 깊이 반성하고 있다.
내가 그동안 쓴 주방일기가 무려 170편쯤 되는데 출판사에서는 그중 66개를 골라 실었다. 한국의 독자층을 겨냥한 책이라 나의 개인 일상사보다는 미국생활을 묘사한 글들과 여기자의 시각에서 쓴 것들이 많다.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지만 내 돈 한푼 안들이고 이렇게 책이 나온걸 감사하고 있다.
책을 보고 싶어하시는 독자들, 또한 내가 한 권쯤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주위 분들께 양해를 구할 것이 있다. 이 책은 자비출판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권리를 출판사가 갖고 있고 나는 사람들에게 책을 나눠주거나 팔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나도 돈을 주고 사야하는데 지금으로서는 우리 가족에게 나눠줄 책조차 없으니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어리둥절해 있는 중이다.
그저 축하나 해주시면 감사하겠다. 새로 쓴 책이 아니라 여러분이 그동안 다 읽은 글들이니 큰 기대를 가질 필요도 없겠다. 나의 바람은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읽어주었으면, 그리하여 우리 미주한인들의 일상을 편안하게 이해하여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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