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영(논설위원)
한국 사람들은 속된 말로 “체면이나 위신 빼면 시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한국인들은 알맹이 보다 겉모양을 중요시 한다는 이야기다. 체면이나 위신 얘기가 나오니 어느 기사에서 본 월가의 한 큰 기업체 회장의 스토리가 생각난다. 연 수입 1,000만 달러에 달하는 이 회장은 가끔 점심시간에 보면 전날 집에서 먹고 남은 음식을 다음날 브라운 백에 담아 가지고 와서 먹곤 한다고 한다. 한인들은 이런 경우 어떻게 할까?
아마도 부인이 싸주는 백을 보고는 대부분의 남편은 어김없이 다음과 같은 말을 할 것이다. “당신은 날 뭘로 보고 그 따위 것을 싸주느냐, 남 보기 창피하고 스타일 구기게...” 또는 “다른 사람들이 사장인 나를 어떻게 보겠어?” 하면서 그대로 두고 나올 것이다. 이는 간단한 예이지만 아무리 풍요한 나라에서 살더라도 미국인들은 생활만큼은 참으로 검소하고 실리적인 면을 추구한다. 그리고 남의 눈치를 보거나 체면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다못해 여름철 사람이 많이 모이는 해변 가에 가더라도 이 나라 사람들은 있는 사람이건 없는 사람이건, 직책이 높은 사람이건 낮은 사람이건 다 똑같이 수영팬티 하나 입고 어울린다. 그러나 한국인은 어떠
한가. 돈이 좀 많거나 명예가 있는 사람들은 체면을 생각해서 대중 앞에 모습을 안 보인다. 어디 특별히 구분된 장소에서 따로 특별한 대접을 받으려고 한다. 이것이 한국인들의 체면위주 생활이요, 고정관념이다.
그러나 체면과 허세가 사실 얼마나 위험하고 사람을 잡는 것인가. 우리는 아무런 실속도 없으면서 너나 나나 체면이나 허세 때문에 정작 필요하고 중요한 많은 것을 상실한다. 그 뿐인가.
체면 때문에 편할 것도 편하게 살지 못한다. 하다못해 서로간의 대화도 체면이나 위신 따위와 상관없이 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해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 말하면 저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주저하고, 저 말하면 이 사람이 어떻게 반응할까 고민해야 되고, 남을 대접할 때도 이걸 사면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까 고민하면서 음식을 사야 하는, 그야말로 필요 이상의 신경을 쓰고 산다.
미국인들은 간단한 곳에 가서 커피든, 샌드위치든 쌍방 간에 아무런 부담이 없는데 우리의 경우 거창한 곳에서 뻑적지근하게 내야 낸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 다 같이 제대로 주고받은 느낌을 갖곤 한다. 자동차도 굴러가기만 하면 된다고 누군가 말했지만 한인들은 대부분 그게 아니다. 능력은 없어도 어떻게든 좋은 차를 타야 하고 옷도 유명한 브랜드 제품으로 잘 입어야 한다.
몸에도 이왕이면 보석으로 치렁치렁 감아야 스스로가 뭐 좀 행세하는 사람처럼 만족하고 남들도 그런 사람들을 괜찮은 형편의 사람으로 보곤 한다.
중국인이나 유대인들이 잘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돈도 열심히 벌고 절약도 잘 하니 사람들의 생활이 실속 있고 실질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도 이들처럼 생활패턴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꼭 큰 집이 아니더라도 수입에 맞고 형편에 알맞는 집과 차를 사고 옷을 사 입어야 하지 않을까.“골프가 한국인의 병”이라고 시간도 여유도 없는 사람이 곧 죽어도 골프는 쳐야 한다고 골프장에 살다시피 하는 한인들이 많다.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됐는가. 그러다 보니 가게를 맡은 부인들이 죽어난다. 툭하면 가게나 집안을 비워두고 골프장으로 달려가니 이런 사람들은 가게나 집안이 제대로 돌아갈 리 만무하다.
그 뿐인가. 사랑과 기쁨, 즐거움으로 이루어져야 할 결혼이라는 대사에까지 조건을 따지고 혼수를 따지다 결혼도 하기 전에 파경에 이르거나, 결혼을 하고서도 파탄이 나는 슬픈 경우들을 주위에서 많이 본다. 여기서는 별로 이런 얘기가 없지만 의사나 변호사가 된 자식을 둔 가정에서는 흔히 “열쇠 3개를 가져올 줄 알았는데, 이게 뭐냐”, “우리를 뭘로 봤길래“ 하면서 이것을 트집잡아 두고두고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간혹 있다.
체면과 겉치레를 소중히 여기는 우리들은 자녀들도 개인의 적성이나 취향을 고려하기 보다는 우선 학교 이름부터 보고 아이에 상관없이 명문학교만 고집하다 후회를 막급하게 하는 부모들도 종종 본다. 졸업은 무수하게 하는데 제대로 직장 하나 없이 빙빙 도는 자녀들은 또 무엇인가. 이는 모두 체면과 위신, 이를 위한 과소비와 분에 넘치는 허세가 만든 우리의 실상이다. 언제까지 우리가 이런 실속 없는 생활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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