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자(의사)
어제 오후 외국인 스리랑카(Sri Lanka)인 친구에게서 점심을 같이 먹자는 전화를 받고 10분 거리의 그녀의 집에 들렸다. 그녀의 집안에 들어서니 매콤한 카레 냄새가 온 집안에 배어 있다.월계수 잎과 카레가루를 넣어 구워 만든 감자, 토마토와 양파를 넣어 만든 닭고기, 스튜, 생선
튀김 등 푸짐하게 음식을 장만하였다. 음식이 듬뿍 담긴 접시가 놓여있는 하얀 식탁보 위에는 물기에 젖은 장미꽃잎들을 뿌려 놓았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그녀의 거실에는 불상을 모신 불당이 있어 작은 절과 같은 분위기다. 그녀는 매일 아침마다 향을 피우고 촛불을 켜놓고 불공을 드린다고 한다. 마른 풀을 태우는 듯한 향로의 냄새가 집안에 가득하다.
점심을 먹으면서 한동안 그녀의 딸과 부딪치며 겪었던 우여곡절의 길고 긴 이야기를 들었다.햇볕에 그슬린 듯한 검은 피부의 열대의 야생화 같은 그녀의 딸과 도전적인 매서운 눈매의 똑똑한 대학 동기생 중국청년과 사랑은 부모들에게는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젊은 연인들은 양쪽 부모의 반대라는 암초에 부딪쳤다.
그러나 모든 연인들처럼 그들도 사랑이라는 열병을 앓으면서 불협화음이 생기고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 틈을 타서 양쪽 집안은 두 연인이 결혼을 포기하도록 끈질기게 설득하였다.마침내 결혼을 눈 앞에 둔 젊은 연인들은 헤어졌다.
더욱이 하늘을 나르는 듯 그녀를 기쁘게 한 것은 마침내 그녀의 소원대로 딸이 같은 스리랑카 남자와 다음달 5월에 결혼하기로 마음을 바꾼 것이다.
그녀는 “나의 딸과의 지겨운 전쟁은 끝나고 신은 나의 편이었다”라고 흥분으로 들떠 있었다.
딸과의 전쟁을 치르면서 마른풀처럼 시들어가던 그녀에게 이렇게 샘솟는 에너지를 충전시킨 원동력은 무엇일까?
같은 동족과의 결합을 원하는 것은 거의 생존 본능과도 같이 질기다.
나는 해마다 열리는 학회에 참석하게 되면 며칠 동안 그녀와 같은 호텔방에 묵으면서 밥도 같이 먹고 샤핑도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국에서 병리학을 전공하고 미국에 건너와 정신과병원 임상 디렉터(Clinical Director)로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그녀가 이렇게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뜻밖이었다. 나는 그녀의 유창하고 세련된 영어 구사력이 늘 부러웠다. 현란한 미사여구와 달변으로 다민족 사회에서 인종
사이의 벽은 존재하지 않으며 인류의 평등과 자유를 부르짖던 그녀가 아니었던가.
미래에 그녀의 딸이 누구를 선택하든 그녀의 선택을 존중할 것이라고 장담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그녀의 이야기는 다르지 않은가? 그녀의 딸이 막상 타인종과 결혼하려는 선택과는 타협하지 않았다.
그녀는 영국 식민지 지배의 영향으로 서구문화의 능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와 동양의 전통문화의 가치관을 섞은 복합성을 지니고 있다. 어둡고 두꺼운 영국 모직물과 동양의 원색적인 빛깔의 섬세한 실크 천을 섞어 짠 합성섬유와도 같다고나 할까.
그녀의 모국인 스리랑카는 찬란한 고대 불교문화와 대자연의 원시림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열대성 기후의 인도양에 한 점 떠있는 아름다운 섬이다.그녀는 스리랑카에 쓰나미가 할퀴고 지나가듯이 서구의 물질문명의 해일이 휩쓸고 지나갔으나 가난하지만 고유한 정신문화를 지키고 있다는 긍지를 가지고 있다.
가슴앓이를 해 온 그녀는 그동안 쌓인 앙금을 씻어내려는지 다음 달에 딸의 결혼식을 자기 나라의 고유한 전통식 불교식으로 올린다고 한다.
지구촌이 한마당으로 축소되어 가고 의식구조가 국제화로 성숙해 가고 있는 지금, 화사한 봄꽃들의 향연이 벌어지는 아름다운 5월이 온다.
피부가 다르고 문화 배경이 다른 인종과의 갈등을 극복하고 사랑의 열매를 맺는 결혼식을 올리는 젊은 커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많은 하객들의 박수갈채와 축복을 받으면서 새 둥지를 틀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외국 친구가 겪었던 딸과의 갈등으로 고통받았던 이야기를 들으면서 타인종과의 접목은 결혼이라는 끈으로 묶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를 온 몸으로 실감하였다.문화배경이 다른 타인종과의 사이는 마치 통풍이 되지 않는 플라스틱 같은 엷은 막이 가로막고 있어 감정의 교류가 힘든가 보다.
현실이라는 체감온도는 뼈가 시리도록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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