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LA에서는 참으로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50대의 아버지가 10살, 11살 남매를 자동차안에 강제로 밀어 넣고 불질러 죽인 사건이다. 처음 그 아버지는 ‘같이 죽자’며 동반자살을 기도했지만 뜨거움을 참지 못해 중간에 뛰쳐나오고 결국 가엾은 아이들만 목숨을 잃었다.
사건이 보도되자 한인사회는 그 아버지의 비정함에 치를 떨었다. “그 자신 못 견뎌 뛰쳐나오면서 어떻게 아이들을 불구덩이 속에 남겨 둘 수 있었을까”“한국남자들의 욱하는 기질이 또 일을 냈다”며 모두 분노했다.
지금은 자식들 죽인 ‘악마’가 되었지만 이 남성도 2년여 전까지는 가족들 사랑하고 자녀 교육에 열심인 평범한 가장이었다고 한다. 사업이 기울면서 도박에 손을 대고, 그러다 보니 가정불화가 생기고,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이혼수속에 들어갈 정도로 부부사이가 나빠지던 중 이번 사건이 터졌다. 자신과 헤어지려는 아내에 대한 분노, 복수심이 그를 불길 지옥으로 뛰어들게 만든 것으로 추측된다.
이 사건 외에도 한인사회에서는 요즘 가정불화로 인한 폭력사건이 너무 자주 일어난다. 지난 달 25일 한인타운에서 50세의 여성이 사실상 동거 중이던 남성을 살해한 후 자살했고, 그 바로 다음 날에는 60대 초반 남성이 아내를 폭행한 후 경찰이 출동하자 장시간 대치극을 벌였다.
눈먼 말처럼 앞 뒤 분간 못하고 날뛰게 만드는 이 분노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들 분노의 표적이 남편, 아내라는 사실은 부부라는 인연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사람들을 가장 지독한 분노에 휩싸이게 만드는 것은 대개 가장 가까운 사람, 배우자이다.
남들에게 이해심 많고 너그러운 사람들도 자기의 아내·남편에 대해서는 작은 일도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속 끓이고, 사소한 마찰에도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이는 일이 많다. 왜 그럴까. 부부는 남이 아니고 ‘한 몸’이기 때문은 아닐까.
부부를 ‘한 몸’으로 보는 신화로는 그리스의 신화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플라톤의 ‘향연’에 소개된 신화에 따르면 사람은 원래 남녀가 한몸을 이룬 양성체였다. 몸은 원통이고, 얼굴이 둘이며, 손발이 각각 네 개씩이었다. 똑바로 걸을 수도 있고, 8개의 손발로 굴러다닐 수도 있고, 머리가 둘이니 지능도 뛰어난 이들 인간이 힘도 세고 너무 건방 지자 위협을 느낀 제우스가 둘로 갈라놓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항상 자신의 반쪽을 그리워하다가 마침내 찾아 한 몸을 이룬 것이 부부라는 것이다. 결혼하고 한 몸 되었으면 나의 반쪽이 내 몸같이, 내 마음같이 움직여주기를 기대하는데 실제로는 어디 그런가. 그렇지 못하니 토닥토닥 부부싸움이 끊이지를 않는다.
인과응보를 강조하는 불교에서는 모든 부부의 인연은 필연이라고 가르친다. 반드시 만날 사람들이 만난다는 것이다. 길가다 옷깃 한번 스치는 것도 500겁에 한번이나 가능한 대단한 인연이라고 한다. 겁이란 1천년에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로 집채만한 바위를 뚫어내는 시간, 100년에 한번씩 내려오는 선녀의 옷자락으로 바위를 닳아 없애는 시간 … 사람의 인식으로는 상상이 불가능한 시간이다.
부부는 7천겁의 인연이라고 하니 보통 지독한 인연이 아니다. 그 인연이 모두 좋은 인연인 것은 아니다. 부부는 전생에서부터의 인연이 이어지는 것인데 대개 두 종류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전생의 은인들이 은혜를 갚기 위해 만난 인연, 둘째는 빚쟁이들이 빚을 받으러 온 인연이다.
신화·전설을 두고 사실 여부를 따지는 일은 무의미하다. 삶에 교훈으로 삼는 일이 현명할 것이다.
원수처럼 매일 싸우는 부부들은 이런 생각을 하면 어떨까. “아마 전생에 내가 저 사람에게 크게 빚진 일이 있는가 보다”- 좀 더 용서하고 너그러워질 수 있을 것이다.
부부는 긴 상을 함께 들고 가는 사람들이라는 시가 있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걸음을 옮겨야 한다/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다 온 것 같다고/먼저 탕하고 상을 내려 놓아서는 안된다 ”<함민복의 ‘부부’ 중>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한 발/또 한 발” 그렇게 조심스럽고 어려운 것이 부부의 인연인가 보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