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만 버텨라’-. 카이로에서 카불까지, 아랍·회교권으로 불리는 지역에서 번져나가고 있는 속삭임이라고 한다. ‘이란의 키신저’로 불린다던가. 그런 이슬람 전략가가 제시한 전략의 기본개념이 이 ‘버티기’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렇다. 끈기가 없다. 장기전을 치러낼 배짱이 없다는 말이다. 월남전이 그랬다. 미국의 중동 개입 역사를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3년만 버티면 승리는 보장된다. 버티기 전략의 골자다.
그런데 왜 3년인가. 미국이란 나라의 속성에 비추어볼 때 부시는 일종의 변종이다. 그의 집권도 그렇지만 3년이면 끝. 이후 미국은 종이호랑이 본연의 자세로 돌아간다. 그때부터 시작된다. 모슬렘권의 총 반격이. 그 승리의 시발점이 3년 후라는 것이다.
아랍권 전체가 벌써부터 동요하는 기색이다. 부시가 여론에서 밀린다. 그러자 아랍 민주화 프로젝트도 물거품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부쩍 팽배해지면서다. 말하자면 버티기 슬로건이 먹혀들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한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뭐랄까. ‘민주주의 때리기’라고 해야 하나. 민주주의가 조롱을 받고 있다. 공격을 당한다. 아니, 심지어 추행을 당하고 있다. 때문에 하는 말이다.
민주체제끼리는 좀처럼 전쟁을 벌이지 않는다. 이른바 민주화 세계 평화론이다. 공격은 이 이론에 먼저 퍼부어진다. 한 마디로 설익은 이론이라는 것이다.
본래는 워싱턴에서부터 시작됐다. 그 논란이 가열되면서 민주주의를 둘러싼 공방전은 일종의 ‘글로벌화 현상’마저 보이고 있다. 민주주의를 둘러싼 중국과 인도의 최근 설전도 그것이다.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가 아니라 자유의 시대가 될 것이다’-. 만모한 싱 인도 총리가 아시아 소사이어티 주최 경제 컨퍼런스에서 한 연설이다. 21세기가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아시아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일부 전망을 일축하면서 인도처럼 민주주의가 꽃핀 나라가 주도하는 자유의 세기가 될 것임을 역설한 것이다.
중국이 발끈했다. 반격에 나섰다. “민주주의는 수단일 뿐 목적이 될 수 없다.” “길거리에서 데모하는 자유가 민주주의라면 이는 필요한 게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빈민촌에 몰아넣어 교육도 못하고 샤워도 못한다. 그러면서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는가.”
가난에 찌든, 또 문맹률이 높은 인도의 치부를 공격했다. 그러면서 은연중 밥술이나 먹게 된 중국을 자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오늘이 있게 한 공산체제를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일당독재체제야말로 당연하다는 논리다.
어느 편 주장이 옳은가. 판단은 자유다. 그러나 역사라는 것, 그것이 판단의 기준이 된다면 중국측 논리는 억견(臆見)이다. 정치의 자유 없는 경제 발전은 없기 때문이다.
중국 경제가 엄청난 도약을 한 건 사실이다. 그런데도 공산당 최우선 일당독재체제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 “지속적인 현대화, 이는 바로 일당독재의 적이다.” 새뮤얼 헌팅턴의 지적이다.
바로 현재 중국이 처한 상황이다. 시위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전례 없던 일이다. 그러나 그게 문제가 아니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중산층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당 시스템의 강권 통치가 한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 체제가 도대체 얼마나 갈 것인가. 3년. 30년. 많은 중국 관측통들이 보이고 있는 우려다.
‘3년만 버틴다’-. 그러면 어떻게 되나. ‘이란의 제갈량’이라는 전략가의 예측대로 될까. 그렇다고 치자. 그리고 또 3년이, 또 다시 3년이 지난다. 그 때는. 이슬람의 승리. 꿈이다. 그 해답은 역시 역사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회의적 시각이 압도했었다. 소련이 붕괴되고 동구권에 민주체제가 들어선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25년 전의 분위기였다. 2차 대전을 전후한 시기도 마찬가지였다. 오늘날 민주체제는 192개국에 이른다. 민주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일시 후퇴는 있을 수 있지만.
그건 그렇고, 차세대 수퍼 파워 중국과 인도가 벌인 민주주의 공방전. 어떻게 보아야 하나. 일종의 예표적인 사건일지 모른다. 민주세력과 독재체제의 대립, 그 방향으로 동맹의 라인업은 이미 정해졌고 아시아는 거대한 가치관 전쟁에 돌입했다는.
‘3년만 버텨라’-. 한반도에서도 들려오는 소리다. 김정일의 전략이라는 거다. 남쪽의 집권층도 내심 동조하는 눈치다. 그나저나 버텨서 뭘 어쩌자는 것인지. 미몽(迷夢)이란 단어가 퍼뜩 떠올려진다.
옥 세 철
논설위원
sechok@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