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을 읽는 동자승 앞에 무릎꿇은 코끼리. 이 사진이 전시된 Ashes & Snow 전은 5월14일까지 샌타모니카 노매딕 뮤지엄에서 계속된다.
지친 영혼 고요에 젖어…
지난해 LA카운티 박물관에서 열린 이집트의 소년왕 킹 탓(King Tut) 유물전에는 93만7,000명이 몰렸다. 지난 99년 인상파 화가 반 고흐 전도 35만 인파를 모았다. 가끔 이런 화제의 전시회가 LA에서 열린다. 소문에 어두워 이런 전시회를 놓치고 나면 어쩐지 억울하다. “이거, 혼자만 손해본 거 아냐”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 LA에서 열리고 있는 ‘Ashes & Snow’도 이런 화제의 전시회 중 하나다. ‘Ashes…’를 다녀온 사람들은 LA 인근에서 열리고 있는 수 백개의 전시회 중 딱 한 곳, 가볼 만한 곳을 꼽으라면 이 전시회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샌타모니카 피어 옆 대형 가설 건물에서 열리고 있는 이 전람회는 동물과 사람을 찍은 흑백 사진전이다. 그렇게 말하고 보면 별 게 아니다. 지난 1월 개막했으니 시작한지도 한참 됐다. 그런데 이 전시회가 갈수록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허드슨 강변에서 열렸던 뉴욕전에도 50만명 이상이 다녀갔다고 한다. 이걸 보러 한국서 일부러 LA에 왔다는 사람도 있다. ‘Ashes…’의 무엇이 그렇게 많은 사람을 끌어당기고 있는가.
시작도 끝도, 과거도 현재도 없는, 무심한 평화가
바닷바람이 선선한 샌타모니카 피어의 북쪽 주차장에는 큰 천막집이 한 채 서 있다. 이 가건물의 벽면은 152개의 카고 컨테이너가 체크 무늬처럼 엇갈려 지탱해 주고 있다. 굵은 파이프형의 원 기둥은 단단한 종이로 만들어졌다. 실내면적이 5만6,000스퀘어피트에 높이는 10미터가 좀 넘는다.
일본인 건축가 시게루 밴이 만든 이 가건물에는 노매딕 뮤지엄(Nomadic Museum)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유목민을 뜻하는 노매드(Nomad)에서 온 말이라 언뜻 초원에 세워진 몽골의 이동식 전통가옥 게르(Ger)가 떠오른다. 게르처럼 노매딕 뮤지엄도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집이다. 유목 정신이 이어진 건축물인 것이다.
뮤지엄에 들어서면 뻥 뚫린 공간이 시원하다. 관람객들이 밟고 다니는 바닥은 나무로 짜 놓아 삐거덕 소리도 난다. 그 옆은 자갈로 채워져 있다. 이 가설 건물의 안쪽으로 자연광이 새어 들어오는 것은 자연스럽다. 얼렁뚱땅 바닷바람도 함께 스며 들어와 실내 공기와 살을 섞으면서 쾌적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노매딕 뮤지엄은 바다와 격리된 공간이지만 이런 분위기 때문에 바다에 소속된 구조물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만큼 자연 친화적이다. 에어컨이나 히터 등 기계바람이 부는 박물관과는 느낌이 다르다.
이 열린 공간에는 사람과 동물의 한데 어우러짐이 주제인 흑백사진 100여점이 걸려 있다. 수제품인 일본식 창호지 위에 프린트된 사진은 가로 세로 8피트와 5피트 크기. 액자에 넣지 않고 걸개처럼 위에서 달아 내렸다. 사진전과 함께 35밀리 흑백 필름 3편도 대형 스크린에서 돌아가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상영시간이 한 시간 정도 된다. 영화의 한 장면을 포착해 놓으면 바로 사진이 된다.
이 영화와 사진들은 캐나다 출신의 아티스트 그레고리 콜벗(46)의 14년간에 걸친 노작이다. 그는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아시아와 아프리카 오지 여행만 30회 이상 했다고 한다. 방문한 나라는 인도, 이집트, 미얀마, 스리랑카, 케냐, 에티오피아, 나미비아, 통가, 보르네오 등이 망라돼 있다. 지금도 이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코끼리와 원주민 여인이 늪에서 한데 어울리고 있다.
인간-동물 친구로 살았던 그 옛날이…
아티스트 그레고리 콜벗
14년간 오지여행서 포착한
사진 100점 필름 3편 선봬
작품에는 원주민과 함께 치타, 독수리, 코끼리, 하이에나, 해우 등 여러 종류의 동물들이 등장한다. 사진은 명상적이다. 등장 인물들은 모두 눈을 감고 있다. 눈을 뜬 것은 동물들뿐이다. 여인과 엇갈려 앉은 치타나 아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코끼리가 마음을 고쳐먹으면 무방비 상태인 인간은 순식간에 위기에 처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이 눈의 표정을 숨기니 동물도 덩달아 무심하다. 동물과 사람 사이에 평화가 흐르고, 꿈결 같은 고요가 펼쳐진다. 필름 속의 피사체들이 정지 동작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고 때로 ‘우주적인 춤‘을 추어 보이기도 하지만 이 사진들은 기본적으로 정적의 힘과 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이 작품들은 그러나 100% 인간과 동물의 자연스런 일상을 포착한 것은 아니다. 출연 인물들의 동작은 연출된 것이다. 인간은 동물 앞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그 퍼포먼스에 반응하는 동물들의 모습이 촬영된 것이라는 말이다. 35밀리 필름을 보면 이같은 제작과정이 잘 드러난다. 출연진은 미얀마의 승려 23명 등 작가가 방문한 지역의 원주민들이다.
제작자 그레고리 콜벗은 “한 때 인간이 동물과 조화를 이루어 살 때 존재했던 공유 터전을 재발견하자는 것이 이 작품의 목적”이라고 설명한다. 시작과 끝이 없는 세계, 이곳과 저곳이 나눠지지 않는 세계, 과거와 현재가 구분되지 않는 세계를 묘사하고자 했다고 한다. 이 전시회를 통해 관람객들이 경이, 관조, 평온, 희망을 경험하기를 바란다는 것이 작가의 말이다.
전시회를 다녀왔다는 큐레이터 이후정씨는 “이같은 작품은 무엇보다 작가와 피사체인 원주민·동물간에 퍽 친밀한 관계가 이뤄져야 비로소 가능할 것”이라며 “인간과 자연이 옛날처럼 서로 신뢰하고, 서로 편안하게 친구를 이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이 전시회는 보여주고 있다”고 소감을 말했다.
전시회장을 빠져 나오면 바로 북 스토어와 연결된다. 북 스토어에는 3권에 2만5,000달러라는 가격표가 붙은 화첩도 나와 있다. 이곳에는 또한 작가가 1년간 그의 부인에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썼다는 편지가 책으로 묶어져 나와 있기도 하다. 콜벗은 왜 이 전시회에‘재와 눈’(Ashes & Snow)이라는 타이틀을 붙였을까. 그 이유는 작가가 부인에게 쓴 맨 마지막 날 편지에 설명되어 있다고 한다.
샌타모니카 피어 옆에 설치된 노매딕 뮤지엄. 152개의 컨테이너가 필요하나 모든 건축재료와 전시물은 컨테이너 8개에 넣어 운반할 수 있어 나머지 컨테이너 144개는 각 도시에서 현지 조달한다. <진천규 기자>
‘Ashes & Snow’ 전이 열리고 있는 노매딕 뮤지엄의 탁 트인 내부. 지난해 5월 뉴욕전 당시의 모습으로 샌타모니카전에서도 내부는 똑같다.
<사진-워싱턴 포스트>
컨테이너 152개로 만든 이동식 전시장… 5월14일까지
■Ashes & Snow 전
Ashes & Snow전은 웹사이트가 잘 정리돼 있다. 전시회와는 또 다른 맛을 웹사이트를 통해 먼저 즐길 수 있다. 웹 주소는 www.ashesandsnow.org
#전시기간 및 시간 : 5월14일까지 계속. 개관시간은 화~목 오전 11시~오후 7시, 금 오전 11시~오후 8시, 토·일 오전 10시~오후 7시. 월요일은 휴관.
#입장료: 성인 15달러, 시니어 시티즌 및 샌타모니카 거주자 12달러, 학생 10달러, 성인과 동반한 6세이하 어린이 무료, 사전예약에 의한 10명 이상 그룹 10달러. (866)308-4203
#가는 길 : LA 한인타운에서 10번 프리웨이 웨스트를 타서 샌타모니카 4가쯤에서 내려 우회전, 콜로라도 만나면 좌회전해서 곧장 가면 피어 위로 골인하게 되는데 피어 안쪽 파킹랏이 통제된다면 피어 바로 앞길 오션에서 좌회전해서 파킹랏 표지판을 따라 주차하면 된다. 뮤지엄 주차료 5~8달러.
<안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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