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가만히 누워 내 몸을 점검해보는 버릇이 생겼다. 나 자신에게 행하는 ‘밤새 안녕 의식’인 셈이다. 3~4년전 까지만 해도 눈뜨기 바쁘게 온 집을 날아다니며 하루를 맞곤 했다. 그러다 몸 여기저기가 심하게 말썽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그 후론 가끔씩 문제를 일으켰던 부위를 한번씩 살펴보던 것이 이제는 아주 습관이 되어버린 것이다.
매일 아침 깨어났다 싶으면 가장 먼저 양손을 살며시 쥐어본다. 6년전쯤 이삿짐을 옮기다가 갑자기 손이 너무 아파서 짐을 앞에 둔 채 두 손놓고 쳐다볼 수밖에 없었던 적이 있다. 이삿짐은 커녕 부엌칼, 접시 하나 들어올릴 수가 없었다. 그때서야 아차 싶었다. 그동안 내가 아무 생각없이 내 두손이 영원히 건강하리라 믿고 마냥 써대기만 했구나.
그러면서 깨닫게 된 일인데 매일 아침 손이 쥐어지는 정도를 보면 전날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대했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었다. 늦게까지 골치 아픈 일을 치르고 씩씩거리면서 지글지글한 고기에 소주까지 곁들인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손이 반항을 한다. 뻣뻣한 채 굽혀지길 거부하는 것이다.
다음 순서는 머리다. 손 다음으로 크게 혼쭐난 곳이 머리혈관이었기 때문이다. 뇌졸중이었다는 진단이 겁이 나고 또 믿고 싶지도 않아서 담당의사한테 몇번이고 확인을 했지만 머리혈관 여기저기에 확실하게 상처가 나있다는 대답이었다. 다행히 경미하게 지나간 것 같기는 한데 막상 닥친 그 순간엔 내가 이러다 죽나보다 싶었나보다.
일이나면 당장 아이들이 먹고 살 일이 암담할 것 같아 응급실에 실려 가는 와중에도 곁에 있는 아들에게 은행구좌의 비밀번호를 일러준 기억이 난다. 그 즈음까지만 해도 눈을 뜨기가 무섭게 머리속에 온갖 생각들이 밀려들었고, 그 빡빡하게 찬 머리를 이끌고 즉시 몸을 날려 하루의 일들을 수행하기 시작했었다. 한 가지 일에 일어날 수 있는 온갖 변수를 상정하고 그 변수 하나 하나에도 만반의 준비를 해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날 보고 한 친구는 ‘절벽에서 떨어져도 그새 침대 깔아 놓을 것’이라 할 정도였으니까.
아둔하게도 어질어질 아찔한 순간들을 몇 번이나 겪고 나서야 내 머리속이 얼마나 상쾌한지, 제대로 도는지, 지나치게 많은 생각들로 들어찬 것 아닌지 체크해 보기 시작했다. 다행히 온몸에 산소 돌리기, 밤새 머리 비우기등 이런저런 노력을 해온 것이 제법 성공을 거둔 듯 싶다. 때마침 읽은 ‘현대인은 human being이 아니라 human doing이다’란 구절도 내 머리가 상쾌하게 하루를 맞이하도록 하는데 기여한 바가 크다.
손과 머리를 점검한 다음에는 가슴으로 내려온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결국 스트레스라는 게 몸 곳곳에 박혀 무서운 복병이 된다는 걸 새록새록 깨닫게 된다. 한때는 눈을 뜨는 순간부터 가슴에 묵직한 무게가 느껴지는 때가 자주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바쁘다는 핑계로 무심히 지나치거나 아니면 그 무게를 끌어안은 채 하루를 지내면서 또 다른 무게를 더 얹고는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내가 감내할 수 있는 용량과 상태를 파악해 아무리 부산하게 살더라도 스트레스라는 괴물을 다스리면서 살 걸 후회스럽다가도 그동안 낸 ‘수업료’ 덕분에 이제는 그 괴물을 다독거리면서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조금이나마 터득한 게 다행스럽고 고마울 따름이다.
오늘도 기지개를 키며 하루를 떠올려 본다. 뭘 하든 발걸음이 즐거울 것 같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그 모든 일에 그리고 곁에서 함께 해 준 모두에게 잠시라도 감사하고싶다. 항상 내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 아이들도, 여러분 모두도 오늘 하루 화이팅!
김선윤 USC 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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