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매니아를 자처하는가. 그러면 퀴즈를 하나 내본다. 유비가 안희현 현위(縣尉)라는 말직에 있을 때 부패한 하급 관찰관인 독우를 매질하는 사건이 나온다. 누구의 소행인가.
장비다. 이런 답을 했다면 삼국지 매니아로는 분류될 수 없다. 매질을 한 사람은 유비라고 한다. 또 다른 퀴즈. 유비가 신야라는 작은 고을에서 조조의 대병을 맞게 된다. 그 선봉이 하후돈이다. 그 하후돈의 병력을 철저히 궤멸시킨 사람은. 제갈공명. 틀린 답이다. 정답은 유비다.
유비란 도대체 어떤 인물이었을까. 많은 전문가들이 유협(遊俠)출신으로 본다. 요샛말로 하면 건달출신이라는 거다. 전통적인 연의(演義) 삼국지는 유비를 아주 선한 인물로 그렸다. 그러다 보니 우유부단하고 여성적인 캐릭터가 됐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독우를 매질 할 정도로 과단성 있는 인물이라는 것.
중국유맹사(中國流氓史)를 쓴 진보량이란 중국 역사가는 삼국지의 주요 인물 대부분을 유협출신, 다시 말해 건달출신으로 파악한다. 임기응변의 기지가 있고 젊어서는 임협방탕해 생업은 돌보지 않는다. 대체로 이런 성격의 소유자들로 유협의 특징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유협의 무리는 통치자들에게 상당히 위협적인 존재로, 진보량에 따르면 대략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호강(豪强)으로 불리는 부류다. 조조, 원소, 또 당 태종 이세민이 이 계통이다.
또 다른 부류는 한 고조 유방, 명 태조 주원장 같은 인물들이다. 유비도 이 계통으로 볼 수 있다. 천한 직업 출신에, 도원결의를 통해 의형제를 맺었다는 것이 그렇다.
호강은 일종의 지방 세력가다. 평소에는 문객들을 키우다가 사회가 어지러워지면 권력을 쟁취하기도 한다. 다른 부류, 즉 유방, 주원장 같은 사람들은 무뢰배로 불리는 순수 건달이다.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때문에 겁이 없다. 용감하게 모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무뢰배 출신들은 독특한 면모를 보인다. 잘못한 사실을 시인하지 않는다. 대체로 마음이 독하다. 그렇다고 아무 때나 본성을 드러내는 게 아니다. 권력을 쟁취한 후다.
유방은 자신의 제업을 도운 한신, 팽월 등을 죽였다. 주원장은 권력을 잡자 개국공신들을 거의 일망타진해 10만명이나 학살했다. 이들의 본성을 여지없이 드러낸 사건이다.
중국의 건달 역사는 숱한 왕조의 부침만큼이나 유구하다. 그러면서 하나의 패턴을 보인다. 치세(治世)에는 무위도식하는 불평객으로 살아간다. 난세(亂世)가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여기저기서 일어나 이권다툼을 벌인다. 그러다가 일세의 영웅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건달 얘기가 많이 회자된다. 그런 때는 틀림없는 난세다. 소설 삼국지의 무대가 되는 동한(東漢) 말 위진(魏晋) 초가 바로 그런 시대로, 정치권력이 바뀌는 혼란기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게 건달들 얘기다.
또 한 번 퀴즈를 내본다. 중국에서 가장 강력한 조직은. 공산당이정답이다. 그 다음의 강고한 조직은. 한 서방의 전문가는 다름 아닌 ‘중국판 마피아’란 답을 내놓았다.
이 마피아 조직, 다시 말해 건달의 무리들과 결탁을 하지 않고는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처리할 더티 웍(dirty work)이 하나 둘이 아니다. 그런 일을 관리가 직접 하기는 그렇다. 그래서 나타난 현상이 중국 도처에서 오늘날 볼 수 있는 ‘관과 건달의 공생관계’다.
그 두드러진 예가 농토매입을 둘러싼 공공연한 스캔들이다. 산업화의 물결이 농촌지역으로 파급된다. 그 와중에 많은 농토가 산업용지로, 택지로 바뀐다. 그래서 팔린 농토가 2003년 한 해에만 6,000억달러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 중 실제로 농민에게 지급된 돈은 600억달러밖에 안 된다. 나머지 엄청난 차액은 농민을 몰아낸 마피아와 뒤에서 이를 조종한 지방 관리들이 착복했다는 것이다. 이로 끝나는 게 아니다. 농토는 택지 등으로 바뀌면서 시가가 4~5배 이상 뛴다. 이 역시 막대한 이권이다.
13억을 헤아리는 중국 인구다. 그중 중국 경제의 세계화 혜택을 입는 인구는 3억이다. 나머지 10억의 농촌 인구는 절대빈곤에 시달린다. 이런 그들이 그나마 붙여먹던 땅마저 빼앗기면서 중원천지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다는 소식이다.
2004년 한해에 7만4000건 이상의 소요사태가 있었다. 당국의 공식 발표가 그렇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농민 소요가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보다 못한 것인가. 중앙 정부가 칼을 빼들었다고 한다. 부정척결이란 이름 아래 지방 관리와 건달의 공생관계를 타겟으로.
홍콩에서 발행되는 ‘아주신보’는 이 조치에 특히 주목했다. 전환점으로 본 것이다. 실제에 있어 중국사회를 지배하는 두 개의 권력, 공산당과 현대판 호강(豪强) 세력간의 싸움이 벌어진 것으로 풀이하면서. 혹시 천하대란의 조짐은 아닐까.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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