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에서 10분을 가면 작은 샤핑몰이 있는데 그 곳엔 내 액자를 해주는 베트남 아저씨 부부가 일한다. 그 옆집은 베트남 아저씨의 세 딸이 일하는 손톱 손질하는 곳이고, 그 옆에는 피자 집이 있는데 베트남 아저씨의 사위와 막내아들이 피자를 배달하고 피자집 주인은 타일랜드 노인부부이다. 온 가족이 한국 연속 방송극을 틀어놓고 왔다갔다하는데 4세짜리 손녀가 무척 귀엽다. 가족이 모두 한국에 있는 나는 그들의 모습이 늘 참 좋아 보인다고 생각하곤 했다.
1년전부터 조카가 미국에서 고등학교에 다니기 위해 같이 살기 시작했는데 24시간을 혼자 다 쓰던 내게 여러 가지 일이 생겼다. 우선은 학교 등·하교와 월요일과 수요일의 검도장 가기, 일요일에 성당 가기 등 주로 운전하는 일이 많고 식사준비도 만만치 않아 피자를 시키는 적도 있다.
지난 1월말에 전시가 있어 타일랜드에 2주일 다녀왔는데 조카 등·하교를 해결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돌아오는 길은 버스로 해결하기로 하고 우선은 비오는데 대비하여 우산을 샀다. 버스에서 내려서 20분은 산언덕을 혼자 걸어와야 하기 때문이다.
평소에 눈인사만 하고 지내던 이란 아저씨 부인 스웨덴 여인 울라에게 가서 문을 두드렸다. 울라는 66세의 키가 크고 우아한 부인인데 반갑게 맞아주었지만 남편 출근 준비 때문에 도와줄 수가 없어 미안하다고 했다. 그 길에 가까운 한국마켓에 가서 평상시에 늘 친절하고 성실해 보여 내심 존경하던 아저씨께 부탁했는데 새벽시장 갔다가 마켓 문을 열어야 하니까 안되겠다고 했다. 우리집 몇집 건너에 있는 회계사 사무실에 찾아가서 사정을 얘기했으나 아침에 고객이 있어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내친 김에 베트남 부부 가게에 갔는데 마침 문이 닫혀 있어서 옆집 피자집 주인 아저씨에게 갔다.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사정을 얘기했더니 “네가 나를 믿는다”고 하는 말 때문에 도와주기로 했다며 전화가 왔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사실 떠날 날은 다가오고 운전해줄 사람은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타일랜드로 떠나는 날, 아침 7시에는 피자집 주인 아저씨가 조카 등교를 도우러 들렀고 9시에는 피자 배달하는 베트남 부부의 사위가 나를 공항에 데려다 주겠다고 왔다. 조카 검도장은 회계사 사무실의 미국 노인이 데려다 주기로 했다.
이번 여행 준비를 하며 지난 몇 년 동안 대화 한번 안하고 지내던 동네 사람들과 얘기를 시작하게 되었고 공항 가는 길에는 피자 배달에 대해 들었는데 무척 재미있었다. 멕시칸들은 사람은 착한데 팁을 안주고 아르메니안은 아주 짜서 피자를 아예 안 시킨다고 했다. 동네에 큰 한국 교회가 생겨 한인들이 몰려오면 집 값이 올라갈 테니 걱정이라고 했다.
피자집 주인 아저씨 부부는 하루 15시간 일한다는 것을 알았고 한국 마켓 아저씨는 새벽시장 나가시는 것을 알았다. 스웨덴 여인 울라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도 알았고 늘 함께 산보하며 집 앞을 지나가던 개가 죽은 것도 알았다.
이젠 베트남 아저씨 가족을 다 알았으니 수요일 조카의 검도장 차편을 부탁하고 검도장 가느라고 그만둔 재봉 배우던 일을 계속할 생각을 하니 신이 났다. 우리 가족은 왜 다함께 이민을 오지 않았을까 내심 서글퍼하던 내게 가족이 생긴 듯하다.
한 사람이 깨어나면 온 마을이 깨어난다는 둥 추상적인 생각만 하며 마을에서 고립되어 있던 내가 아이 하나를 키우는 게 온 마을 사람들이 다 함께 키우는구나를 느끼며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정한 이웃을 대할까를 생각한다.
이제부터는 스웨덴 부인에게 가서 커피도 한잔 마시고, 베트남 가족을 위해 식사도 한번 준비하고, 동네사람들 산보길이 즐겁도록 집 앞 언덕에는 하얀 장미도 듬뿍 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타일랜드에서 돌아오는 날에는 놀랍게도 회계사 하시는 미국 노인 부부가 공항에 나와 있었다. 나는 매일매일 사는 법을 새로 배우고 있는 것 같다.
박혜숙
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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