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다. 덕담이 오가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새해 새날이다. 그런데 별로 그런 기분이 안 든다. 2006년의 전망이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아서인가.
“2005년은 운이 따른 해였다. 불안요인은 도처에 잠복해 있었다. 그 가운데 세계 경제는 안정된 성장세를 보였고 민주화 대장정은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다. 운이 따르지 않는다고 가정할 때 2006년은 진정한 리더십이 요구되는 해다. 불안요인들은 계속 누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내린 새해 전망이었던가.
‘올해도 이슈의 중심은 이라크다’-. 쏟아지는 담론, 새해 전망은 대부분이 이라크를 그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 2006년 국제정세의 주 불안요인은 여전히 이라크라는 말이다.
혼돈스럽다. 마치 재앙의 근원지 같이 그려진다. 베트남에 비교된다. 판도라의 상자라도 열린 것 같다. 이라크 사태를 보는 시각 말이다. 무성한 가지를 치면 그렇지만 크게 두 갈래로 압축되는 것 같다.
폭정과 테러리즘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중동사태의 근본적 해법은 민주화밖에 없다. 이른바 ‘신민주화 도미노 이론’이 그 한 갈래다. 네오콘의 주장이고, 부시 행정부 정책이다.
다른 하나는 이라크 사태를 역사적 경험이란 측면에서 접근하는 입장이다. 이에 따르면 민주화에 의한 중동 평화론은 허구로, 이라크는 궁극적으로 내전상황을 맞게 된다는 것이다.
어느 주장이 맞을까. 그 논란에 끼여들 생각은 없다. 중동이 민주화돼 테러전쟁이 속히 끝나는 게 바람이긴 하지만.
그 과정에 제기된 한 가지 주장이 그렇지만 관심을 끈다. 오래 전부터 머릿속에서 맴돌던 질문에 해답을 주는 거 같아서다. 그 질문은 다른 게 아니다. 민주화 허무주의의 종착역은 어딘가 하는 것이다.
민주화 세계 평화론은 상당부문 맞다. 민주 체제끼리는 전쟁을 좀처럼 하지 않으니까. 문제는 민주화를 이룩한 후 얼마나 많은 국가들이 내전상태에 돌입했는지, 그 역사적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온 게 ‘윈-루즈(win-lose) 시나리오’다.
이라크를, 중동사태를 재단하는 시나리오다. 그런데 불현듯 한반도가 떠오른다.
아마도 더 오래 전에 잉태된 사태였을 것이다. 뚜렷한 징후는 그러나 2001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문민시대 10년을 맞은 시점이다. 하루가 멀다고 터지는 게이트와 함께 한 치 앞을 모르는 정국상황을 맞은 것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오리무중(五里霧中)이었던가.
이후의 흐름은 점차 뚜렷한 방향으로 치닫는다. 잠정적 혼란상황을 맞더니 패거리를 지어 싸우고, 급기야는 양극화된 극단의 사회상이 연출된 것이다. 그 세태를 빗댄 사자성어가 이합집산(離合集散), 우왕좌왕(右往左往)에, 당동벌이(黨同伐異), 상화하택(上火下澤)이다.
그 세태의 흐름이란 게 그렇다. 뭐랄까. 민주화 허무주의의 결과란 해석도 가능한 것 같다. 그 종착역은 그러면 어디인가. ‘윈-루즈 시나리오’가 부분적이나마 그 해답을 제시하는 것 같다. ‘내전상황 돌입’이라는.
뱉는 말마다 독이 들어 있는 것 같다. 누구의 표현을 빌리면 좌파는 우파를 아비 원수 보듯이 대한다. 우파는 좌파를 마치 쓰레기라도 보는 듯하고. 극단의 양극화 현상이다. 그러면서 이미 라인업은 형성됐다.
‘남한은 이미 사상적 내전상태에 돌입했다’-. 오래 전부터 나온 소리다. 한미동맹은 이완되고 있다. 거기다가 대한민국의 국기가 흔들리고 있다. 이 상황에서 보·혁 갈등은 날로 첨예화되고 있다. 한국 사회는 한마디로 총성 없는 내전상황을 맞았다는 지적이다.
그 싸움은 어떤 양상의 싸움이 될 것인가. “세계의 보편적 가치체계를 유지하려는 싸움이다.” 한 국내 논객의 정의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좌파세력과 휴전선 너머의 김정일 정권이 한 축을 형성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보수세력이 한 축이 돼 전개되는 싸움이라는 것이다.
“그 전쟁은 그리고 민족의 진로가 걸린 싸움이 될 것이다.” 계속 이어지는 전망이다. 싸움 자체가 대한민국의 도덕적 기반 붕괴와 연결돼 있다. 거기다가 그 라인업의 외연은 북한과 중국, 그리고 미국과 일본이라는 양 동맹세력과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대륙세력’이냐, ‘해양세력인가. 대한민국의 방향성과도 맞물려 있는 싸움이라는 얘기다.
관련해 던져지는 궁극적인 질문은 이런 것이다. 대한민국은 21세기의 동북아에서 자유민주주의의 국체(國體)를 유지하고 살아남을 것인가. 이 점에서 2006년은 길고 긴 싸움이 벌어지는 한 해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다.
옥 세 철
논설위원
secho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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