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연히 제수씨가 차려진 상위에 / 부드러운 쑥이 놓여 있기에 문득 목이 메이네. / 그 때 나를 위해 쑥을 캐주던 이 / 그 얼굴 위로 흙이 도톰히 덮이고 거기서 쑥이 돋아났다네…. 200여년 전 조선이란 사회를 살았던 한 남자의 시다.
가난 가운데 남편 뒷바라질 하느라 겨울에도 여름 옷 걸치고 살던 아내다. 그 아내가 죽었다. 그래서 돌아앉아 눈물을 흘렸다. 그 이유로 그 선비는 벼슬 사회에서 완전히 따돌림을 받는다. 이게 유교전통의 조선사회였다.
그런 시절 심노승이란 한 조선의 선비는 아내를 잃자 아내를 애도한 26편의 시를 남겼다. 앞에 인용된 게 그 애도시의 한 구절이다. 200년이란 시간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한 인간의 진실한 감정은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남자는 울어서는 안 된다. 유교문화뿐이 아니다. 거의 모든 문화에서 공통된 덕목이었다. 사회 지도층 신분의 남자가 눈물을 보인다. 그건 인격적 결함이 있다는 뜻이다. 이 전통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에는 ‘머스키의 눈물’이란 관용구가 있다. 1972년 당시 민주당 대권주자로 나섰던 에드먼드 머스키가 대중 앞에서 눈물을 쏟은 후 생긴 말이다. 이 해프닝과 함께 머스키는 지도력을 상실했다. 이 말은 이후 눈물을 흘리는 남자에 대해 부정적 의미로 쓰인다.
사실 남자가 운다는 건 별로 보기 좋지 않다. 남을 감동시키기보다는 짜증을 내게 하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정치지도자로서 눈물은 금기다. 아무래도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게 눈물이기 때문이다.
가장 냉정한 판단이 요구되는 게 정치이고, 선거다. 눈물로 대표되는 동정이니 감정이입이니 하는 것은 최대한 자제되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므로 눈물로 호소하려는 스타일의 정치인은 미국의 정치판에서는 기피인물이 되고 있는 것이다.
부시가 울었었다. ‘울었었다’란 대과거형을 쓴 건 현 대통령이 아닌 아버지 부시가 울었던 걸 말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1차 걸프전 때다. 지상군 투입을 결정하던 상황에 대해 기자들이 묻자 말을 채 끝내지 못하고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 보내야만 한다. 그 고뇌의 순간을 되돌아보다가 공중 앞에서 그만 눈물을 보인 것이다. 그러나 비난이 쏟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찬사가 나왔다. ‘대통령의 눈물은 걸프전에 참전한 미군병사들에게 최대의 선물이라’이라고.
어찌 보면 머스키와 같은 상황이다. 그러나 평가가 달랐다. 그 사람의 평소 모습과 관련지어져서다. 자신이 2차 대전 참전용사다. 전쟁의 두려움을 아는 부시의 눈물은 미국의 젊은 병사들을 향한 눈물이었다. 결코 자신을 향한 게 아니었다.
김수환 추기경이 울었다. 한 국내 언론과 크리스마스 특별대담에서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진위 논란으로 인한 국민들이 받은 상처를 말하다가 두 차례나 말을 잇지 못하고 울었다고 한다.
인간생명의 존엄성을 해친다는 이유로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반대했던 김 추기경이다. 그렇지만 황 교수의 연구 성과에 대한 의혹이 사실이 아니었기를 바랐었다고 한다.
김 추기경은 “한국 사람이 세계에 고개를 들 수 없는 이런 일이…”라며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간신히 말을 이었다.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부정직하게 살았는지, 진실을 외면하고 살았는지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그 눈물이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한국인이면 똑같이 느끼는 아픔이 배어 있다. 그리고 그 아픔을 씻어내려는 간절함 같은 게 느껴져서다. 눈물 없는 세상을 위해 흘리는 눈물이랄까, 눈물의 미학이라고 할까.
동시에 불현듯 떠오르는 게 이제는 천국 나라에 간 김현승 시인의 시다.
더러는 /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 금가지 않은 / 나의 전체는 이뿐! /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주시다
나에게 순수한 것은 눈물뿐이므로 눈물밖에 바칠 수 없다는 시인의 기도다. 그 눈물은 시인에게 있어서는 생명이다. 그러므로 옥토에 뿌려진 눈물은 새로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기원을 담고 있다.
김 추기경의 눈물은 상한 마음을 치유해 주는 크리스마스의 선물은 혹시 아닐까.
옥 세 철논설위원secho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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