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은주는 계속 내려가고 있다. 열기는 그런데 높아만 간다. 해마다 12월만 되면 되풀이되고 있는 미국적 현상이다.
예수는 물론 산타클로스도 금기사항이다. 크리스마스가 주제가 된 건 어떤 것이든 ‘NO’다.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 이런 장면 같은 건 말할 것도 없고.
교사들이 전전긍긍이다. 공공기관도, 백화점도 마찬가지다. 하나 같이 소송 공포증에 떨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처방이 이렇다.
메리 크리스마스 대신 해피 할러데이라고 해야 한다. 크리스마스 트리도 안될 말이다. 할러데이 트리라고 해야 한다….
전체 인구의 80% 이상이 기독교인이다. 그런데도 공공장소에서 크리스마스란 말을 사용할 수 없다니…. 크리스마스 전쟁은 그래서 올해에도 어김없이 재연됐다. 한 겨울에 열기만 높아가고 있는 것이다.
오랜 싸움이다. 10년도 넘었으니까. 그 싸움은 먼저 이렇게 시작됐다.
‘예수 그리스도’에서 그리스도를 없애는 거다. 그 해부작업이 유행이었다. 바이블이 다빈치 코드로 대체되듯이. 그리고는 이제 크리스마스에서도 그리스도를 떼 내는 작업이 본격화된 것이다.
정·교(政敎)분리의 원칙이라고 했나. 전가의 보도인 양 매번 이걸 들이댄다. 소송에 소송이 꼬리를 문 것이다. 그 결과 곳곳에서 하나, 둘 기독교 색채는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공공장소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는 것도 문제가 될 지경에 이르렀다.
분노가 인다. 그리고 그 분노는 확산돼 메아리로 되돌아온다, ‘포르노는 표현의 자유란 이름으로 미국의 헌법이 보호하면서 크리스마스 트리는 보호할 수 없다는 말인가’-. 주로 레드 아메리카에서 번져가고 있는 메아리다.
크리스마스는 그러면 정녕 사라지고 있는가. 이미 사라졌다. 블루 아메리카, 다시 말해 미국의 진보좌파의 심장, 할리웃에서는 벌써 사라졌다. 크리스마스란 말이 그 어느 곳보다도 철저히 배제된 곳이 바로 할리웃이고, 또 대중매체다. 때문에 나오는 말이다.
미국의 TV매체와 할리웃에서는 12월이 되어도 크리스마스를 찾을 수 없다.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제작물이 없다는 얘기다. 아니, 아주 없지는 않다. 가끔은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제작되기 때문이다.
그 제작물이란 것이 그런데 이런 식이기 일쑤다. ‘크리스마스: 그 허구를 벗긴다’-.
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12월(2002년 기준) TV매체를 통해 방영된 크리스마스 주제 프로그램은 모두 1,156시간으로 집계됐다. 그중 90%는 그러나 본래의 크리스마스와는 사실상 전혀 관계가 없었고, 오직 3%만이 예수와 관련이 있었다는 것이다.
연말 대목을 노린 할리웃의 작품도 그렇다. 크리스마스는 보이지 않는다. 온통 동성애 예찬이다. 전통적 카우보이 영화도 동성애 러브스토리로 만들어졌다. 한마디로 도덕성이 불투명한 작품들로, 이런 작품일수록 평가되는 게 요즘의 경향이라고 하던가.
작용은 반작용을 낳는다. 뭔가 새로운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할리웃이 그토록 진저리를 내는 주제- 종교·영성, 그리고 예수 등을 정면으로 다룬 영화가 대박을 터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기록을 세운 ‘그리스도의 수난’이 한 예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도 그 계열에 들어간다.
올해의 경우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해 개봉한 C.S. 루이스 원작의 ‘나니아 연대기’의 첫 작품 ‘사자, 마녀, 옷장’이 개봉 첫 주에 7,000만달러의 기록적 판매수익을 올 렸다.
그리스도의 대속과 부활이 사실상의 메시지다. 이런 영화가 왜 이토록 인기인가.
“허무주의에, 냉소적이고, 외설적인 영화는 포화상태다. 할리웃은 스스로의 병든 문화에 빠져들어 오랫동안 메인 스트림의 관객을 외면해 왔다.” 한 비평가의 진단이다.
말하자면 레드 아메리카가 할리웃으로 상징되는 블루 아메리카와 영화를 통한 문화전쟁을 벌인 결과 통렬한 K.O. 승을 거둔 셈이다. 이건 다름이 아니다. 정치뿐이 아니라 문화라는 또 다른 실천의 장에서도 레드 아메리카의 반격이 시작됐다는 얘기다.
정리하면 이런 것 같다. ‘크리스마스만은 제발 건드리지 말아다오’-. 전쟁은 이렇게 시작됐다. 그 전쟁이 마침내 ‘보통 미국인’들의 대대적 반격과 함께 거대한 문화전쟁으로 이어지면서 문화 엘리트 로 자처하는 할리웃이 요동하고 있다.
그 요동은 무엇을 말할까. 대대적 문화변혁의 전주곡. 혹시 그런 게 아닌지 모르겠다.
옥 세 철
논설위원
secho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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