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영(주필)
황우석 교수의 업적인 줄기세포의 진위에 관한 논란이 날이 갈수록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 논란이 쟁점을 벗어나 문제를 제기한 방송에 대한 찬반 논쟁으로 바뀌었다. 또 국내에서 제기된 진위 논란은 드디어 국제적으로 확대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국제학계에서 황
교수의 업적에 대한 의문을 집요하게 추적하여 그 업적을 손상시킬 수 있는 구실이라도 찾게 된다면 황교수의 명예가 일락천장으로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은 줄기세포 연구의 중심국이란 지위를 잃고 말게 될 것이다. 참으로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번 진위논란이 잘 한 일이냐 아니냐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견해가 다를 수 있다. 사실을 사실대로 파헤쳐 진실을 알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줄기세포의 진위여부는 거론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세계 학계가 인정한 한국인의 업적과 그로 인해 얻어진 막대한 국익을 구태여 한국인의
손으로 파헤쳐서 국익을 해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냐에 대해서는 고개를 젓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그런데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한국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이 그렇듯이 이번 사건도 한국사회와 한국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사건이 발생하게 된 배경과
경과 과정, 그리고 앞으로 우려되는 결과를 놓고 볼 때 지금 한국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총체적인 문제와 한국인의 약점이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첫번째 문제는 튀어야 사는 사회풍조이다. 논란을 일으킨 MBC-TV의 PD수첩 팀은 많은 고발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끌었던 시사 프로그램 제작팀이다. 그 때문에 보도부문의 상도 많이 탔다고 한다. 그러니 더 인기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데만 몰두했을 것이다.
황우석 교수의 연구가 허위라는 제보를 받았을 때 이처럼 쇼킹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면 그런 그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을 것이다. 국가의 이익이나 취재윤리가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대통령도 튀
는 말과 행동으로 인기를 끌려고 하는 나라, 묵묵히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는 사회에서 황우석을 잡는 프로그램 만큼 신나는 일이 그들에게는 없었을 것이다.두번째는 경계선을 넘는 풍조이다. 방송에서 기자는 취재를 하고 PD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사람인데 한국에서는 PD가 취재를 하는 PD저널리즘이란 특이한 분야가 발달했다. 또 언론은 보
도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그 추이와 결과를 보도하는 것이 주된 사명인데 이번 경우는 과학적 성과에 대한 검증과 시비의 주체까지 떠맡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처럼 경계선을 넘어 문제를 일으키는 일이 많다. 검찰과 경찰, 의사와 약사가 경계를 다투고 정치가 교육의 경계선을 넘
고 있다. 노조가 경계선을 넘어 경영에 간섭하는가 하면 대통령이 법의 한계를 넘보고 있다.
황우석 교수의 연구에 대한 진위 논란은 국제학계에서 판가름이 나야 할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세번째는 쏠림 현상이다. MBC의 PD수첩이 황우석 교수의 연구과정에서 윤리문제를 제기하자 국내 여론은 윤리위반 여부에 관계 없이 MBC 반대운동으로 번져 나갔다. 문제가 진위문제로
확대되자 진위여부에 관계 없이 MBC에 대한 성토는 더욱 거세졌다. 본말의 전도현상이기도 하고 지나친 쏠림 현상이기도 하다. 한국인들이 보여준 쏠림 현상, 예를 들어 붉은 악마, 촛불시위, 탄핵역풍, 반미경향 등에서 반대의견은 발을 붙일 틈새 조차 없었다. 이런 현상은 토론과
타협이라는 민주적 사고에 맞지 않은 것이다.
그 다음으로 가장 큰 문제인 편가르기의 병폐이다. 이번 사건을 일으킨 MBC-TV는 그들 스스로 진보적이라고 하는 좌경방송이다. 이번 사건을 둘러싸고 한겨레신문과 인터넷신문인 오마이뉴스 등 좌경매체는 일제히 MBC 편에 섰다. 반면에 보수우경 언론은 황우석 편에 서서 MBC를 비판하고 있다. MBC 노조는 우익신문에 맞서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같은 편가르기는 언론계의 범위를 넘어 정계까지 확산되었다. 좌경세력인 민노당은 작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황우석 교수의 윤리문제와 업적을 헐뜯고 있다. 노무현대통령도 MBC 방송을 옹호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사건의 잘잘못이나 그 결과가 미칠 엄청난 사태는 아랑곳하지 않고 모두가 자기네 편을 들고 있다.
이처럼 황우석 논쟁이 계속되면서 이제 국제 과학계와 언론에서 이 문제를 들먹이기 시작했다. 황교수에 대해 계속 비판적 태도를 보였던 영국의 네이처는 황교수의 논문을 재검증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미국의 사이언스는 아직도 황교수의 편이지만 섀튼교수가 손을 뗀 마당에
얼마나 황교수의 편에 서 줄지는 의문이다.황우석 논쟁은 진실 보도라는 일면이 있긴 하지만 한국사람끼리 물고 뜯고 하는 싸움이 되고
있다. 이것이 이번 사건의 핵심적 문제이다. 구한말에 나라가 망할 때는 이렇게 해서 망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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