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적으로 칼럼을 쓰면서 내가 받는 보너스가 있다. 칼럼이란 형식을 빌어 내가 하는 이야기들을 오래 들어온 독자들이 나를 잘 아는 사람쯤으로 ‘착각’해주는 마음이다. 그래서 아주 좋은 일이 있을 때나 힘든 일이 있을 때, 만난 적도 없는 내게 소식을 전해주는 독자들이 가끔 있다. 한 뼘 지면을 매개로 맺어진 소중한 관계들이다.
지난주에는 남가주 라크라센타에 사는 헬렌 황씨(43)가 이 메일로 기쁜 소식을 전해왔다. 학군 좋고 LA가 가까워서 한인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그 지역 크레센타 밸리 상공회의소로부터 ‘2005년 올해의 여성’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다.
1.5세인 그는 큰딸이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룸 마더를 시작한 후 두 딸의 학교에서 학부모 대표로 12년간 열심히 봉사해오고 있는데 그 노력이 지역사회로부터 평가를 받은 것이다. 전화 통화 중 그는 수상소식을 함께 나눈 이유를 설명했다.
“상 받은 것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조금은 있지요. 하지만 그보다 이번에 보니 한인들이 미국 사회와 너무 담을 쌓고 있는 것 같아서 좀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상식 기사가 로컬 신문들에 큼지막하게 나간 후 사방에서 축하 꽃이 오고 카드가 날아들고 마주 치는 사람마다 축하인사를 했다. 하지만 한인 인구가 상당한 그 지역에서 한국말 축하는 단 한마디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한인들이 미국 신문을 거의 안 본다는 반증이었다.
“아이들 학교를 돕는 일로 커뮤니티 봉사를 하는 것이 얼마나 보람있는 경험인지를 알리고 싶어요. 그래서 많은 젊은 엄마들이 동참했으면 좋겠어요”
언젠가 한인 교육가 한 분이 이런 지적을 한 적이 있다.
“학교에서 한인 학부모들이 갈비와 부채춤으로 한국을 소개하던 시절은 지났어요. 이민연륜이 이만큼 쌓였으면 한인 학부모들도 이제는 학교의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를 해야 되지요”
학교에서 한국의 날 같은 행사를 만들어 한국음식을 대접하고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것은 말하자면 이민 1세 식 학부모 봉사이다. 다문화 사회에서 우리 고유의 문화를 알리는 일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학교의 주류 안으로 편입되는 일과는 거리가 있다. 사친회(PTA)에 들어가 직접 의견을 내고 일을 맡아 추진하고 해야 하는 데 대부분 1세들에게 그 일은 편치가 않다.
PTA 모임에 몇 번 나갔다 포기한 주부들은 이런 말을 했다 -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영어로 해야하니까 주눅이 들더군요”“은근히 배타적인 분위기도 없지 않아요”“미국 학부모들이 상냥하게 대해 주기는 하지요. 그런데도 왠지 나 혼자 겉도는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헬렌 황씨의 수상 소식이 반가운 것은 이런 심리적 장벽들을 1.5세 엄마들, 혹은 아빠들은 뛰어 넘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주류사회와 언어나 문화적 거리감이 덜한 1.5세들은 의지만 있다면 학부모로서 학교 발전을 위해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가 보여주었다.
부모가 학교 봉사에 열심이면 그 파장이 그대로 아이들에게 미친다는 것은 여러 연구 결과 밝혀졌다. 엄마가 자주 학교에 오면 자녀의 사기가 올라가고, 엄마를 자랑스러워하게 되어 학업 성취도가 높아지고 행동도 바르게 된다. 아울러 교사들도 봉사 열심히 하는 학부모의 아이들을 좀 더 관심 있게 지켜보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미국 TV에서 최근 한인 배우들이 비중 있는 배역을 맡고 한인사회를 소재로 한 드라마들이 늘고 있다. 미국 사회에서 코리안의 존재가 눈에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일단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대중 매체에서 그려지는 한인들의 이미지는 음울하고 일그러진 모습이다. 인종 차별적 업주, 매춘, 강도, 영어 한마디 못하는 고립된 분위기 등이다.
‘부당하다’고 소리친다고 이미지가 바뀌지는 않는다. 학교와 커뮤니티에서 봉사하는 한인들이 많아진다면, 그래서 ‘코리안’하면 헌신적 봉사가 먼저 떠오른다면 한인 이미지도 자연스럽게 바뀔 것이다. 1.5세 엄마들이 그 주축이 되어주었으면 한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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