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줄리엣이 셰익스피어에 의해 세상에 태어난 지는 400년이 넘었다. 긴 세월만큼 시대가 바뀌고 수많은 세대가 거쳐갔지만 그 어린 연인들의 사랑이 주는 감동은 여전히 싱싱하다. 죽음도 불사하는 그들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가슴 설레고 그런 열정적인 사랑을 동경하면서 우리는 젊은 날들을 보낸다.
그 빛나는 사랑의 이면을 보게 되는 것은 우리가 부모가 되고 나서이다. 자녀가 14살의 줄리엣, 그 보다 몇 살 위였던 로미오의 나이가 될 즈음 부모들에게는 새로운 걱정거리가 찾아든다. 첫 사랑, 혹은 풋사랑에 빠진 자녀를 보는 아슬아슬함이다.
딸(아들)에게 보이 프렌드(걸 프렌드)가 생겨서 사내아이(여자아이)가 툭하면 집으로 찾아오고, 틈만 나면 같이 나가고, 밤낮으로 전화통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면 “저러다 공부는 언제하나” “성적으로 문란해지면 어쩌나”… 부모에게는 걱정이 태산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로미오’가 되고 ‘줄리엣’이 되더라도 내 아이들만은 그런 맹목적인 사랑에 빠져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10대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지난 13일 필라델피아 인근 소도시에서 발생한 사건은 그래서 남의 일이 아니다. 걸 프렌드의 부모와 언쟁 끝에 부부를 사살하고 도주했다가 경찰과의 추격전 끝에 체포된 18살 백인소년은 TV로 보니 아직 어린 티가 남은 평범한 아이였다. 사춘기 눈먼 사랑이 평범한 가정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너무 끔찍한 사고를 불러들였다.
사건의 발단은 14살 짜리 딸이 사내아이와 나가 밤새도록 돌아오지 않은 것이었다. 마이클·캐스린 보든 부부는 노심초사하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가 딸 카라가 아침에야 돌아오자 한바탕 야단을 쳤던 모양이다. 그리고 딸의 보이 프렌드인 데이빗 러드윅이 있는 자리에서 귀가시간을 분명하게 못 박으려다가 언쟁이 되고 서로 감정이 격해지면서 사고가 터진 것 같다.
50세의 주부 캐스린은 어린 딸이 네 살이나 많은 보이 프렌드를 가진 것, 딸이 너무 남자아이에게 빠져 있는 것에 몹시 불안해했다고 주위 친지들은 전했다. 그래서 카라와 데이빗은 항상 부모 몰래 만나야 했고, 그런 사실이 데이빗에게 분노의 씨로 박혀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사춘기는 ‘광기가 정상인 시기’로 정의된다. 사춘기 자녀들을 보면 언제라도 폭발할 수 있는 활화산 같다. 특히 남자아이들은 멀쩡하다가 한순간에 감정이 격해지고 그 감정을 스스로도 주체하지 못해 절절 매는 것이 ‘미쳤나’ 싶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 모두가 호르몬 변화에 따른 정상적인 성장과정이라는 것이다.
사춘기는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 같다. 감정이라는 액셀레이터는 최고의 성능으로 작동이 되는데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이성적 사고 능력은 채 발달되지 못해 충동적이고 맹목적이다. 이들 감정 중 특히 강한 것이 분노와 사랑. 분노가 치솟으면, 혹은 사랑에 빠지면 앞 뒤 좌우가 보이지 않는 것이 이 나이의 특징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20대였다면 아마도 죽음이라는 극한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사랑은 흘러간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사춘기의 딸(아들)이 남자(여자) 친구라고 데려온 아이가 탐탁하지 않아서 어떻게 하면 떼어놓을까 고심하는 부모들이 있다. “(아이가)여자 친구와 싸웠는지, 저녁 내내 전화통을 붙들고 있더니 그대로 이불 뒤집어쓰고 자는 거예요. 내일이 시험이라면서 …”라고 속상해하는 주부도 있다.
자녀들이 이런 시기를 다 거친 선배 부모들의 조언은 “여유를 갖고 좀 두고 보라”이다. 많은 경우 몇 달 후면 그 주인공들이 이미 전 보이 프렌드, 전 걸 프렌드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녀가 사춘기가 되면서 사랑의 감정에 빠지는 것은 자연스럽고도 필요한 일이다. 부모는 이 아름다운 감정의 코치가 되어주어야 하겠다. 사랑에 눈먼 ‘로미오’와 ‘줄리엣’이 극한으로 치닫지 않도록 길을 열어 주는 것이다.
사랑도 예방접종 효과가 있다. 사랑의 기쁨과 슬픔, 실연의 아픔을 부모 곁에서 통과한 아이들은 건강한 사랑을 할 수가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 돌보기는 부모로서 해야할 숙제 중의 하나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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