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쯤 우리 신문사 여기자들은 특별한 모임에 참석을 한다. 국제 여성 미디아 재단(IWMF) 이 주관하는 연례 ‘용기 있는 언론인 상’시상식이다. 기금모금 만찬을 겸해 매년 베벌리 힐스의 리전트 베벌리 윌셔 호텔에서 열리는 데 우리 신문사는 5년 전부터 행사를 후원하고 있다.
여기자들의 공적을 치하하는 여기자들 축제의 자리 인만큼 우리 동료들도 이날이면 성장을 하고 단체로 베벌리 힐스 밤나들이를 즐긴다. 하지만 시상식이 시작되고 수상자들이 소개되면서 들 뜬 분위기는 가라앉고 결국 숙연해져서 돌아오는 것이 이 행사의 특징이기도 하다.
생명을 내어놓아야 말할 수 있는 것들을 생명을 내어놓고 말하는 극한의 직업정신, 그리고 그런 주인공들의 치열한 삶을 보면서 “내 삶은 너무 안일한 게 아닌가”반성을 하게 된다.
제15회를 맞은 올해의 ‘언론인상’수상자로는 방글라데시의 사건기자인 수미 칸(35), 이란의 여권운동 잡지 편집장인 샤흘라 셰르캇(49), 전 세계의 악명 높은 분쟁 지역을 찾아다니며 참상을 보도해온 독일인 사진기자 아냐 니드링하우스(40)등 세 여기자가 뽑혔다.
AP 소속인 니드링하우스는 포탄이 날아드는 전장을 누비며 취재하느라 이제까지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위험이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지만 “보도를 안 하면 아무도 진상을 알수 없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전쟁터로 달려가게 된다고 했다.
칸과 셰르캇이 맞서 온 위험은 좀 다르다. 숨막히는 종교적 경직성과 뿌리깊은 남존여비 전통이 씨줄과 날줄로 국민들의 의식을 옥죄는 이슬람 사회에서 ‘감히 여자가’ 정치적 사회적 부패상을 파헤치고 여성의 인권을 들고 나오자, 집권 세력은 이를 체제에 대한 도전이라며 압박을 가한다. 두 여기자 모두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과 정치권의 미움을 사서 ‘죽이겠다’는 협박을 수없이 받았고, 칸의 경우는 지난해 괴한들의 습격으로 3개월간 몸져누웠다.
‘용기 있는 언론인상’만찬은 그러므로 이들 용감한 여기자가 죽음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안전하게 살아 있다는 사실을 축하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용기란 무엇일까. ‘지금 이대로 -’ 좋다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익숙함과의 결별이 그 첫 발이라고 본다. 기존의 현실에 대한 도전이다. 비판 없이 수용해왔던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나 비로소 부당한 것, 잘못 된 것이 눈에 들어오면 그때 우리는 용기의 출발점에 선다.
그렇다고 용기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두려움이라는 장애물을 넘어서야 한다. 때로 태산같은 두려움을 넘어선 용기 있는 인물들이 있어서 인류의 지평은 이만큼 확장되었고 역사는 발전되어 왔다.
용기 있는 여기자 상 시상식이 열린 지난 2일 우리는 용기로 세상을 바꾼 한 인물을 저 세상으로 보냈다. 미국 인권 운동에 불을 붙였던 로사 팍스 여사, ‘마더 팍스’의 장례식이 그날 아침 디트로이트에서 열렸다.
용기는 종종 ‘노우’로 표현된다. 간디는 말썽 피하느라 어물어물 말하는 ‘예스’보다 깊은 확신을 가지고 내뱉는 ‘노우’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말한 적이 있다. 50년 전 12월1일 팍스 여사의 단호한 ‘노우’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백인 승객을 위해 자리를 내어놓으라는 운전기사의 말에 팍스 여사가 강경하게 말한 ‘노우’로 미국 민권운동의 서장은 열렸다. 그때 상황을 팍스 여사는 이렇게 회고했었다.
“누군가 첫 발을 내디뎌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굳게 마음을 먹고 절대로 움직이지 않았지요”
마크 트웨인은 말했다.
“20년 후 우리는 뭔가 우리가 한 일보다는 못 한 일 때문에 실망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돛을 팽팽히 올리고 안전한 항구를 벗어나 항해를 떠나라”
항해의 한계는 용기가 결정한다. 사람은 각자의 용기만큼 살뿐이다. 자신의 용기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 있는 가 하면, 용기가 없어 자신의 삶 자체도 마음대로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용기가 없어서 아무 것도 시도하지 못하고 죽는다면 그 인생은 얼마나 가련한가.
junghkwon@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