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외 아무것도 넣지 않는다”
와인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해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기초상식조차 갖고 있지 않음을 보게 된다. 과거 한국에서 과실주 만들 듯 항아리에 포도알을 따서 넣고 설탕과 소주를 붓고 밀봉했다가 포도주를 만들어 마셨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와인 역시 그러한 방법으로 만드는 줄 아는 사람이 많다. 가정에서 만드는 과실주와는 달리 와인은 포도 외에 다른 것을 일체 넣지 않고 만든다. 단지 발효를 잘 시키기 위해 효모를 조금 넣을 뿐이다. 또한 포도 역시 우리가 과일로 먹는 식용 포도가 아니라 양조용 포도를 사용하는 것도 다르다. 과일 포도는 포도주로 만들기에 너무 달기 때문이다. 나무에서 잘 익은 포도가 몇 년 후 병에 담겨져 우리집 식탁에 오를 때까지의 과정을 간단히 정리해본다.
포도는 씻지 않은 채 와인으로 양조된다.
나무에서 수확한 포도를 옮겨 담는다.
으깬 포도는 압착시켜 포도즙을 짜낸다.
발효된 포도주는 오크통에서 숙성된다.
와인을 병에 옮겨담는 과정.
9~10월 포도 수확-양조장으로 운반-분쇄기서 분리-포도알만 압착-주스, 발효 탱크로-배양 효모 넣고 발효-3~4주후 위에 맑은 것만 오크통으로-수개월서 1~2년까지 숙성-병에 담아 코르크 마개로 봉한뒤 수개월후 시판
껍질에서 색 추출
레드, 완전 압착
로제는 살짝 압착
화이트 껍질 빼고
와이너리에서는 매년 9~10월 포도가 가장 잘 익었을 때 수확한다. 고급 와이너리에서는 일일이 사람 손으로 따서 수확하지만 큰 포도원에서는 프리미엄 와인용만 손으로 따고 나머지는 기계로 수확한다. 나무에서 딴 포도는 운반 차에 담아서 가능한 빨리 조심스럽게 양조장으로 운반한다. 수확한 포도를 오랫동안 방치해두면 색소가 물들거나 신선한 향이 날아가기도 하고 밑에 있는 포도알이 으깨질 수 있으므로 아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양조장에 옮긴 포도들은 분쇄기에서 줄기와 포도알을 분리하는 과정을 거쳐 포도알을 으깬다. 포도껍질과 포도알을 분리하는 이 과정도 보통은 기계를 거쳐서 하지만 유럽의 일부 포도원에서는 아직도 사람이 발로 밟는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이때 여자가 밟는 이유는 몸무게가 더 나가는 남자가 밟으면 포도알까지 뭉개지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이렇게 얻어진 포도주스와 포도껍질을 압착하여 나온 주스를 발효 탱크로 보낸다. 이때 붉은 포도라도 포도껍질을 압착하지 않으면 화이트 와인이 되고 껍질까지 압착하면 레드 와인이 되며 살짝 압착했을 경우 로제가 된다. 와인의 색깔은 포도껍질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포도주스는 거대한 스테인레스 스틸 탱크에 보내져 배양 효모를 넣고 발효시킨다. 이 과정에서 포도의 당분이 알콜로 변화되는 것. 발효는 단 며칠만에 끝날 수도 있지만 발효가 끝난 후에도 껍질서 필요한 성분을 얻기 위해 3~4주 더 발효조에 두기도 한다. 탱크 속에서 효모와 침전물이 가라앉도록 기다렸다가 윗 부분의 맑은 와인만 따라내어 오크 통으로 보낸다.(전통적인 양조방식을 고집하는 와이너리에서는 숙성 뿐 아니라 발효도 오크 통에서 한다)
이때부터 와인은 공기(산소)와의 접촉을 최대한 막은 상태에서 숙성시킨다. 오크통 숙성 기간은 짧게는 수개월에서부터 보통 1년반 내지 2년 정도 걸린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찌꺼기까지 완벽하게 제거하기 위해 필터링(filtering) 작업을 거치기도 하지만 요즘은 와인 고유의 맛을 조금이라도 해치지 않기 위해 여과하지 않는(not filtered) 추세다.
오크 통에서의 숙성이 끝나면 병에 담는 과정, 즉 바틀링(bottling)을 하고 코르크 마개로 봉한다. 하지만 병에 넣었다고 해서 금방 시판하는 것이 아니라 병입한 상태에서 다시 수개월에서 1년 정도 숙성시킨 후 마켓에 내놓는 것이다. 이 전체 양조기간은 화이트 와인의 경우 1~2년, 레드 와인의 경우 2~3년 정도 걸린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구입하는 와인은 화이트 와인의 경우 대개 2003~2004년 산이고, 레드 와인은 2002~2003년 산이다.
한편 매년 11월 셋째 목요일은 보졸레 누보의 날로 축하하는데 이 와인의 경우 앞에 설명한 양조과정을 다 거친 것이 아니다. 지난 가을, 그러니까 2005년 9월에 수확한 포도로 담가 두달만에 마시는 햇와인이기 때문에 몇 달안에 금방 마셔야 하는 것이다. 숙성 과정을 거치지 않은 와인은 숙성할 수가 없다.
참고로 포도는 물에 씻지 않고 그대로 술을 담근다. 포도알에 희끗희끗 먼지처럼 붙어있는 박테리아나 효모 같은 미생물이 발효를 도와야 하기 때문이다. 포도를 씻지 않고 와인을 담근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는 비위생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와인만큼 자연 그대로인 술이 없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포도알이 무르익는 동안 만나는 해와 달과 별, 비도 맞고 바람도 맞고 먼지도 뒤집어쓰면서 자라는 한해 동안의 그 모든 공기의 변화와 이슬과 먼지의 만남까지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술로 만들어지는 음료가 와인인 것이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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