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햄프셔 남서부 애크워스에 있는 애크워스 잡화점의 먼지 나는 주차장에 공중전화가 하나 있다. 전화박스는 온통 먼지투성이고 전화번호부는 플라스틱 통 안에 매달려 있다. 전혀 인상적이지 않다. 하지만 150여 지역주민들에게는 이 전화가 투쟁할 만한 대상이다. 셀폰이 터지지 않을뿐더러 공중전화도 이 것 말고는 수 마일을 나가야 있다. 게다가 경찰이나 자원소방대원들이 마을에 들러 일을 볼 때도 무전기가 작동하지 않아 이 공중전화를 이용해야만 한다. 2002년 전화회사 버라이즌(Verizon)이 수지가 맞지 않는다며 이 공중전화를 제거하려들자 주민들은 결사항전을 다짐했다.
뉴햄프셔 애크워스 주민 150명의 유일한 야외 통신수단
셀폰 안 터지고, 다른 공중전화 사용하려면 수마일 나가야
전화사 “수지 안 맞아” 철거 시도…주법 제정 간신히 막아
공중전화 97년 200만 대서 지난해 130만 대로 감소 불구
외딴 마을에서 화재·교통사고 등 비상사태엔 ‘생명줄’ 역할
집에서 만든 피클에서 5센트짜리 개 비스킷까지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뭐든지 갖추고 있는 이 잡화점에서 자원 봉사하는 전기공 스킵 오틴(58)은 “이 근처에는 다른 전화가 없다”며 전화기 철수에 반대했다.
지난 7월 뉴햄프셔는 주법에 의거해 이 공중전화를 계속 유지하도록 했다. 사실 이는 1996년 제정된 연방통신법에 기초한다. 전화회사들에 대한 규제를 푸는 대신 공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주정부가 법을 만들어 시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사한 법을 갖고 있는 주는 캘리포니아 등 8개다. 뉴햄프셔는 소비자들이 찾아가지 않은 전화요금 디파짓으로 공중전화 관리비를 충당한다.
셀폰이 대중화되면서 공중전화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1997년 전국에 약 200만 대가 있었는데 지난해 130만대로 줄었다. 지난해 공공서비스 프로그램을 시작한 켄터키 공공서비스위원회는 입주 건물에 있던 공중전화마저 철수시켰다. 수익성이 없으면 사라지는 법이다. 사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관리비만 드는 공중전화를 그냥 둘리 만무하다.
하지만 공중전화가 꼭 필요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셀폰을 살 능력이 없는 사람이나 돈이 있어도 셀폰이 연결되지 않는 곳에 사는 사람들에겐 필수불가결한 생활용품이다. 또 어느 지역에서는 일반 전화조차도 설치하지 못하는 빈민들이 있다. 이들에게는 공중전화가 없어선 안 된다. 또 셀폰이 없는 운전자가 외딴 곳을 운전하다 타이어가 터질 경우 공중전화는 ‘구세주’다. 메인주의 공공서비스국 디렉터인 웨인 조트너는 “상황에 따라 공중전화는 생명을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며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애크워스의 주민들은 지역 제재소 직원들이거나 지역에서 소일거리를 하며 살아간다. 이들은 1960년대부터 이 동네에 자리를 잡은 뒤 마을을 지키고 있다. 그러니 잡화점 밖에 있는 공중전화 한대, 잡화점 안에 있는 생활용품들은 없어서는 안 될 ‘귀중품’이다. 이 잡화점은 우체국도 겸하고 2층에는 지역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기념관’이 마련돼 있다.
이 동네 자원소방대원으로 봉사하기도 하는 주하원의원 제이 피니지가 주민들을 위해 2001년 전화서비스 법안을 제출했으나 재원마련 방안을 첨부하지 못해 실패했다가 지난 7월 전화회사 디파짓으로 재원을 마련함으로써 공공서비스법 통과에 기여했다.
버라이즌 대변인 얼리 피어스는 “왜 손실만 나는 공중전화를 계속 설치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그는 손실액을 밝히지는 않았다. 위스콘신에서 공공서비스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공중전화를 관리하는 미드-아메리카 공중전화사의 제프 프로스트는 공중전화 한 대당 월 관리비가 90달러 정도라고 했다.
버라이즌은 뉴햄프셔의 공중전화 프로그램을 지지한다. 정부가 재정지원을 하기 때문이다. 다른 작은 마을 럼니의 주민들도 잡화점에 있는 공중전화를 철거하지 않도록 하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이들 마을과 반대 방향으로 나가는 곳들도 있다. 오하이오 톨리도 시정부관계자들은 옥외에 공중전화를 새로 설치하는 것을 금지했다. 불법적인 행위가 공중전화 주변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계획위원회의 주기안자인 토마스 기본스는 “공중전화는 더 이상 원래의 취지를 상실했다”며 오히려 주민들이 염려하는 마약, 매춘 등이 행해지는 ‘온상’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애크워스 주민들은 다르다. 범죄는 걱정 없다고 했다. 대신 비상 시 공중전화가 유용하게 사용된다고 했다. 한 주민은 딸이 차를 몰다가 커브에서 차가 뒤집혔다고 했다. 간신히 빠져 나와 공중전화로 구조를 요청했다고 했다. “만일 이 전화가 없었으면 어떻게 됐겠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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