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의 여기자들이 함께 점심식사를 하러 가던 중 나이 이야기가 나왔다. 구성원은 20·30대의 젊은 층 3명, 40·50대의 중년 층 3명으로 모두 6명.
‘나이’를 거론한 것은 30대의 후배였다. 젊음의 끝, 나이 듦의 초입에 서 있는 그는 앞으로 “더 나이가 들면 어떻게 살까”를 푸념했다. 40대나 50대 혹은 그 너머에도 삶이란 게 있을까 싶은 아득함은 젊은 시절 대개 한번씩 경험하는 일이다. 초목이 울창한 오아시스에서 모래언덕 저편의 삭막한 사막을 떠올리는 생경함, 나와는 무관할 것 같은 거리감이다.
‘오아시스’와 ‘사막’이 어느 분명한 경계선을 두고 한 순간에 바뀌어 버린다면 그 충격을 감당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도 나이 듦은 아주 서서히, 느끼지도 못할 만큼 조금씩 계속 진행되는 도도한 과정이어서, 젊어서는 상상도 안되던 나이를 우리는 무사히 내 나이로 살아낸다.
이번 주 타임지가 ‘자연스럽게 늙어가기’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를 실었다.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에 관한 글을 많이 써낸 앤드류 웨일 애리조나 의대 교수의 책을 발췌한 내용이다. 그가 60대로 들어서면서 느끼고 깨달은 건강과 행복에 관한 생각들을 의학 전문가의 관점에서 정리했다.
그의 주장의 핵심은 ‘자연스러움’이다. 우리 몸과 마음을 자연의 흐름에 맡기라는 것이다. 나이 들면서 나타나는 몸의 변화를 거부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가능한 최선의 상태를 유지하도록 돌보라고 한다. 신선한 야채 과일을 중심으로 한 식생활로 몸이 필요로 하는 영양분을 공급하고, 항상 움직이도록 만들어진 우리 몸에 맞게 걷기, 요가 등의 운동을 계속하고, 심호흡 법을 익혀 스트레스를 해소하라는 등의 조언이다.
그리고 무엇 보다 중요한 것은 나이 듦을 자연스런 삶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나이’와 싸우지 말라는 것이다. ‘내가 늙는다’는 사실을 부인하면 할수록 역효과만 커진다고 그는 지적한다.
‘나이’와의 화해가 처음부터 쉬운 일은 아니다. 주위의 중년층을 보면 보통 40대로 들어설 때가 가장 어려운 것 같다. 40대 중반의 한 후배는 “마흔 서넛이 될 때까지도 내가 40대란 사실을 자꾸 잊어버렸다”고 했다. 무의식적 거부 반응이다. 예를 들어 여성 잡지에 나이별 화장법이나 피부 손질법 기사가 나오면 으레 눈이 ‘30대’섹션으로 가고, 누군가 “40대 초반이시지요?”라며 실제 나이를 말하면 그날은 몹시 심란한 날이 되곤 했다.
그래서 화장이 짙어지고, 옷차림이 요란해지는 것은 중년에 여성들이 거치는 한 과정이다. 젊음이 빠져나가는 자리에 뭔가를 메워야 할 것 같은 초조함 혹은 허탈함이다. “여자가/ 장식을 하나씩/ 달아가는 것은/ 젊음을 하나씩/잃어가는 때문이다”(‘장식론’중)고 홍윤숙 시인도 말했다. 하지만 나이를 감추느라 ‘변장’을 하면 할수록 “쇼우윈도우에 비치는/내 초라한 모습에/사뭇 놀란다”고 시인은 이어갔다.
그렇다면 우리는 몇 살에 머무르면 만족할까. 늙지 않고 영원히 살수 있다고 가정할 경우 ‘당신은 몇 살로 살고 싶은가’라는 설문조사가 실시된 적이 있다. 해리스 여론조사기구가 18살 이상 성인 2,300 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는데 결과는 의외였다. 누구나 젊은 나이를 좋아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대부분 자기 나이 보다 조금 젊은 나이를 선호했다. 40대는 40세, 50대는 44세, 65세 이상은 59세 등이다.
험한 이 세상을 잘 살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한다. 아주 영리한 사람이 되거나 아주 즐거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온갖 어려움을 요리조리 피해 나갈 만큼 영리하거나 아니면 닥치는 모든 일들을 즐겁게, 낙천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늙음, 나이 듦도 마찬가지이다. 영리하게 노화방지 테크닉을 다 동원해 몇 살 더 젊어 보이게 애를 쓸 수도 있고, 있는 그대로 즐겁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나이 들어서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야 할까? 자연스럽게 나이를 받아들이고 마음 편하게 사는 것이 우아하게 나이 드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사막’에는 ‘오아시스’에서 맛 볼수 없는 또 다른 삶의 재미가 있으니까.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