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속으로 스미는 안개의 모습을 본 일이 있는가? 저녁 무렵, 샌프란시스코 트윈 픽 등성이를 넘어오는 안개 사단의 진군을 바라본 적이 있는가? 금문교의 두 첨탑이 거대한 안개의 베일에 휘감겨 붉은 구름기둥처럼 하늘을 떠가는 광경을 목도한 일이 있는가? 혹, 소솔리토 언덕을 넘어 폭포처럼 쏟아지는 안개비에 흠뻑 젖어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버클리 산허리 거실의 창을 열고 샌프란시스코 베이의 하늘을 가르며 잠입하는 군함 같은 안개 띠의 서행을 주시한 적이 있는가? 둥근 잔에 찰랑이는 붉은 포도주. 그리고 낮은 첼로의 선율에 묻혀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안개의 강은 신비롭다.
샌프란시스코의 8월은 안개 천국이다. 온 대륙이 한 여름의 더위로 몸살을 앓고 있을 때, 이 태평양변의 항구는 안개의 한기로 겨울만큼 춥다. 7, 8월에 벽난로를 지필 정도다. “내가 보낸 가장 추운 겨울은 샌프란시스코의 여름이었다”고 푸념했던 마크 트웨인. 그러나 그가 한기에 떨면서도 예민한 작가의 눈으로 이 곳 특유의 신비로운 안개의 행진도 보지 않았을까?
향토 작가 해리 길리암은 샌프란시스코의 안개를 여러 다른 모습으로 보았다. 알카트라즈 섬 위에 둥글게 솟아오르는 안개의 성, 금문교를 넘어오는 무지개 다리 같은 운무의 아치, 트윈 픽과 머린 카운티의 언덕을 계단처럼 흘러내리는 안개 폭포, 캔들 스틱 공원 쪽으로 급류처럼 흘러가는 안개의 강. 그리고 베이를 가로질러 버클리 대안으로 항진하는 안개 함대의 모습 등을 묘사했다.
시처럼 낭만적인 샌프란시스코의 안개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러나 자연 현상적인 설명은 명료하긴 하되 조금은 무미하다. 물론 바다와 육지의 온도차 때문에 생긴다. 그리고 기압이 낮은 더운 내륙으로 흐른다. 매년 여름, 태평양 연안엔 고기압권이 형성된다. 이 고기압권의 바람은 지구의 자전 때문에 바닷물을 시계방향인 남쪽으로, 연안 바깥쪽으로 몰아간다. 이 해류의 움직임이 바다 밑 찬물을 솟게 한다. 이 업웰링 현상으로 표면에 올라온 찬 바닷물은 공기중의 물기를 만나 금방 안개로 응축시킨다. 눈에 보이지 않던 공기중의 수증기가 찬 바다기운을 맞아 희뿌연 안개방울로 변한다.
그러나 아직도 나는 안개의 실체를 속 깊이 이해하지 못한다. 정말 안개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순간에 피었다가 순간에 지는 안개. 그것에 대한 나의 애착은 찰나적 운명 때문일까? 아니면 기체도, 액체도 아닌 중간 체로서의 불안정한 이중성 때문일까? 생각해보면 그 찰나적이고 불안정한 모습은 우리 인간 삶의 모습과 무엇이 다를 바 있을까? 누가 우리의 수명이 안개의 그것 보다 더 길다 할 수 있으랴.
특히 안개에 대한 막연한 신비감은 내가 늘 피안 쪽에서만 바라보았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햇빛 밝은 이쪽에서 멀리 바라보는 저쪽 회색 빛 안개는 그 대비로 인하여 아름답기만 하였다. 한기를 피부로 느낄 필요도 없이 먼발치에서 그냥 풍경으로서의 안개를 활동사진처럼 즐기기만 하면 그 만이었다.
그러나 이젠 안개의 숲 안에 들어가고 싶다. 피안에서 걸어나와 도시의 자욱한 안개 속으로 걸어가고 싶다. 안개 속엔 회색 빛 침울이 있다. 바깥 세상에서 느끼지 못했던 무채색의 외로움이 스며있다. 밝음과 단절된 격리감속에 응어리진 한숨이 있고, 밤늦도록 고된 삶을 일구어 가는 군상들의 노동의 피로가, 그리고 밤 안개 속으로 떠나버린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가 묻어있다.
안개의 숲 속엔 삶의 아프고 시린 편린들이 작은 물방울이 되어 떠다니고 있다.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물방울을 입 속에서 가만히 음미해보면 그제야 그 투명한 입자들이 우리네 눈물임을 안다. 진정한 삶의 모습은 안개의 숲 속에 있었다.

김희봉 수필가, 환경엔지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