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영(논설위원)
가을은 어느 계절과 다름없이 해마다 반드시 온다. 그러나 가을이 주는 의미는 다른 계절과 다
르다. 겨울, 봄, 여름은 과정의 계절이고 가을은 마지막의 계절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지막을
끝으로 보려고 하는데 끝으로 보지 말고 마지막이라고 할 때는 그 안에 담겨있는 것을 봐야 할
것 같다. 마지막 속에는 우선 시간적으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든 것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모든 활동사항이 다 그 마지막 안에 들어 있다.
마지막이라는 데에는 처음부터 거기에 올 때까지 모든 생각이나 하고 싶었던 일, 그리워했던
것, 사랑했던 것 등등,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그 안에 담겨 있다. 그래서 가을이 반드시 오
는 이유는 시간적으로 계절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농부를 말하
면 밭갈이서부터 시작해 씨 뿌리고, 물주고, 잡초 뽑아주고, 호미 들고 흙 숨 골라주고, 추수하
고, 타작하고 하는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는 것이다. 농부의 시작에서 끝까지가 다 그 안에 담겨
있다.
인생살이도 태어나 봄, 여름, 다 지나고 가을이 되면 그 인생은 마지막을 얘기하는 것이다. 다
시 말해 ‘마지막’ 하게되면 사람들은 다 끝난 걸로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고 그 안에 무엇이
담겨있나 하는 것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마지막의 가치를 끄집어내고 발견해내는 것이다. 가을
에 농부가 아무 것도 마음에 담기는 것도 없고 손에 쥐는 것이 없다면 그 농부는 헛일을 하고 산 사람이다. 사람이 인생에 가을이 왔는데 마음에 남기는 것이 없고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면 그 인생은 헛 산 것이다.
헛 살아온 사람을 가만 보면 큰 소리란 큰 소리는 다 치고 살았다. 할 짓 다하고 살았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았다. 그런데 인생가을을 맞고 보니 마음에 담긴 것이나 손에 남은 것이 없고 뒤돌아보니 전부 다 허상이요, 헛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헛 산 것이나 다름없다.
낙엽귀근(落葉歸根)이라고, 낙엽도 떨어지면 뿌리로 가서 그 나무의 비료가 된다는 말처럼 하다못해 그 하찮은 퇴비가 되자면 퇴비될 요소를 가지고 있어야 된다.
가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 가정에 어떤 비료가 될까, 하나의 단체에서, 또는 한 커뮤니티에서 그것을 위한 어떤 비료가 될까? 그 것은 자신이 지내온 삶을 돌아 볼 때 허상이 많으냐, 적으냐에 달려 있다. 허상이 많은 사람은 마음이나 손에 잡히거나 담긴 것이 없는 사람이다. 이들
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거나 생각지 아니하고 덮어놓고 발길 가는 대로 걸었고 손에 닿는 대로 움켜 쥔 부류이다. 이런 이들은 당장엔 뭔가 내 것이 될 줄 알았지만 돌아보면 그들이 걸어온 길은 갈 지(之)자 걸음으로 헛되고도 헛된 생인 것이다.
사람의 얼굴이 다 다르듯 인생살이도 다 엇비슷한 것 같지만 무언가를 그래도 이루어 놓은 사
람만이 성공적으로 인생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할 일도 적거나 많거나, 크거나 작거
나, 높거나 낮거나 한길에서 하나를 찾아 부지런히 묵묵히 앞을 보고 걸어야 한다. 그러면 인생
의 마지막, 풍성한 가을은 꼭 오게 마련이다. 인생을 제대로 살아온 사람들은 처음부터 마지막 때까지 무언가 남다르게 살아온 자들이다.
조그마한 것이라도 남에게 본이 되고, 빛이 되고, 보탬이 되는 사람들이다. 가정에서는 화목과 평화를 사랑하고 이웃과 집단, 커뮤니티에서는 질서와 화합을 존중하는 사람들, 이들은 있으나 마나한 사람들이 아니고, 반드시 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있는 한 아무리 세상이 혼탁해도 하늘은 푸르르고 별은 떠오르게 되어 있다. 마지막의 개념이 들어있는 가을은 하늘이 유난히 맑고 청명하다. 이런 가을 하늘에 연탄 같은 가스를 내뿜는 나쁜 공기가 쌓여지면 푸른 하늘은 만들기가 어렵다.
다시 말해 혼탁한 사람이 우리 사회에 많으면 많을수록 하늘은 어둡고 지저분하고 더러워지는 것이다. 가을이 푸르름을 상징하고 있는 것은 우리 인생과 비유하면 마지막 순간까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나’를 가르쳐 줌이다. 맑게 살면 내가 푸른 하늘이 되고 밤의 별처럼 어두워도 떠서 후손들도 밝고 환하게 빛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 가을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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