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을 지배하고 있었다. 세계 GDP의 30% 이상을 컨트롤하고 있었다. 당시에 벌써 지폐(紙幣)를 사용했고, 전문적 관료조직이 있었다.” 18세기 말의 중국, 그러니까 청나라 시대에 대한 한 경제역사가의 기술이다.
중국은 천하의 중심이다. 당시 청의 황제들은 이런 중화주의에 젖어 서양의 장사꾼들을 한낱 시시한 존재로 여겼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불과 수십년 후 청은 그러나 유럽열강의 침공에 속수무책인 존재로 전락한다. 당연히 힘의 균형에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 아시아의 종주국으로서 중국의 영광은 스러진 것이다. 그리고 이후 두 세기 동안 중국은 끝 모를 혼란 속에 주저앉는다.
과거의 중국을 말하고 있다. 아니, 오늘의 미국을 이야기하려는 것 같다. 자세히 보면 또 그게 아니다. 중국의 미래 모습으로도 들린다. 과거와는 역할이 달라진 중국으로서 말이다.
중국이 강조된다. 4차 6자회담 결과를 놓고도 그렇다. 회담 참가 국가들의 입장만 나열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6자회담 타결을 북한 핵 위기해결로 보는 전망에는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기대하는 분위기다. 왜.
월 스트릿 저널의 사설을 먼저 보자. 북한은 믿을 수 없다. 그러나 양자가 아닌 6자라는 틀에서 중국이 나서 북한 핵 폐기를 골자로 한 공동성명이 나왔다. 이 점에서 과거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기본합의서와는 다르다.
북한의 핵 폐기 공약을 사실에 있어 중국의 공약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포츠머스회담이다. 6자회담 타결과 관련해 찰스 크라우트해머가 한 말이다. 한 세기 전 미국이 중재자로 나서 노-일 전쟁 이후를 수습한 것과 비교한 것이다.
당시 미국은 신흥 공업국에 불과했다. 이런 미국이 나서 아시아 · 태평양지역의 질서를 재편케 되는 협상을 마무리 지음으로써 세계무대에서 명실상부한 ‘파워’로서 자리를 굳혔다. 중국이 바로 그런 기회를 맞이했다는 말이다.
그 역시 6자회담이란 틀에서 중국 주도로 북한의 핵 폐기 공약이 나온 데 비중을 두고 있다. 이 합의의 이행에 중국이 부담을 질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다.
요컨대 아시아 지역의 파워로서 중국의 위상은 한반도 비핵화의 성공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북한체제에 영향력이 있는 유일한 국가로서 중국의 적극적 개입의 필요성을 은연중 강조하고 있다.
힘의 균형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중국이 아직은 천하의 중심은 아니다. 그러나 아시아에서는 중심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6자회담 결과가 바로 증거다. 중국의 역할이 두드러진 이번 회담 결과를 보는 또 다른 시각이다.
북한 핵 위기 등 동아시아의 현안문제는 중국을 통하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다. 이 사실을 미국이 새삼 인정하고 양보한 결과가 6자회담의 공동성명이라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그 전에 나온 보도들이 새삼 주목된다. 워싱턴 포스트와 월 스트릿 저널의 보도로, 한반도의 스테이터스 쿠오(status quo · 현상)와 관련된 이야기다.
라이스 국무 등 미국과 중국의 지도자들은 한반도의 경제와 정치적 미래에 대한 탐구를 시작했다. 워싱턴 포스트지 기사다. 한반도의 스테이터스 쿠오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거다.
월 스트릿 저널은 6자회담 타결의 배경의 하나로 부시와 후진타오의 만남을 지적하면서 한반도에서 스테이터스 쿠오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는 점을 워싱턴이 북경 측에 계속 강조해온 사실을 밝혔다. 무슨 뜻인가. 정확히 알 길은 없다. 그러니 한번 상상을 해본다.
“체제전복이 미국이 원래 미국 원하는 북한 핵 위기 해소방안이다. 중국은 거기까지는 따를 수 없다. 새로운 스테이터스 쿠오를 위해 그러나 뭔가를 해야 한다.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해 미국은 중국에게 일단 기회를 준다. 그리고 기다린다. 다음 수순을 내다보면서.”
‘여러 가지 정황’ 중에는 한국의 아주 확실한 방향전환도 포함돼 있다. 미국과 일본 대표단이 든 호텔 투숙도 피했다. 경수로 문제 등에 적극적으로 중국 편에 가담했다. 미국 대표가 깜짝 놀라고 또 분개할 정도였다. 미국과 거의 등을 돌리다시피 한 것이다.
마치 중국이 천하의 중심이 됐다는 판단이라도 선 것 같은 재빠른 행보다.
그나저나 미국과 중국이 탐구하고 있다는 한반도의 정치와 경제적 미래는 무엇일까. 그 점이 궁금하다.
옥 세 철
논설위원
secho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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