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 분야를 배워야 하고 직접 실습도 해야 한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지만 붕대학이 큰 비중을 차지했던 기억이 난다. 혼자서 제 몸을 감을 수는 없는 일이니까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상대방의 몸을 실습의 대상으로 삼는다.
전신에 화상이나 부상을 입었다고 가정하면 온몸을 빙빙 돌려가며 붕대를 감아야 한다. 눈만 빠곰이 내놓고 하얀 붕대를 감아놓으면 방금 관에서 나온 미이라의 모습이 된다. 한참 웃음이 많던 시절이라 눈물이 나도록 웃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기억이 나는 것은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을 때의 그 답답함이다. 검열이 끝나고 선생님이 잘했다 소리를 하면 온몸을 감았던 붕대를 서로 풀어준다. 그 시원하고 후련했던 해방감과 자유의 느낌이라니...
91세 되신 아버지가 일순간에 거처할 곳이 마땅치 않게 되셨다. 안주할 곳을 의논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양로원이 거론되었다. 자칫 못된 자식으로 아버지 가슴에 멍으로 남아있을 그 역할을 누가 맡아야 하나? 당연하다는 듯이 맏딸인 내가 그 적임자란다. 나라고 어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줄 노릇이 쉬운 일이겠는가?
원하건대 아버지 자신이 바쁜 자식들을 사랑하여 자진해서 가 주시기를 바라지만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알 수 없는 일이니 시도는 해보자는 것이 가족들의 의견이었다. 식구들은 아버지 앞에서 핑크 빛 연막을 피우기 시작했다. 우선 불안해 할 공동생활에 대한 편리함을 강조하고 오락과 편의시설을 부풀려 선전하고 음식의 다양함과 맛깔스러움이 가정집은 비교가 안 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우리가 일 나가고 빈집에 혼자 계시면 심심하실 터인데 그곳엔 친구도 많으니 동무도 되고 얘기도 하고 훨씬 좋지요” “바둑도 두시고 운동도 하시고 식사도 때맞추어 줄 테니 우리도 일 나가서 아버지 걱정 안 해도 되고 좋을 것 같네요” “할머니들이 젊으신 분도 많고 이쁘신 멋쟁이도 많더라구요.”
이틀 전에 나와 함께 양로원을 둘러본 막내며느리와 식구들이 이구동성 한 마디씩 한다. 아버지의 눈치를 살핀다. 무슨 말로 이 자식들의 꼬임에 응답을 하실 지 알지 못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아버지의 양로원 입성을 부추기는 자식도, 그곳에 가기 싫어 선뜻 대답 안 하시는 아버지도 마음이 그리 편안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붕대학 실습 때 온몸을 하얀 붕대가 칭칭 감고 있어서 답답할 때보다 몇 십배 불편하고 옥조여오는 불안감을 느낀다. 아들 딸 며느리의 유도작전에도 남의 일인양 무표정으로 일관하시던 아버지가 어렵게 내린 결정은 “내일 일단 가서 규칙을 알아보고 시설을 둘러본 뒤에 결정한다”이었다.
밤이 되어 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돌아가실 때가지 잘 모시지 못하고 원하지도 않는 양로원으로 가시라고 부추겼던 말들이 벌떼처럼 윙윙 소리를 낸다. 가끔은 내 허약한 심장을 톡톡 쏘아대기도 한다. 아프다. 정말 아파서 눈물이 난다. 밤을 꼬박 새우고 아침에 일어나려니 이번엔 정말 온몸을 붕대로 묶은 양 꼼짝할 수가 없다. 양로원으로 보내드릴 수밖에 없는 압박감과 죄의식이 붕대가 되어 나를 묶고 있는 거였다.
양로원을 둘러보고 식사 현장도 보시고 방에도 직접 들어가 보신 아버지는 우리들의 태연한 척하는 속마음을 외면한 채 도통 말씀이 없으시다. 매운탕을 앞에 놓고 식당에 가족들이 모였다. 그때 마침 퇴근을 한 둘째 동생이 옆자리에 앉는다. “아버지 양로원에 가 보시니 어땠어요?”하고 묻는다. “뭐, 그냥.”하시면서 가족들 눈치를 보신다.
아버지의 수호천사인 둘째 아들이 매운탕을 뒤적이며 한 마디 결정적인 탈출구를 열어 놓는다. “아버지 원하시는 대로하세요. 가시기 싫음 안 가셔도 되요.”
어제 온종일 동원했던 양로원 극찬은 까맣게 잊고 본심이 나와버린 셈이다. 나는 그때 보았다. 동생은 제 몸을 묶고 있던 붕대를 소리를 내며 짤라버리고 있는 것을... 아버지의 눈에 얼핏 환한 빛이 모이고 미간으로 몰렸던 주름들이 환하게 퍼져나간다.
“그래, 나도 그거야. 자식들이 있는데 내가 그곳에 가봐. 너희들 체면이 뭐가 되나? 자식들 욕 먹히긴 싫어. 난 안가.”
한 옥타브 힘이 들어간 아버지가 당당하게 말씀하신다. 올케를 건너다보니 “그렇게 하세요.”하며 남편과 한뜻이란다. 어느 분이 말씀하시기를 부모가 다시 살아오셨다고 생각하니 모시는 일이 고맙고 감사하더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몸이 날아갈 듯 가볍다. 내 몸을 묶었던 붕대 역시 동생이 파트너가 되어 말끔히 풀어주었다.
홍민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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