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맹상군과 관련해 전해지는 일화다.
한 사나이가 있었다. 그의 소원은 평소 사모하고 있던 맹상군의 문객이 되는 것이었다. 별로 배운 것도, 특별한 재주도 없는 그에게 그러나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소원이 이루어졌다. 줄을 대주는 사람이 있어 사인(舍人)으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이 사나이가 하루는 높은 곳에서 일하다가 떨어졌다. 사람들이 놀라 달려갔다. 본인은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어났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맹상군을 모시고 있는 내가 이 정도로 다칠 수야 없지 않은가.
무엇이 기적을 가져 왔을까. 믿음. 그보다는 스스로 믿음을 가지게 한 정체성이 아니었을까. ‘천하의 맹상군의 문객’이라는 강한 정체성 말이다.
미국의 가정폭력이 급격히 줄고 있다. 폭력범죄도 크게 감소했다. 1993년 이후 무려 55%가 줄었다는 발표다. 10대의 폭력범죄는 71%나 줄었다. 10대의 임신율도 낮아지고 음주운전도 대폭 줄었다. 전반적인 이혼율 격감과 함께 초등학교 학생들의 성적이 점차 좋아지고 있다.
굿 뉴스 일색이다. 요란한 도덕 재무장운동이 펼쳐진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미국 사회가 꾸준히 밝아지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반(反)문화주의의 사망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모든 권위를 불신한다. 반항적이다. 전통적 가치관을 배격하면서 그 극단의 표현을 마약에서 찾기까지 한다. 60년대에 시작돼 70, 80년대에 전성기를 이루었다. 그 반문화의 흐름이 90년대 들어 소멸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미국을 지탱시켜 주었던 가치관에의 복귀현상으로도 볼 수도 있다. 말하자면 미국의 전통적 정체성 회복이 보이게, 보이지 않게 이루어진 사회 변화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 적들에게 미국과 영국의 ‘특별한 관계’는 더 두드러져 보인다. 그들은 ‘앵글로-색슨 음모설’ 신봉자로, 두 나라는 항상 세계를 지배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데이빗 젤런터가 성서(Bible)가 영국과 미국 역사에 끼친 영향과 관련해 위클리 스탠다드지에 기고한 내용이다. 왜 두 나라는 ‘특별한 관계’에 있는가. 그가 던진 질문이다. 영어를 사용한다. 혈통적으로도 사촌 격이다. 그러니 특별한 관계다.
그의 설명은 다르다. ‘특별한 관계’의 연결고리를 성서로 본다.
영국을 대표하는, 그리고 가장 영향력이 큰 책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킹 제임스 판 성경이라는 주장이다.
이 성서가 보급돼 말씀이 삶에 파고들면서 영국민에게 한 사회로서, 한 국가로서 강력한 정체성을 심어주었다는 것이다. ‘새 이스라엘’이란 정체성이다. 이 정체성을 바탕으로 의회민주주의가 탄생했고 대영제국은 전성기를 맞게 됐다는 설명이다.
‘새 이스라엘’은 바로 미국의 정체성으로 이어진다. 성서가 미국을 창조했고 이 ‘새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독립전쟁에서 남북전쟁,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고비마다 미국을 지탱시켜 온 정신이 돼왔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는 한 사회로서, 국가로서의 강력한 정체성이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가져다주었는가 하는 거다. 긴 설명이 따로 필요 없다. 근대와 현대사에서 영국과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알 수 있으니까.
정체성(Identity) 이야기가 길어진 건 다름 아니다. LA 성시화대회라고 했나. 10월로 예정된 이 대회가 코리안-아메리칸의 정체성 확립에 한 모멘텀을 이루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다.
근본적으로는 복음주의 운동이다. 회개를 바탕으로 전 교회가 하나가 돼 이 땅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는 대회이고, 운동이라는 점에서다. 이 운동은 그렇지만 동시에 이민정신 회복운동으로도 보여진다.
이 땅에 대해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보다 나은 삶이 약속돼 있다는 믿음이다. 그 꿈의 성취를 통해 이 땅이 보다 풍성해지기를 항상 염원한다. 이민자 정신이다. 이 땅의 회복을 위해 기도한다는 건 그러므로 이민정신 회복의 선언이고, 이 땅의 주인임을 확인하는 세리모니다.
대각성운동은 일체감을 심어준다. 그 파장은 그리고 항상 커다란 사회적 변화로 이어진다.
미국의 대각성운동이 그랬다. 일체감 속에 교파는 중요한 것이 아닌 게 됐다. 회심한 기독교인가가 중요한 문제가 됐다. 여기서 연대감이 깊어지고 굳건한 정체성이 형성됐다. 결과적으로 미국 독립운동 승리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한인 이민 100주년이 지났다. 동시에 세대교체라는 전환기를 맞고 있다. 이 시점에 교회의 사회 섬기기 운동이 펼쳐진다. 뭔가 섭리가 엿보이는 것 같다. ‘빛의 자녀로, 또 코리안-아메리칸이란 굳건한 정체성으로 다시 태어날 그 때’가 됐다는.
옥 세 철
<논설위원>
secho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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