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US 오픈에서 전종목 1위를 석권한 뒤 선수들이 우 코치를 번쩍 들어올리며 즐거워하고 있다.
“수중발레 꿈나무 대모 될래요”
만년 2등 주니어팀 맡아 우승 일궈
수석 코치된 후 US 오픈 제패까지
스파르타식 훈련 오해받아 한때 마음고생
맡은 주니어 팀마다 싹슬이 수상경력으로 미 싱크로나이즈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우영신(32) 코치.
그렇다고 그가 이 화려한 경력을 뒷받침해 주는 선수로서 빛나는 경력을 가지고 있다거나, 미 싱크로나이즈 코치로 입문한 세월이 긴 것도 아니다.
한국에서 88올림픽 때 우연히 본 싱크로나이즈 경기에 흠뻑 빠져 프로선수를 꿈꾸기도 했지만 당시만 해도 이를 정식으로 가르치는 대학이 없어 보건체육학과에 입학했다. 싱크로나이즈는 진학후 발품 팔며 어깨너머로 배운 실력이 전부다. 그래도 전국대회 4위 입상경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독한’ 승부사 기질은 그때부터 시작된 듯 싶다.
미국엔 지난 97년 유학생 자격으로 왔다. 그러다 98년 우연한 계기에 전국 1, 2위를 다투는 주니어 팀인 샌호제 소재 월넛 크릭 코치를 맡으면서 코치생활을 시작했다. 그것도 결혼하던 해인 지난 2002년까지 재직했으니 만 5년 정도 코치생활을 한 셈이다.
월넛 크릭팀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강팀이었지만 샌프란시스코 소재 샌타클라라 팀에 늘 밀려 만년 2등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던 때였다.
어시스턴트 코치로 부임하던 그 해에 듀엣과 트리오, 단체 등 3종목에서 1등을 독식했다.
월넛 크릭 주니어 팀이 20년만에 샌타클라리타 팀을 대파하던 순간이었다.
팀 성적으론 ‘20년만의 쾌거’였지만 우 코치에겐 불과 수개월에 불과한 열매였다. 덕분에 1년도 채 안돼 그는 14~15세 팀의 수석코치를 맡게 된다. 파격적인 인사였다.
“한국식 훈련법, 그러니까 스파르타식 훈련이 적중했던 것 같아요. 엄격한 규율 속에서 반복에 반복을 계속하는 훈련으로 선수들의 성적이 쑥쑥 올랐습니다. 물론 학부모와 선수들의 원성이 자자했죠.
덕분에 오해도 많이 사고 학부형들의 불만으로 맘 고생도 참 많았습니다.”
99년에도 월넛 크릭팀은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그해 우 코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국 행을 택했다.
“팀성적은 나날이 좋아졌지만 부드러운 미국식 훈련법에 익숙해 있던 선수들과 학부모들이 갑자기 온 한국인 코치의 스파르타식 훈련법으로 인해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도대체 내가 왜 이역만리까지 와서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나 서럽기도 하고 마침 한국에서 열린 싱크로나이즈 월드컵 대회위원으로 오지 않겠냐는 제안도 있고 해 아예 영구 귀국할 심산으로 다시 짐 보따리를 쌌습니다.”
팬 아메리카 국제대회에서 경기에 앞서 청소년 국가대표팀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뒷줄 맨 오른쪽이 우 코치. 우코치 왼쪽 옆은 이번 국가대표팀에 유일한 한인인 데보라 심 선수.
지난달 올랜도에서 열린 팬 아메리카 대회에서 우 코치가 맡은 국가대표팀이 아름다운 수중발레를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사람 인연이 제 뜻대로 되지 않듯이 우 코치는 서울에서 다시 한번 월넛 크릭팀 수석 코치와 만나게 된다.
“제가 떠나고 다시 미국인 코치가 오면서 다시 팀 성적이 저조해졌다며 다시 한번 아이들을 맡아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하더군요. 그래서 마음을 돌리고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온 미국행 비행기에 다시 몸을 실었습니다.”
다시 돌아온 우 코치에게 학부모와 선수들은 열과 성을 다해 그를 믿고 따라주는 것으로 화답했다. 당연히 월넛 크릭팀의 성적은 승승장구했다.
드디어 2002년엔 월넛 크릭 주니어 팀은 US오픈 전국대회에 나가 전 종목 1등이라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그 공로로 그 대회에서 그는 주니어 그룹 코치상을 받게 된다. 동양인 코치로는 첫번째 수상자라는 쾌거였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그가 2002년 결혼뒤 2003년 출산과 함께 코치 생활을 접게 된다. 그리고 시댁이 있는 LA로 이주했다. 한참 잘 나가던 코치생활에 대한 미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3년간 애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를 코치생활 할 때 못지 않게 열심히 했다.
그러던 중 행운의 여신이 그에게 다시 한번 미소를 보냈다. 미 청소년 국가대표팀의 ‘러브콜’을 받은 것이다. 월넛 크릭팀 전체 수석코치였던 이가 미 청소년 국가대표 선수팀 디렉터로 가면서 주니어 팀 코치로 그를 염두에 두고 연락을 취해 왔다.
“사실 많이 망설였어요. 국가대표팀 코치를 할려면 몇개월씩 합숙훈련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고 오랜동안 일을 쉬기도 했었고….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남편은 물론 시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게됐죠.”
그의 우려는 말 그대로 기우였다. 뒤늦게 합숙훈련에 합류한 그는 지난달 16일부터 21일까지 올랜도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대회인 팬 아메리칸 대회에서 자유연기 팀 2위, 콤보 팀 1위, 솔로와 듀엣 각각 1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뒀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게 마련이다. 캐물어보니 우코치는 지난 3년간 한시도 싱크로나이즈 공부를 게을리 한 일이 없다고 털어놓는다. 끊임없이 세계대회 경기를 관전하고, 최신 안무를 DVD로 구해보는 등 언젠가 다가올 행운의 기회를 다시 한번 낚아챌 준비운동을 하고 있었다.
“한국 드라마 OST를 참 많이 안무 음악으로 썼어요. 한국 전통음악중 비트가 강한 북소리라든가 시대극의 퓨전음악 등 한국적인 음악이 세계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거죠. 그래서 지금도 한국 드라마를 빼놓지 않고 보고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얻습니다”
현재 그는 내년 9월 중국에서 열릴 세계 선수권 대회 청소년 국가대표팀 수석 코치를 제안받은 상태다. 파격적인 제안이지만 아직 수락하지 않았다.
“좋은 조건이죠. 원래 수석코치는 지원자들에 한해 엄정한 심사를 거치는 것이 통례인데 대표팀에서 먼저 제안을 해왔다는 것 자체가 파격입니다. 그런데 석달간의 합숙 훈련 기간도 그렇고, 무엇보다 아직은 수석코치를 하기엔 경력도 일천하다고 판단해서 지금 고심 중에 있습니다.”
이 겸손한 호랑이 코치는, 그러나 마음은 어느새 중국 경기장에 가 있는 듯 싶다. 1년 뒤 그가 들려줄 승전보가 벌써부터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이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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