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까지 과제를 제출해야 하는 데 아이가 방학 내내 노느라 시작도 하지 않은 거예요. 나는 애가 타는데 아이는 태평이에요. 그 과목 수강 신청한 걸 취소하면 그만이라는 것이지요. 그런 아이를 보면서 꿈에서도 기가 막히더군요”
올 가을 아들이 대학 2학년이 된 한 주부가 꿈 이야기를 했다. 아들의 1학년 때 성적이 워낙 엉망이어서 “2학년부터는 잘해야 할텐데…”하고 걱정을 하다보니 그런 꿈까지 꾸게 되었다고 했다.
자녀를 대학으로 보내고 나면 부모들은 걱정이 많다. 대학 생활에 잘 적응할까, 음식은 제대로 찾아 먹을까, 마약에 손을 대면 어쩌나… 이것도 걱정, 저것도 걱정이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보편적 걱정은 역시 ‘공부’ 이고 ‘성적’이다.
늦잠 자다가 수업 빼먹는 것 아닐까, 파티 쫓아다니느라 숙제 못 하는 것 아닐까, 남자(여자) 친구에게 정신 팔려서 공부를 소홀히 하면 어쩌나 … 눈앞에 안 보이는 자녀를 두고 부모들이 일반적으로 많이 하는 걱정이다.
대학에 가는 근본 목적은 학문이니 ‘공부 잘 하고 있나’하는 걱정은 당연하고, 요즘 같은 경쟁 시대에 대학 성적이 나쁘면 취직에 지장이 있으니 ‘성적이 좋아야 할텐데’하는 걱정도 당연하다. 그런데 공부·성적에 너무 관심이 집중되다보면 종종 소홀해지기 쉬운 걱정이 있다. ‘아이가 대학에서 행복한가’를 짚어보는 걱정이다.
대학들의 개학 시즌을 맞아 미국 미디어들이 MIT 대학 재학 중 자살한 엘리자베스 신 케이스를 앞다투어 보도하고 있다. 신양의 부모가 대학 측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1차 결정이 난 것은 지난 6월말이었는데 두달 쯤 지나서 뒤늦게 TV, 신문들이 보도를 하는 것은 개학이라는 시점에 맞춘 것 같다. 재학생의 자살에 대해 대학 측에 책임을 묻는 판결이 나올까봐 미 전국의 대학들은 지금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1998년 이맘때만 해도 신양은 부러울 것 없는 아이비리그 신입생이었다. ‘나이에 비해 너무나 책임감 강하고, 성숙한’딸, 평생 1등을 놓쳐본 적이 없는 딸에 대해 신씨 부부는 가슴 뿌듯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완벽하던 딸이 2000년 봄 갑자기 목숨을 끊었을 때 그들이 받았을 충격은 그만큼 컸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신양이 정신질환 징후를 처음 보인 것은 1학년 2학기이던 1999년 2월이었다. 학업 스트레스가 심했던 신양은 약물 과다 복용으로 정신병원에 1주일간 입원을 했고, 그후 계속 정신과 치료를 받았지만 수시로 ‘자살하겠다’는 말과 자해를 되풀이 하다가 결국 생을 마감했다.
신양의 부모는 “아이가 이 지경인데 어떻게 부모에게 알려주지를 않았느냐, 우리에게 연락만 했다면 아이를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며 애통해 했고, 학교 정신과 의사들은 “18세 이상이면 사생활권 보호법이 적용돼 환자의 비밀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입장을 내세웠었다.
신씨 부부는 자살 위험이 있는 학생을 방치한 책임을 물어 MIT와 관련 교직원들을 상대로 2002년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6월말 재판에서 판사는 MIT에 대한 소송은 기각하고, 정신과 의사, 기숙사 사감 등 교직원들에 대해서는 배심원 재판을 허락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미 5년 전에 세상을 떠난 딸을 두고 재판을 하는 부모의 심정은 얼마나 참담할까. 비슷한 시기에 명문대학 재학 중이던 아들이 자살한 한 아버지는 “그 마음을 알 것 같다”고 했다.
“아무라도 붙들고 원망하고 싶은 심정이지요. 그리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내가 뭘 잘못했었나, 어떻게 했으면 아이가 죽지 않았을까 … 되짚어보며 후회를 합니다”
공부 잘하는 자녀에 대해서 너무 마음을 놓는 것은 대부분 부모들의 약점이다. 머리 좋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내면에 오히려 칠흑 같은 불행감이 숨어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공부는 결국은 각자 자기의 역량만큼 할 수 있을 뿐이다. 부모의 잔소리로 달라질 여지는 크지 않다. 대신 부모로서 우리가 걱정할 것은 ‘아이가 대학생활을 즐기고 있느냐’이다. 대인관계의 폭이 한 바로미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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