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춘기(골동품 복원가)
명장 이순신을 말할 때 또는 그의 국제적 지명도를 평가할 때 영국의 해군제독 넬손과 일본의 해군 제독 도고해이 하지로와 비유하곤 한다. 나는 어떤 기대감을 가지고 내 손으로 한뼘 두께의 세계대사전(문학박사 조의설 감수 각분야 20명의 교수 참여 민중서관 1976년 발행)을 들춰보았다.
넬손(1758~1805) 영국 해군제독-- 1805년 10월 빌리노 제독이 이끄는 프랑스·에스파니아 연합함대를 트라팔가 압바다에서 포착한 넬손 제독의 영국함대는 이를 대파시킴으로써 나폴레온의 영국 상륙을 최종적으로 저지시켰다.
러일전쟁(1904~1905)--막강한 러시아 발틱함대를 일본 해군연합함대(사령관 도고해이하지로)가 조선해협 해전에서 대승함으로써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 계속해서 뒤져보았다. 아무데도 없다.이순신은 고사하고 ‘임진왜란’ 그 자체가 없다. 물론 이것은 처음부터 기대에 불과했다. 그렇다 치더라도 이 세계사 대사전은 순전히 한국의 석학들에 의해 한국에서 만들어진 사전이라 할 때 그리고 세계사 사전을 만드는데 어떤 국제기구의 감수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임진왜란은 조선과 일본이 자국의 운명을 걸고 싸운 7년전쟁이다. 어느 나라, 어떤 세계사
대사전에도 등제되고도 남을 충분한 전쟁사이다.
넬손이나 도고해이하지로는 연합함대 사령관으로서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자국의 전국가적 차원의 병력, 선박 군장비 등 그야말로 모든 분야에서 넘칠 전도로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해상전투에 임했다. 그러나 우리의 수군통제사 이순신은 어떠했던가. 전선 판옥선 거북선은 스스로 건조해야 하였고 농사를 지어 군량미를 충당하여야 하였으며 몰려오는 피난민을 먹여살려야 하였고 그러면서 왕실의 식량까지 진상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어디 그 뿐인가. 이순신을 나라의 수호신과 같이 믿고 따르는 백성! 이에 대한 국왕의 질투! 전쟁보다도 당파 이익이 우선하는 중상모략! 이순신을 제거하기 위한 왜장들의 집요하고 악랄한 책략! 그리고 드디어 ‘백의종군’.이 때 이순신은 그의 난중일기에 이렇게 쓰고 있다. “그래도 나는 나가 싸워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넬손과 도고해이하지로는 우리 이순신이 독백한 바와 같이 “그래도 나는 나가 싸워야 한다” 했을까? 아니면 총부리를 뒤로 돌렸을까! 물론 이순신을 넬손이나 도고해이하지로와 비유할 수는 있겠지. 그러나 그 차원이 다르다. 문제는 임진왜란(1592~1599)이다. 두 개의 국가가 국가의 생사를 걸고 싸운 것은 ‘난’이 아니라 ‘전쟁’이다. 7년전쟁 임진왜란은 ‘난’이 아니라 ‘조일전쟁’이라 하는 것이 마땅하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조선이 원하지 않고 왜놈들이 자기 멋대로 조선땅에 와서 난장판을 치고 간 것이 바로 ‘임진왜란’이니 이것은 ‘조일전쟁’이라 할 수 없다고.바로 이것이 상투 틀고 앉아 논하는 자위행위적 논술이다. 똑같은 논법이 제일공화국(이승만정권) 시절에도 있었다. 6.25는 불법단체인 김일성 집단이 기습해 들어와 살상을 하고 돌아간 난동, 즉.. 6.25동란, 6.25사변이지 절대로 한국전쟁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전쟁 하면 북괴를 국가로 인정하는 꼴이 되고 이것은 반공법 위반이라는 이승만 정권 치하의 논법이다.
나는 60년대 임진왜란을 조일전쟁으로 서술한 글을 사상계(사장 장준하)에 썼다가 필화사건으로 몰아가려는 것을 간신히 빠져나온 일이 있다. 나의 소신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임진왜란’은 ‘조일전쟁’으로 인식하고 말하고 그렇게 써야 한다. 임진왜란은 수구 유교적 발상이고 일본이 가장 원하는 식민사관적 발상이다.임진왜란을 조일전쟁으로 승화 발전시켜 나가면서 국제 사학계에 적극적으로 홍보해 나갈 때 브리태니카를 포함하여 만국의 세계사 사전에 조일전쟁을 비롯, 해군제독 이순신도 영광스럽게 기재될 것이다.
일본이 세계지도상에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기 위해서 독도를 다케시마로 나타내기 위해 노력하는 반만이라도 따라가자! 그 때 이순신은 비좁은 명양해협의 이순신 장군이 아니라 해군제독 이순신으로서 세계 해군 전사에 우뚝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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