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영(주필)
YS의 집권시절, 대통령이 국민들을 놀라게 한 「깜짝쇼」가 유행했다. 주로 인사문제에서 의외의 인물을 발탁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장관에 내정된 사람의 이름이 언론에 새어나가 미리 알려지면 내정자가 교체될 정도였으니 깜짝쇼가 얼마나 심했는가를 알 수 있다. 대선을 앞
두고 YS가 “깜짝 놀랄만한 대선후보가 있다”는 말 한마디에 선거 판도가 크게 요동쳤던 일도 있다.
DJ의 깜짝쇼는 YS 보다 스케일이 크고 심도가 깊다고 할까. 6.15 남북 정상회담과 노벨평화상 수상처럼 큰 사건을 오래동안 물밑작업을 통해 준비해서 빅 이벤트로 터뜨렸다. 깜짝쇼는 충격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일이 밝혀질 때까지 과정을 비밀스럽게 숨기는 것인데 깜짝쇼를 보아도 DJ는 YS 보다 속임수에서 한 수 위라는 사실이 드러난다.그러나 YS와 DJ의 깜짝쇼가 노무현 대통령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대통령이 된 지 얼마되지 않아서부터 “대통령 못해 먹겠다”는 말을 해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그는 임기의 절반인 2년 6개월이 지나면서 도중하차의 가능성을 비쳐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 2년반 동안 그는 권력의 절반을 내놓겠다, 권력을 통째로 내놓을 수도 있다는 등 일반사람의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수많은 말로 깜짝 깜짝 놀라게 해 왔다.노무현 대통령은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이 끼라고나 할까. 그는 국회의원 시절 5공특위에서 명패를 집어 내던진 것으로 유명해져 청문회 스타가 되었다. 미군 장갑차에 치어죽은 여중생 사건을 빌미로 반미 촛불데모가 한창이던 대선 당시 그가 극적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것 자체가 하나의 대단한 깜짝쇼였다. 사람들은 그가 깜짝쇼를 할 때마다 어리둥절하여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는데 바로 이 점이 그가 노리는 목적인지도 모른다.
한때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말이 유행된 적이 있는데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인 그로서는 이와같은 깜짝쇼로 위기를 타개해 나가는 도리 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YS의 깜짝쇼를 아직 때묻지 않은 소년소녀와 같은 깜짝쇼라고 한다면 DJ의 깜짝쇼는 속에 구렁이가 몇마리 들어있는 어른의 깜짝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의 깜짝쇼는 무엇일까. 앞뒤를 가리지 않는 철부지 어린아이의 깜짝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철부지 어린아이가 아니라면 어떻게 권력을 동네 아이들에게 호떡 나누어주듯이 주겠다, 말겠다 하겠으며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렇게 막무가네일 수가 있을까. 노대통령은 말할 때마다 언론이 자기를 인정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또 야당이 개혁을 하
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대통령을 못해 먹겠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모든 일을 능동적이고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대통령의 자리에서 일을 못하는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도 어린아이와 같은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어느날 필자는 플러싱의 한 커피샵에서 옆자리의 노인들이 하는 대화를 듣고 놀란 적이 있다.
“그 애가” 어쩌구 저쩌구 하기에 어느 집 아들 이야기인가 했는데 노대통령의 정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과거 한국의 대통령들이 모두 못난 대통령이었지만 그래도 이름 석자는 불러 주었고 이름을 부르기에 민망할 때는 YS니, DJ니 하는 영문 이니셜을 썼다. 독재자로 미움을 샀던 박정희, 전두환도 ‘박통’ ‘전통’으로 불렀지 ‘애’라고는 하지 않았다. 이 정도가 되면 대통령 다운 구석이 없다는 말이니 법적으로는 대통령이지만 도무지 대통령 대접을 못 받고 있는 셈이다.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대통령이 깜짝쇼를 좀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정도 문제이다. 과유불급이란 말처럼 지나치면 모자라는 것과 같다. 대통령의 천성이 그렇고 막말로 가방끈이 짧아서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깜짝쇼라면 이
제는 그런 쇼를 하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에게는 대통령다운 점이 보일 때 국민들이 따르게 되며 그래야만 정치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된다. 지지율 20%를 가지고는 할 말이 있더라도 말문을 열 처지가 못된다.
9월 중순에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에 오는 그가 한인들을 만난다고 한다. 또 무슨 폭탄선언이 나올지가 궁금하다. 제발 어른들을 앞에 놓고 어린 아이같은 말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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